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1112.html
한식보다 여사님이 먼저
[표지 이야기] 국내 판매용 책에 김윤옥씨 나오는 사진이 G20용 원본과 비교해 23쪽(28%)에서 46쪽(47%)으로 늘어…
미담 일색의 대통령 관련 내용 추가 등에 원본 출판사 “두 책 모두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
▣ 송호균 [2012.01.09 제893호]
≫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배포용 원본 <김윤옥의 한식 이야기>(아래쪽 책들)와 국내 판매용 서적(위쪽 책들)을 비교해보면 청와대 2부속실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국내 배포용에는 한식과 한식문화보다는 김윤옥씨 얼굴이, 같은 사진이라도 더 크고 분명하게 들어갔다. <한겨레21> 정용일
2010년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발간한 <김윤옥의 한식 이야기>와 국내 판매용으로 제작된 같은 제목의 서적은 발행처만 ㅅ출판사에서 ㅇ출판사로 바뀌었을 뿐 사실상 하나의 책이다. 실제 첫책 제작을 담당한 S출판사의 전자자료(PDF)를 재활용해 국내 판매용 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첫책에는 S출판사가 ‘글·구성·디자인’을 맡은 것으로, 국내 판매용에는 S출판사가 ‘글·구성’을 책임진 것으로 명시돼 있다.
백자, 풍속화 등에 질색한 청와대
그러나 두 책을 비교해보면 청와대 2부속실이 굳이 국내 판매용 책을 굳이 따로 만들려 했는지 그 의도가 명확해진다. 사진 한 장을 써도 국내 판매용 서적은 한식과 한식문화 자체보다는 김윤옥씨의 얼굴이 두드러지도록 배치했다. 김씨가 등장하는 같은 장면이라도 국내용에는 더 큰 사진이 들어가는 식이다. G20 배포용 책자를 제작할 당시 청와대 2부속실은 우리 조상들이 간장을 담아두는 데 쓴 백자 달항아리 사진, 한식문화를 폭넓게 설명할 수 있는 조선시대 화원들의 그림과 민간의 풍속화 등의 도판 사용에 질색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여사님 사진이나 많이 사용하면 되지, 도대체 그런 사진을 왜 넣으려고 하느냐”는 항의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S출판사 쪽은 “외국 정상들에게 한식의 문화, 나아가 한국의 전통문화를 폭넓게 소개하려면 꼭 필요한 내용들”이라고 맞섰다. 이런 사진들은 모두 국내 판매용에선 삭제됐다. 대신 김윤옥씨의 얼굴이 들어간 사진이 더 많이, 더 크게 등장한다. 표지를 포함한 전면 도판 기준으로 김윤옥씨의 얼굴과 손 등 신체 일부가 등장하는 사진은 원본에서는 23쪽(28%), 국내 판매용에서는 46쪽(47%)에 이른다.
책의 내용에서도 차이가 두드러진다. 국내 판매용 책의 ‘빈대떡’ 항목을 보면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빈대떡을 만들 때면 누구보다 손주들과 함께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바깥 일정을 끝내고 들어올 때도 항상 현관 신발부터 봅니다. 혹시 누가 와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매일같이 기다려집니다. 손주들과 함께하는 때가 제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라는 대목이 새로 추가됐다. ‘수제비’ 항목에는 기존의 원고에 더해 “청와대에 들어오고 나서 제일 먹고 싶었던 음식이 성균관대 앞을 다니며 사먹었던 떡볶이와 어묵 같은 거리 음식이었답니다. (중략) 대통령은 마음대로 밖에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어쩌다 그런 기회에 시장에서 먹는 음식을 정말 맛있게 드십니다. 맛있는 분식, 길거리표 간식을 먹고 나서 하는 나랏일은 더 신나고 즐거운 모양입니다”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그러나 두 책을 비교해보면 청와대 2부속실이 굳이 국내 판매용 책을 굳이 따로 만들려 했는지 그 의도가 명확해진다. 사진 한 장을 써도 국내 판매용 서적은 한식과 한식문화 자체보다는 김윤옥씨의 얼굴이 두드러지도록 배치했다. 김씨가 등장하는 같은 장면이라도 국내용에는 더 큰 사진이 들어가는 식이다.
“청와대 음식 좋아졌다” 자화자찬
“대통령 선거운동을 할 때는 무척 추웠습니다. 입김도 얼어붙을 만큼 싸늘하고 어둑한 첫새벽부터 빽빽하게 짜인 일정을 함께하던 분들을 위해 이른 새벽 잣을 갈아 죽을 쑤어 대접하곤 했습니다” “대통령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고, 또 그게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또 워낙 ‘호기심 대장’이어서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낯선 나라의 음식도 잘 드시지요”라는 등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이 추가로 삽입됐다. 한식의 예법과 그 저변에 흐르는 정신적 의미를 소개한 원본의 ‘음식을 내는 마음가짐’ 항목은 국내용에서는 아예 ‘청와대 손님맞이: 손님을 맞는 안주인의 마음가짐’이라는 항목으로 바뀌었고, 청와대에서 이뤄지는 각종 오·만찬 준비 과정을 다뤘다. 다음은 국내 판매용 서적에 새로 등장하는 문구들이다.
“남편(이명박 대통령)이 워낙 세심해서 지나치게 꾸며서 손대기 아깝거나 너무 격을 따지느라 먹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준비하자고 늘 당부합니다. 코스를 허황하게 늘리지 않고 깔끔하면서도 든든하게 먹을 수 있도록 편안한 음식 위주로 메뉴를 짜니, 예산은 줄었는데도 청와대 식사가 좋아졌다는 얘기를 듣곤 합니다.”
“닭강정은 추억이 많은 저희 집 손님 초대상의 주인공입니다. 손님들은 맛있게 드시고는 레시피를 달라는데, 저는 레시피 만드는 게 더 어려워 조금 넉넉하게 만들어 손님 가시는 길에 한 봉지씩 들려 보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된장찌개를 끓인 신혼 첫날부터 지금까지 남편은 제가 차린 밥상을 늘 칭찬해줍니다. 같은 반찬을 또 차려놓아도 맛있게 잘 먹습니다. 한번 곰국을 끓이면 어떤 때는 사흘 연속으로 곰국을 올릴 때도 있었지요. 그래도 아무런 불평이 없습니다. 식성이 좋은 건지 저를 위한 배려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밖에 ‘청와대에서 배달시켜 먹는 짜장면’과 같은 가벼운 미담류의 읽을거리도 상당수 새로 들어갔다. 모두 이 대통령과 김윤옥씨의 인간적 면모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청와대 2부속실은 G20 배포용 책자를 제작할 때도 이런 내용을 넣을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S출판사는 버텼지만 역부족이었다. S출판사 관계자는 “두 책에 차이가 많기는 하지만, G20 배포용 책자에도 정치 홍보성 내용이 많이 들어가게 됐다.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청와대의 계속된 간섭과 압박이 반영된 결과다.
“대통령 이미지에 도움 안 되는 책”
김윤옥씨의 얼굴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 미담 등이 청와대의 의도대로 이 대통령과 김씨 본인의 이미지 제고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국내 판매용 서적이 일반에 판매되지 않았기에 아직은 알 수 없다. S출판사는 “국내 판매용 책이 나오지 않는 게 오히려 대통령 부부의 이미지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S출판사는 ‘절대 권력’ 청와대 쪽에서 보기엔 한갖 ‘용역업체’에 불과한 작은 출판사일지 모른다. 하지만 S출판사는 “누구도 알아줄 것 같지 않은 문화적 책임감”으로 이 일을 맡았고,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끈질기게 버텼다. S출판사 관계자는 “두 책 모두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 모두 없던 일이 됐으면 좋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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