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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은 MB정부의 ‘강정마을·4대강 파괴’에 어떻게 협조했나

[기획-사법부는 성역이 아니다] ‘독립성’의 병풍에 가려진 그들의 위선②-4

강경훈 기자 qa@vop.co.kr 발행 2018-03-30 17:03:27 수정 2018-03-30 18: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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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된 권력은 곧 성역’이라고 누군가가 압축적으로 말했을 때 여기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법 권력은 법적·제도적 무제약의 날개를 달고서 암묵적인 ‘성역’으로 군림해왔다.


(중략)


이번 기획은 ‘과연 사법부가 성역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사법부의 지배 또는 법관의 지배 실태를 단편적으로 드러내주는 최근의 판결 사례들을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실제로 ‘법’이 부당한 권력에 의해 무력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나아가 ‘사법부의 성역화’를 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논의해볼 수 있는 장이 마련될 수 있었으면 한다.


1. 판사는 어떻게 재벌과 자본을 충실하게 변호하는가?

2. 판사들이 정치권력의 ‘폭주’를 합리화시켜주는 방법

3.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을 범죄로 완성하는 판사들의 편협함

4. ‘각하의 명예는 내가 지킨다’, 대한민국 판사들의 자발적 충성


정부가 대규모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민주적 절차가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국익’이라는 모호한 명분이 절차적 정당성의 결여를 용인하게끔 하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개발독재 시절의 경험이 있기에 더욱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상당수 대중들은 국책사업을 ‘특정 지역의 일’로 치부하면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정부는 국책사업의 대상이 되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 여론을 ‘님비’ 현상 정도로 비화시키면서 전국적 여론 지형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


결국 정부가 추진하는 국책사업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인지하는 단위는 사업 대상 지역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소수 진보 성향의 정당이나 언론 정도다.


여론전에서 밀리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주로 국책사업이 절차적으로 위법한지를 따져보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정소송에서 판사들은 상당히 경직되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많다.


기획 초반부에 언급했듯 이번 편도 사법권력이 정치권력의 폭정 혹은 실정을 ‘판결’이라는 절대적 수단으로 합리화시켜주는 사례들을 짚어보는 것의 일환이다.


그동안 다뤘던 ▲정당, 노동조합 등 특정 세력을 무력화시키는 과정에서 국가권력 주도로 제기된 소송 ▲집권세력의 실정 또는 불법 행위와 관련한 소송 ▲반대세력의 저항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법 사안에 대한 과도한 처벌 ▲일반 시민이나 반대진영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자 국가권력으로부터 제기된 소송에 이어 이번 편에서는 ▲정부 일방 정책의 절차적 정당성 여부를 다투는 각종 행정소송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동안의 판례에 비춰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송으로 정부의 국책사업에 제동을 거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소송 제기자가 재벌기업이라면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으나, 그런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개의 국책사업들은 재벌기업의 참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 등 대규모 토건사업이 그런 케이스다.


‘당신들은 소송의 자격이 없다’


지난 2010년 12월 15일 강정마을 주민들이 제기한 해군기지 건설 관련 절대보전지역 변경 처분 무효확인 소송에서 제주지법 행정부(박재현 부장판사)가 내린 판결은 행정법원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한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현장.

제주 해군기지 건설 현장.ⓒ양지웅 기자


이 소송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이 제기한 소송 중 하나였다.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면 3만여 평이 넘는 강정마을 해안변 지역을 절대보전지역에서 제외하는 조치가 필요했는데, 정부의 사업 강행 방침에 따라 제주도지사는 2009년 12월 23일자로 해당 지역에 대한 절대보전지역 변경을 고시한 것이 이 소송의 직접적인 발단이 됐다. 제주도 측은 고시안을 도의회 의장에게 직권으로 상정해 처리할 것을 종용했고, 결국 고시안은 도의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됐다. 주민들은 주민 의견 청취 절차를 외면한 처분이라 절차적으로 위법하다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당시 박 부장판사는 원고 적격이 없다는 이유로 소송을 각하시켜버렸다. 소송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낸 소송이기 때문에 쟁점에 대해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판사는 ‘국책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를 묻는 소송의 본질을 ‘원고 적격’이라는 소송법적 문제로 받아들였다.


판사는 각하 사유로 ▲절대보전지역 해제는 소유권에 가한 제한을 해제하는 수익적 처분에 해당한다 ▲절대보전지역 지정으로 보호되는 것은 인근주민의 주거 및 생활환경 등이 아니라 제주도의 지하수·생태계·경관 그 자체로 봐야 한다 ▲절대보전지역을 축소함에 따라 보호해야 할 대상은 환경상 혜택을 받는 주민들이 아닌 권리의 제한을 받게 되는 주민들이어야 한다


첫 번째 사유에서 판사는 시대적 흐름과 완전히 동떨어진 시각을 갖고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버렸다. 19세기 이래의 지배적 견해가 된 '소유와 영업의 자유' 중심의 자유주의 행정법학의 형식논리를 현 시점을 토대로 한 이해를 배제한 채 그대로 따른 것이다.


행정법 분야 석학인 이계수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수익적 처분이니 하는 논리는 환경을 침해하는 대규모 개발이 거의 없었던 시절 혹은 절차적 권리 보장의 관념이 없었던 시절에 만들어졌던 낡은 행정법 이론”이라며 “이 사건 재판부는 이러한 형식 논리를 그대로 차용했다”고 꼬집었다.


두 번째 사유는 어떨까? 판사는 “절대보전지역 지정으로 보호되는 것은 주민이 아니라 제주도의 지하수·생태계·경관 그 자체”라고 했다. 원고 적격 문제로 이 소송을 각하했다는 점에서 이 말은 곧 ‘지하수와 생태계 경관 그 자체가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세 번째 사유 역시 그 짧은 문장 속에 모순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환경상 혜택을 받는 주민’과 ‘권리의 제한을 받는 주민’이 분리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절대보전지역 지정은 화산섬인 제주도의 특수 지형을 보존한다는 의미와 함께 그 특수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제주도민 생활상의 이익까지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제주도 특별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환경상 혜택을 받던 주민이 곧 권리의 제한을 받는 주민, 즉 같은 강정마을 주민인 셈이다. 이 내용을 판사가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판사는 자신만이 갖고 있는 재량권으로 주민들이 그동안 누리고 있던 법적 권리를 일개 반사적 이익으로 치부해버렸다.


이 모든 말이 초등학생이 아닌, 대한민국 판사의 말이다. 초등학생도 납득하기 어려운 이 결정은 2년 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소송을 각하한다는 결정을 해놓고 사유를 거기 맞춰 도출해 내려다보니, 이런 황당한 각하 결정문이 나올 수가 있다. 판사가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판사가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알 방법이 없다. 다만 ‘본안 심리를 했을 때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절차적 정당성을 인정할 만한 요인이 없어 차라리 원고 적격 문제로 판단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는 합리적 추론은 가능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 판사의 황당한 ‘중도하차’


각하 사례와 달리 판사들이 이미 사건 심리에 들어간 상태에서 일종의 ‘중도하차’를 하는 경우도 있다. 2010년 김모씨 등 낙동강 인근 지역 주민 1천819명이 4대강 사업의 일환인 ‘낙동강 살리기’ 사업을 취소해달라며 국토해양부장관과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을 상대로 낸 하천공사 시행계획 취소 청구 소송에 관한 이야기다.


이 소송은 이명박 정부가 한강과 낙동강, 금강, 영산강을 대상으로 ‘4대강 정비사업’을 추진하자 지역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지역별로 사업계획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이다.


4대강 사업 이후 물고기들의 떼죽음이 이어진 낙동강의 모습.

4대강 사업 이후 물고기들의 떼죽음이 이어진 낙동강의 모습.ⓒ대구환경운동연합


부산지법 행정2부(문형배 부장판사)는 이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 사업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절성, 사업시행으로 예상되는 피해 규모, 예상 피해에 대한 대책을 종합할 때 피고들이 이 사건 각 처분에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는 것이 핵심 사유였다.


언론들은 이 같은 판결문 내용으로 일제히 보도했다. 보도만 보면 판사가 꼼꼼히 심리한 결과 사업 절차에 위법성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이 판결의 실체적 진실은 보도 내용과 완전히 달랐다.


실제로 문형배 판사는 이 사건을 끝까지 들여다보지 않았다. ‘심리미진’의 상태에서 재판을 종결해버린 것이다. 이는 판결문에 버젓이 적시돼 있었다.


“원고들이 제출하는 증거들만으로는 사업 시행에 따른 문제점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사업 시행의 계속 여부, 그 범위를 판단하는 문제는 사법부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주제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사법부는 적법성 여부를 심사하는 데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판례와 경험의 축적으로 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만, 적절성 여부를 심사하는 데는 구조적·경험적 한계를 가지고 있고, 설령 적절성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치 및 행정의 영역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대안을 찾는 것이 사법의 영역에서 일도양단식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판사의 ‘중도하차’ 이유다. 그런데 정치나 행정 영역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대안을 찾을 수 있다면 왜 이런 소송이 제기됐을까? 판사는 사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억지스럽게 부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 양보해서 국책사업과 같이 ‘국가안보 혹은 경제·사회적으로 다루는 범위가 넓고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경우’처럼 법원이 사실관계에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판사가 굳이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판사의 역할을 ‘일도양단’식 분쟁해결에서만 찾는 태도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계수 교수는 “이런 사안에서 헌법으로부터 위임받은 법원의 역할은 ‘의사결정자를 제치고 자기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자에게 ‘왜 어떤 의무는 여태껏 지키지 않고 있는지’, ‘또 왜 어떤 의무는 지키면서 여타 의무는 무시하는지’ 등을 묻고 판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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