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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 뇌물 110억?

검찰이 밝힌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액수는 110억원이 넘는다. 이 전 대통령은 혐의 전반에 대해 일관되게 부인했다. 하지만 이는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2018년 03월 21일 수요일 제549호


3월14일 오전 9시22분,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다. 뇌물·횡령·배임 등 20여 가지 혐의를 받고 있는 그는,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당일 서울 논현동 사저 앞에 지지자들은 모이지 않았고, “이명박을 구속하라”고 외치는 시민들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이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물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지만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라는 등의 짧은 메시지만 남기고 검찰 조사에 임했다.


뇌물수수·횡령·조세포탈 등 혐의를 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3월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앞서 지난 1월 이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정치 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이다”라고 말했다. 정치 보복 프레임으로 검찰 수사를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 달리 검찰 수사는 언론 보도로 시작했다. 이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20여 가지 혐의 가운데 가장 먼저 다스 관련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해 8월 <시사IN> 보도로 이명박 정부가 다스 자금 140억원을 회수하기 위해 청와대·외교부 등을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제519호 ‘다스의 140억 MB가 빼왔다?’ 커버스토리 참조). 이 전 대통령은 지금도 다스는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시사IN>이 입수한 청와대와 다스가 주고받은 문건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민간 기업의 자금 회수에 조직적으로 관여했다. 이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가 불거졌고 나아가 ‘다스가 이 전 대통령 소유여서 청와대가 관여했다’는 다스 실소유주 논란까지 다시 불붙었다.


이 전 대통령에게 다스는 모든 의혹의 시작과 끝이다. ‘뫼비우스 띠’처럼 의혹은 다스에서 시작했고, 다스로 귀결되었다. 결국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전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가족까지 모두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그의 혐의가 점점 늘어갔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 공천 헌금 등 돈과 관련된 혐의가 계속 더해졌다(아래 인포그래픽 참조).


불리하면 “조작” “거짓말” “허위 사실”


이 전 대통령은 혐의 전반에 대해 일관되게 부인했다. 차명 재산 논란, 측근의 자백, 청와대 문건 등에 대해서도 모두 “조작” “거짓말” “허위 사실” 등으로 대응했다. 형사사건 경험이 많은 변호사들은 이런 대응이 피의자에게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까지도 부인하면, 검찰은 대면 조사 때 굳이 사실관계를 다투지 않는다. 피의자의 주장을 그대로 조서에 적시한다. 검찰은 대신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구속영장 발부가 필요한 사유로 제시한다. 말 맞추기 등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검찰 조사뿐 아니라 과거 이 전 대통령이 내뱉은 말도 스스로를 옭아맸다. 이 전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도곡동 땅, BBK 다스 의혹이 불거질 때 “도곡동 땅이 어떻다고요? BBK가 어떻다고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전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반박했다.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의 차명 재산 논란을 공격했다. 주가 조작을 저지른 투자자문회사 BBK를 만든 장본인이 이명박 후보이고, 경제사범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BBK 대표였던 김경준씨는 주가를 조작해 300억원 회사 공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만기 출소했다).


서류상으로는 이 전 대통령의 큰형 이상은 다스 회장이 자기 명의로 된 도곡동 땅을 팔아 그중 일부를 다스 자본금으로 댔다. 다스는 2000년 BBK에 190억원을 투자했다. 다스는 BBK 실소유주 의혹,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과 연결된다. 2007년 대선 당시에도 ‘광운대 강연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BBK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이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강연 동영상에는 “요즘 제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금년 1월달에 비비케이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검찰과 특검 조사가 이뤄졌다. 검찰은 도곡동 땅이 제3자 소유라는 결론을 냈지만, 정호영 특검은 도곡동 땅이 이상은 회장 소유라고 밝혔다. 특검 수사 결과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혐의를 벗어났다. 2007년 검찰과 특검에서 다스 전·현직 관계자들은 ‘이명박 차명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10년 후 이들은 말을 바꿨다. 김종백·채동영씨 등 다스 전직 관계자들의 ‘내부 고발’이 나왔다. 김성우 전 다스 사장과 권승호 전 다스 전무도 ‘다스는 이명박 전 대통령 것’이라는 자술서를 검찰에 냈다. 김 전 사장은 이 전 대통령과 현대건설에서부터 함께 일한 최측근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섯 문장으로 된 짧은 메시지를 남기고 검찰 조사에 임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핵심 측근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자 다스가 이명박 전 대통령 사금고처럼 사용되며 35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 이 전 대통령 아들 이시형씨에게 우회 승계하려 했다는 의혹이 잇달아 불거졌다.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었다. 이동형 다스 부사장까지 자신의 아버지 이상은 다스 회장의 지분이 이명박 전 대통령 것이라고 진술했다. 구속된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과 이영배 금강 대표 또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차명 재산을 관리했다고 인정했다. 특히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자백은 이 전 대통령을 코너로 몰았다. 삼성전자가 다스 소송비 60억원을 대납했다는 추가 혐의를 진술했다. 이 전 대통령 소유였던 서울 서초구 영포빌딩 지하를 압수수색한 검찰은 관련 문건을 확보했다.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또한 이 전 대통령 지시로 소송비를 대납했다는 자술서를 냈다.


부인·아들·사위·큰형·작은형·조카 전부 공범?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인 2011년 9월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에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므로 조그마한 흑점을 찍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그는 임기 중에도 검은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금까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받았다고 검찰이 밝힌 뇌물 액수만 110억원이 넘는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관료들은 국가 금고를 사적으로 손댔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대북 공작이나 정보활동비가 아닌 국내 정치 개입이나 대통령 일가의 사적 용도에 사용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김백준·김진모·김희중·장다사로·박재완 등 청와대 핵심 참모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 지시였다고 진술했다. 특수활동비를 김윤옥 여사에게 가져다주었거나,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썼거나, 불법 여론조사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영포빌딩 지하에 둔 청와대 문건에서 검찰이 새로 확인한 뇌물 혐의도 추가됐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낸 22억5000만원, 김소남 전 한나라당 의원이 낸 공천 헌금 4억원, 대보그룹 청탁금 5억원, ABC상사 청탁금 2억원 등이다. 돈을 건넨 이들은 혐의를 인정하고 있지만, 이 전 대통령은 본인과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거짓말 입증을 자신한다. 돈을 걷고 배달하는 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 그룹이 관여했다는 문건까지 확보했다. 이 전 대통령의 둘째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비롯해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송정호 전 법무부 장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그들이다. 천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지시로 불법 자금 수수에 관여했다고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팔성 전 회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 쪽에 건넸다는 22억5000만원과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가족 범죄’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 전 대통령의 맏사위와 부인까지 연루됐다고 검찰은 판단한다. 이팔성 전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맏사위 이상주 삼성전자 전무에게 14억5000만원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이 중 일부가 김윤옥 여사에게 흘러갔다고 검찰은 본다. 지금까지 검찰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아들·사위·큰형·작은형·조카까지 이 전 대통령과 공범 관계인 셈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7년 대선 과정에서 공개한 가훈은 ‘정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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