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18556.html


‘안대희 길’과 ‘이인규 길’ 사이…윤석열의 길은?

등록 :2017-11-11 15:44 수정 :2017-11-11 22:01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오른쪽)과 조은석 서울고검장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앞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앞서 감사위원들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오른쪽)과 조은석 서울고검장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앞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앞서 감사위원들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검찰의 ‘적폐 수사’를 이끌고 있는 이는 누가 뭐래도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다. 실력있는 특수·공안 검사들이 모인 전국 최대 검찰청이 최근엔 ‘수사 좀 한다’는 검사들까지 대거 파견을 받았다. 과거 ‘특별수사 1번지’였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수사를 평생의 업으로 삼았던 이들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정점’에, 그가 서 있는 셈이다.


온 나라의 이목이 쏠린 ‘역대급’ 수사팀을 꾸린 만큼, 이제 윤 지검장에게 ‘퇴로’는 없어 보인다. 결과를 내놓고, 평가를 받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윤석열 사단’의 핵심 참모인 1~3차장 모두 같은 운명이다.


지난 9년 동안 묻어뒀던 불법행위가 동시다발로 떠오르면서, 검찰 수사는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수위도 점차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검찰 내부를 포함해 ‘과거’에 기댔던 이들, 과거가 들춰지는 게 불편한 이들, 그리고 판이 크게 흔들리길 바라지 않는 기득권의 반격도 거세지고 있다. 이들의 타격 지점은 세가지. ‘장기전의 피로감’, ‘정치 보복’, ‘정권의 하명’을 파고든다.


지난달 18일 문무일 검찰총장은 “수사를 길게 끌면 피로감이 커질 것 같아, 최대한 빨리 마치는 것을 목표로 수사팀 증원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반격을 하는 이들은 앞뒤 자르고 ‘피로감’에 주목했다. 빨리하려고 수사팀을 증원했는데 수사팀이 많다고 비판하고, 한편으론 빨리 안 끝낸다고 트집을 잡는 식이다. 앞으로도 이들은 ‘자신의 피로감’을 ‘국민의 피로감’으로 치환하는 데 집요할 것이다.


정권과 수사팀에 ‘정치 보복’과 ‘하명 수사’ 딱지를 붙이고 싶어하는 보수 정치세력의 공세도 거세다. “기획·표적 수사로 몇명을 죽이고, 몇십명을 구속해야 수사가 끝나는가.”(정우택 원내대표), “청부 검찰의 섬뜩한 칼춤에 피비린내가 진동한다.”(장제원 의원), “청와대와 민주당이 원하기 때문에 수사가 지방선거 직전까지 갈 것으로 본다.”(권성동 의원) 수사의 성격과 의도를 미리 불순한 것으로 규정해, 그 결과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박근혜식 어법’이다.


하지만 국민의 뜻에 따라 정권이 바뀌고, 또 바뀐 정권의 국정기조에 따라 검찰이 ‘큰 수사’에 나서는 일은 매번 반복돼왔다. 이번 수사도 그렇다. 제대로 된 검사라면 ‘하명 수사’ 딱지가 두려워 수사를 피하진 않는다. 관건은 ‘명분’과 ‘정당성’이다.


대검 중수부의 2003년 대선자금 수사와,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이를 극명하게 대비해 보여준다. 안대희 중수부장이 이끌었던 대선자금 수사는 그 시작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국민의 박수를 받고 끝났다. 당시 민주당의 상처에 비하면 한나라당은 ‘초토화’ 수준이었다. 그래도 국민 대부분은 이를 ‘하명 보복 수사’라고 하지 않았다. 안 전 부장은 나중에 대법관이 됐고, 수사팀 핵심이었던 문효남 수사기획관, 남기춘 1과장, 유재만 2과장 등도 뚜렷한 오점 없이 모두 ‘당대의 칼잡이’로 이름을 남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으로 이어진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달랐다. 이인규 중수부장이 이끈 당시 수사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로 벼랑에 몰렸던 이명박 정부의 ‘반전 카드’였다. 불순한 의도로 빼돌려진 국세청 자료 등 ‘독이 든’ 정보가 활용됐고, 노골적인 ‘망신 주기’도 이어졌다. 이 전 부장은 새 정부 출범 뒤 해외로 떠났고, 당시 수사팀 핵심이었던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뒷돈’을 받은 혐의로 현재 수감 중이다. 우병우 1과장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유명인사’가 됐다. 당시 2과장이던 이석환 청주지검장은 최근 ‘제주지검 영장 몰래 회수’ 사건으로 검찰총장 경고 조처를 받았다.


윤석열 사단은 검찰이 겪어왔던 이런 부침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던 이들이다. 그래서 수사의 정당성과 명분이 갈라놓는 확연한 차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평가의 기준은 이러쿵저러쿵 검찰 내부 반응이 아니라, 국민 눈높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수사를 받던 국정원 직원(변호사)과 현직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윤석열 사단으로선 뼈아픈 일일 수밖에 없다. 수사 전반을 점검하고 되돌아보라는 징조인 듯하다. ‘칼에는 눈이 없다’는 말처럼, 잘못 쓰면 자신뿐 아니라 뜻하지 않은 사람들이 베이고, 정당성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안대희’와 ‘이인규’의 길 중의 하나를 택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 닿는 일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를 만큼 아득하다.


석진환 사회에디터석 법조팀장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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