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805101628011&code=920100


[단독]'땅콩회항' 이후 전혀 달라지지 않은 대한항공, 국토부는 알고 있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입력 : 2018.05.10 16:28:01 


대한항공 직원과 시민들이 지난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조양호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대한항공 직원과 시민들이 지난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조양호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대한항공 임원들은 ‘땅콩회항’이 발생한 근본원인 질문했으나 답변 회피”, “직원들의 비밀보장 보고제도는 형식적일 뿐”, “대한항공 사외이사는 대부분 총수일가 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44)이 2014년 12월 기내 땅콩 제공 서비스에 불만을 표하며 이륙 준비 중인던 비행기를 되돌린 ‘땅콩회항’ 사건 직후 작성된 국토교통부 비공개 용역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35)이 광고회사 직원에게 물컵을 던진 사실이 드러난 뒤 수차례 폭로된 대한항공 경영구조와 총수일가의 문제점과 하나같이 유사한 지적들이다.


10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국토부 용역보고서 ‘대한항공 경영구조 및 안전문화 진단 연구’(2015년 4월)에는 ‘땅콩회항’ 직후 대한항공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분석 결과가 담겨 있다. 국토부의 연구용역을 맡은 한국생산성본부 연구진은 대한항공에 공정성, 책임과 관련된 기업 문화가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대한항공 임원진에게 ‘땅콩회항’이 발생한 근본 원인을 물었지만 임원진은 대답을 회피했다고 보고서에 썼다. 대한한공 임원들은 ‘땅콩회항’ 직후에도 총수일가를 보호하는 데만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또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귀속에 초점을 맞추고 담당자만 처벌하고, 회사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사실상 비밀보장을 해주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보고서의 구체적인 지적사항을 보면 ‘개인정보 식별 가능한 비밀보장자율보고제도 운영으로 직원 참여 저조’, ‘안전이슈 발생시 책임 지울 사람만 찾아 직원들은 보고시 문제아로 찍힐 것을 두려워함’, ‘임직원들은 비밀보장 보고를 회사 이익 보장을 위해 고안된 것으로만 인식’ 등이 있다. 


이같은 보고서의 지적은 이번 조현민 전 부사장의 ‘물병 투척’ 이후 대한항공 총수일가를 둘러싼 각종 폭로가 이어지자 ‘제보자 색출’에 나선 대한항공 임원진의 행태와도 맞닿아 있다. 대한항공은 이달초부터 익명 사내 게시판의 회사 밖 접속을 차단했다. 지난 4일 대한항공 직원들이 촛불집회를 열자 인사·노무 담당 임원과 팀장이 감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보고서는 또 사외이사 대부분이 대한항공과 주요 거래관계에 있고, 상당수는 장기 연임하고 있어 이사회 독립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대한항공은 보고서 작성 시점인 2014년 12월 기준으로 사외이사는 7명이었다. 이중 박오수 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당시 13년9개월째 사외이사 장기 재직 중이었다. 현재도 사외이사인 조양호 회장의 경복고 동문 이석우 법무법인 두레 변호사(12년), 지난 3월까지 사외이사였던 이윤우 전 산업은행 부총재(9년),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9년)는 보고서 작성 시점에도 사외이사였다. 


이번에도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과 대한항공이 각각 3명, 5명의 사외이사를 두고 있지만 모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69)의 측근이어서 감시와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조현민 사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총수일가는 대한항공을 통해 밀수, 탈세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르며 사적 이익을 취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대한항공 탑승객 안전은 뒷전으로 미룬 흔적도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항공이 보유한 항공기 기령은 2012년 9.96년, 2013년 10.32년, 2014년 10.81년으로 늘어났지만 100만㎞당 정비 예산은 2012년 24억8700만원, 2013년 24억4000만원, 2014년 23억4700만원으로 감소하고 있었다. 대한항공의 정비 예산 규모도 2012년 9427억원, 2013년 8928억원, 2014년 8332억원으로 줄어들었다. 


한편 국토부는 미국인인 조현민 전 부사장이 2010년 3월부터 6년간 등기이사로 재직한 부분이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지 검토하고 있다. 국토부는 또 조현민 전 부사장이 실질적으로 진에어를 지배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현행 항공사업법과 항공안전법은 외국인의 항공사 등기이사 재직을 금지하고 있고, 외국인이 항공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면허 취소가 가능하다. 


현재 국토부 항공정책실에서는 면허 취소에 따른 진에어 피해 감소 시나리오까지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에어의 항공 면허취소가 되면 대한항공이 인수하는 방안을 비롯해 상장사인 진에어 주주들의 주식 처분 방안 등까지 세밀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전히 국토부 자체 감사에 대한 불신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국토부는 사건 초기 이사회 참석 명단만 제출하라고 요구했을 뿐, 이사회 회의록은 요구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또 조현민 전 부사장이 진에어 등기이사로 재직한 2010년 3월부터 6년간 주무과인 국토부 항공산업과에서 일한 일부 공무원들로 감사 범위도 한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의 대한한공, 진에어와 관련된 각종 자료 제출 요구도 국토부는 모두 묵살하고 있다. 자체 감사를 진행 중이고 감사원 정기 감사를 받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국토부는 이번 감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항공 산업 관련 자료도 일체 제출하지 않고 있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자료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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