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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그 후]"문재인 공산주의자" 신연희 때문에 쑥대밭 된 강남구청
김봉수 입력 2018.02.11. 13:47 수정 2018.02.11. 14:17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인간적으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후배 공무원들이 무슨 죄가 있나."
지난 9일 오후 수화기 넘어 분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공은 전직 서울 강남구청 4급 공무원 이 모씨. 3년전 정년 퇴직한 그는 2010년 신연희 강남구청장 취임 후 강제 전출·직무 배제 등 직장내 '왕따'를 당했다. 전임 구청장 시절 비서실장을 했다는 이유였다.
몇년간 강제 전출로 떠돌다가 구청으로 돌아왔지만, 1년 넘게 보직·업무는 물론 책상도 빼앗아 그냥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전산망 이용도 막았다. 인사 규정에 어긋난 부당한 조치라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동료들도 그를 피했다. 동네 식당 등에서 마주쳐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2014년 1월 초 기자를 만난 그는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 상담도 여러 번 갔다 왔다"며 "집 근처 한강을 바라다 보고 있으면 '나쁜 생각'만 난다"고 호소했다. 결국 그는 업무에 복귀하지 못한 채 2015년 중반 정년 퇴직하고 말았다.
◇ 절대 반지 낀 기초단체장들
이 씨 사례를 취재했던 기자도 안타까웠다. 그의 부당한 인사를 시정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었다. 구청장에게 부여된 '인사권'은 사실상 '절대 반지'와 같았다. 상급 단체인 서울시도, 감사원도 구청장이 말을 안 들으면 강제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게 인사권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피폐하게 만들어 자칫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잔혹한 짓을 저질렀지만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다.
그만큼 지방 분권과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실감한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통령·국회의원·장관 이름은 알아도 자기 동네 지자체장·지방의원 이름은 모른다. 오는 6월에도 지방선거가 있지만 대부분 지지 정당만 보고 대충 찍는다.
시장, 군수, 구청장들의 힘은 막강하다. 주민들이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불편과 문제점을 해소해주는 행정의 말초 신경이자 뼈대·근육이다. 예컨대 우리 집 앞에 가로등이 깨졌거나 도로가 파손되면 대통령·국회의원이 아니라 구청장·구의원에게 얘기해야 바로 수리된다.
중앙 부처·광역지자체에서 예산을 타내고 다른 시·군·구와 협력하는 것도 주요 임무다.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어 공무원들에 대해서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징계ㆍ승진ㆍ인사고과를 제멋대로 쥐고 흔든다. 특별교부세 등 재정적 불이익이 유일한 제재 수단이지만, 재정 자립도가 높으면 소용도 없다.
◇ '갈등전문가' 뽑은 강남구
그만큼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을 뽑을 때는 신중해야 한다. 이 씨를 왕따 시킨 신 구청장 사례를 보자. 그는 서울시청 7급 공무원으로 공직에 입문해 요직인 행정국장까지 역임했다. 누구보다도 서울시와 지방자치 행정을 잘 아는 전문가로 여겨졌다. 그러나 정작 당선된 후 재선까지 지난 8년간 좌충우돌, 서울시와 온갖 갈등을 빚었다. '행정 전문가'가 아니라 '갈등 전문가'라는 말이 나돌았다.
구룡마을 개발 방식, 삼성동 한전부지 공공기여금 사용 방안, 수서역 행복주택 건설, SETEC 부지 제2시민청 건립, 은마아파트 재건축 49층, 강남 자원회수시설, 탄천주차장 대체 부지 선정 등의 과정에서 서울시와 사사건건 부딪혔다.
신 구청장의 가장 큰 문제는 최소한 법규·행정 절차는 따르는 타 자치구들과 달리 '위법적' 조치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6년 말 서울시가 삼성동 옛 서울의료원 부지 매각을 위해 땅을 두 필지로 나누고 강남구청에 관련 내용을 국토이용정보체계(KLIS) 등재하도록 통보했지만 이를 거부한 게 대표적 사례다. 행정 규칙상 지자체는 KLIS에 등재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강남구청 공무원들은 신 구청장의 지시를 받고 통보를 이행하지 않았다. 신 구청장은 옛 서울의료원 부지를 포함한 한전부지 일대 개발에 따른 공공기여금의 사용처를 둘러 싸고 서울시와 갈등이 빚어지자 이같은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돌발적 조치·감정적 갈등도 많았다. 강남구청은 2015년 5월 돌연 토목직 도시계획과장을 개방형으로 모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서울시와 25개 자치구가 함께 시행해 온 기술직 공무원 인사 교류 원칙을 일방적으로 깼다. 일각에선 신 구청장이 측근 공무원을 앉히기 위해 그런 것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있다. 2015년 11월엔 서울시의회 상임위에서 강남구청 5급 공무원과 시의원ㆍ공무원사이에 욕설이 오가는 등 난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신 구청장이 증인 출석 요구를 거부한 뒤끝이었다. 그해 12월에는 이른바 '강남구청 댓글부대' 의혹이 불거졌다. 서울시가 "강남구청 공무원들이 서울시 관련 기사에 '악성 댓글'을 조직적으로 달았다"며 검찰 수사를 의뢰한 것이다. 당시 수사 결과 강남구청 공무원들의 집단 댓글 게시는 확인됐지만 검찰은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혐의 처리했다.
최근엔 신 구청장 스스로가 비리ㆍ범죄 의혹에 휩쓸리면서 강남구청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했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카톡 대화방에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다'라는 등의 허위 사실을 배포했다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최근 1심에서 벌금 800만원을 선고받았다. 오는 6월 지방선거 출마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업무추진비 9000여만원을 횡령해 당비ㆍ경조사비ㆍ화장품 구입비 등으로 썼다는 혐의로 최근 구속영장이 청구되기도 했다. 검찰의 보완 조사 지시로 영장이 보류됐지만 조만간 다시 청구될 전망이다. 신 구청장은 "내 돈 1억 여원을 2016년 사망한 전 비서실장에게 맡겨 놓고 썼을 뿐"이라며 횡령·유용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 손해는 고스란히 주민·공무원에
이같은 갈등, 돌출 행동, 비리·범죄 의혹의 후폭풍은 엄청나다. 공무원들의 경우 '폭탄을 맞았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이씨처럼 일부 공무원들이 신 구청장의 유달리 거친 '공무원 줄세우기'에 의해 고통을 당했다. 평생 쌓아온 공직자로서의 명예, 개인적인 자존심을 송두리째 상실할 위기에 놓인 공무원들도 있다. 업무추진비 비리 방조 혐의로 전·현직 총무계장 3명이 기소된 상태다.
한 전산 담당 공무원은 신 구청장 결재를 받고 업무추진비 사용 실적 자료를 지웠다가 증거 인멸 혐의로 최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동안의 각종 갈등 사항에 따른 서울시의 감사와 징계도 앞으로 예상된다. KLIS 등재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공무원들은 당장은 징계를 면했지만 서울시는 이를 갈고 있다. 기술직 공무원들도 인사 교류가 막히는 사람에 승진ㆍ전보 등에서 엄청난 손해를 봤다.
구민들도 피해가 막심하다. 서울시와 갈등 과정에서 각종 개발 사업이 지체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갔다. 인근 서초구가 서울시와 협의해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구청 부지 소유권을 돌려 받은 것과는 천양지차다. 강남구도 청사 신축을 위해 서울시 소유 SETEC부지를 원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꿈도 못 꾸는 상황이다.
여선웅 강남구의회 의원은 "서울시가 특별히 따로 불이익을 주지는 않았지만 강남구가 더 얻어 낼 수 있을 만한 것들을 따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며 "좌충우돌 행보와 불필요한 갈등 때문에 행정력 낭비는 물론 공무원들과 구민들이 그동안 입은 피해는 엄청나다"고 비판했다. 그는 "더군다나 세금으로 비자금을 만들어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은 것은 공직자로서의 자격을 의심케 하는 것은 물론 강남구 전체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오랜만에 통화가 된 이 씨에게 최근 강남구청 관련 사태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그는 자신이 당한 '탄압'에 대해선 "나는 이미 퇴직했고 다 지나간 일"이라며 담담해 했다. 그러나 강남구청 후배 공무원들에 대해선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씨는 "다른 건 다 용서할 수 있어도 돌아가신 분께 죄를 미루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라며 "공무원들이 무슨 죄냐, 내가 누구보다 잘 아는 데, 공무원들은 윗사람의 지시없이는 10원도 못 건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하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다니 어떻게 인간적으로 그럴 수가 있냐, 후배들이 불쌍하다"며 "두 번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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