출처 : http://blog.hani.co.kr/josephkwon/39789
전망없는 미국경제, 효과없는 한미 FTA
2012/01/03 04:41 권종상
아내의 차를 고쳐주느라 꽤 많은 돈이 들어갔습니다. 물론 그걸 한꺼번에 캐시로 지불한 것은 아니지만, 당분간 우리 가계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이곳이 사람의 손이 들어간 작업에 대해선 만만치 않은 가격을 물어야 하는지라, 직접 고치는 Do It Yourself, 이른바 DIY 문화가 발달해 있습니다. 그러나 자동차를 고치는 것처럼 꽤 전문지식에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라면, 어쩔 수 없이 큰 돈을 물어야 합니다.
어쨌든, 거의 새 차처럼 된 아내의 차를 몰고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시승을 했습니다. 우리집 주위에 아직도 그렇게 빈 집들이 많은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됐습니다. 차압을 알리고, 주택이 은행 소유가 됐으며, 경매를 알리는 표지판들이 그렇게 많이 붙어 있었습니다. 아마 집을 '내던진'사람들의 대부분은 3-4년전 집값의 상승이 피크에 달하고 나서 빠지기 직전, 이른바 '막차를 탄' 사람들의 경우일 것입니다. 하염없이 올라갈 줄 알았던 집값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어떻게든 자기들이 가지고 있었던 부동산들을 지켜보려고 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시간이 갈 수록 더 큰 피해를 입었을 뿐입니다. 옆에서 지켜봤던 미국사람들의 경우, 그냥 집을 내 던져 버렸습니다. 은행에 더 이상 돈을 문다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러나 적지 않은 한인들은 끝까지 이걸 어떻게든 사수해 보겠다는 입장들을 보이곤 했습니다. 제 주위에서도 몇몇 사람들이 그런 고집을 피우다가 결국 있는 힘 없는 힘 다 빠지고 나서야 울며 겨자먹기로 집들을 포기했습니다. 하긴 이런 시장에서 버티긴 어려웠을텐데... 10년 전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샀던 저도, 이곳의 부동산 전문 싸이트인 zillow.com 을 통해 보면, 부동산 가격은 딱 그때 수준이거나 오히려 그보다도 더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약 3년 전, 주택 및 부동산 가격이 정점을 찍었을 무렵 투자 목적으로 구입한 부동산은 말 그대로 반토막 난 거죠.
올해 소매경기는 다른 해보다는 좋았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 말을 지금의 이 현상에 대비해 보면 답은 의외로 쉽게 나옵니다. 결국 집이 부담이 됐던 사람들이 거의 모두 집들을 던져 버린거죠. 당연히 모기지 부담이 적어질테니 그 돈을 돌려서 자기들의 소비 욕망을 충족시킨 셈입니다. 그러나 여기엔 부작용이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은 부동산 시장에서 매물들이 엄청나게 늘어남으로서 가격 형성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결국 부동산을 '투자의 대상'으로 삼았던 이들은 더 이상 융자로 인한 이자가 감당되지 않는 지경이 되어 계속해 투매 현상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일어나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임대아파트 가격의 고공행진입니다. 미국이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 모든 지역이 똑같진 않겠지만, 투자처로 각광받기 시작하는 중소도시들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특히 인구가 많고 인구밀도가 조밀한 지역에서의 임대아파트 가격은 계속 상승세를 타면서 그러잖아도 어려운 서민들을 압박하고 있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재융자를 받아 모기지 이자율을 낮추고 모기지를 납부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그보다 더 많은 임대료를 내야 한다는 사실은 부동산의 과열로 인해 피해를 입은 미국인들의 현재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에 미국의 고용 현황이 별다른 호전을 보이지 않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타임지의 보도에 따르면 어느정도 감소세를 보였던 실업수당 지급률이 다시 오르고 있습니다. 이는 중장기 고용이 확충되지 않는 것의 반증이며, 지금의 소매경기 호전도 일시적인 것임을 그대로 드러내보여주고 있습니다. 안정된 직장이 확충되지 않는다는 것은, 소비경제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미국 경제가 그 동력을 확충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더 한발짝 더 나아가 생각한다면, 왜 우리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는 것이 별 의미 없는 일인지를 말해주기도 합니다. 아무리 우리나라의 공산품을 수출하려고 해도 그걸 사줄 소비자들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핸드폰 팔아 쌀 사먹자'는 구호가 통하겠습니까? 반면 미국엔 아직도 잉여 농산품과 해외진출을 노리는 서비스 업종들이 많습니다. 이런 간단한 사실들만 조금씩 짚어보더라도 FTA 가 과연 한국과 미국 중 어디에 유리한지는 뻔한 일입니다.
어쨌든, 미국의 경기 활성화는 미국 내에 더 많은 직업이 창출되지 않는 이상은 헛구호에 불과한 일입니다. 지금 이 상태에서 미국이 가야 할 길은 과거 루즈벨트의 시대처럼 최상층 고소득층에 대한 중과세와 이를 바탕으로 재원을 마련해 복지국가의 길을 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실질 소득을 증가시켜 소비를 촉진시키고, 그것이 생산을 촉진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 듯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말처럼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미국의 장래는 썩 밝지 못합니다.
이런 미국이 마치 자기들의 롤 모델인양 이들의 제도를 아무런 비판없이 따르려 하고 이들이 일방적으로 만들어놓은 규칙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지금의 우리나라 관료층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그 암울함마저도 미국의 뒤를 따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게 미국에 살고 있는 동포로서의 제 우려이기도 합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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