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철거 3년째 허허벌판…“뭐 급해 서둘러 쫓아냈나”
[한겨레] 이경미 기자  등록 : 20120116 21:25 | 수정 : 20120116 22:36
   
용산참사 20일로 3주기
영업보상비 1개월 늘고 공공관리제 시행됐지만 재개발 분쟁 핵심 ‘강제퇴거금지법’은 마련안돼
북아현·상도·명동 등 충돌 여전…‘제2용산’ 우려

≫ ‘용산참사 3주기 추모 준비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15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북아현뉴타운 3구역을 방문해 희망의 글이 담긴 바람개비를 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아직도 공사를 못하는데 3년 전엔 뭐가 그리 급해서 철거를 서둘렀을까?’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일대를 다시 찾은 ‘용산참사’ 유족과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 개선위원회’(용산대책위) 관계자들은 허허벌판으로 남아 있는 참사현장을 보며 허탈해했다. 철거민들이 농성을 벌였던 남일당(금은방) 건물을 비롯해 레아호프·삼호복집 등 이 일대 가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리는 넓은 공터만 남아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도로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울타리를 둘러친 땅은 기반 공사를 하려고 흙을 파헤쳐 놓은 채로 방치돼 있다.

2009년 1월 용산참사 직전까지 급속도로 진행되던 용산4구역 재개발 사업은 절차 문제 등으로 3년째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일부 조합원이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조합을 상대로 낸 관리처분계획 무효확인 소송에서 법원이 무효 판결을 내렸고, 조합은 다시 절차를 밟았다. 또 조합은 시공사와 추가분담금 문제로 갈등을 빚다 계약을 해지하고, 현재 새로운 시공업체를 모집하고 있다.

박래군 용산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애초부터 무리하게 추진하다 보니, 철거 뒤에도 사업 진행이 안 되는 것”이라며 “제대로 절차를 밟고 (세입자 대책을 위한) 해결방법을 찾았다면 3년 전 ‘살인 철거’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20일이면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3년이 된다. 하지만 세입자를 위한 대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고, 재개발 현장 곳곳에서는 강제철거와 이에 저항하는 세입자들의 싸움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용산참사 이후 재개발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며 여러 차례 대책을 발표했다. 참사 직후에는 상가 세입자에게 주는 영업손실보상비를 3개월에서 4개월치로 늘리는 방안 등을 마련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반영했다. 서울시도 2010년 7월부터 자치단체장이 조합 설립부터 사업 완료까지 재개발의 전 과정을 관리하는 ‘공공관리자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일정 기간 재개발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정비구역 지정을 해제하는 ‘일몰제’를 도입한 도정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재개발 분쟁의 핵심인 강제철거 문제를 해결할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서울만 해도 서대문구 북아현동 뉴타운 1-3구역, 동작구 상도4동, 중구 명동2·4구역, 서초구 내곡동 헌인마을 등에서 강제철거가 진행돼 용역과 세입자들이 충돌을 빚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강제퇴거금지법’ 마련에 힘쓰고 있다. 이 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강제퇴거를 예방하고 원주민 재정착 권리를 보장하며 △퇴거 과정에서 폭행·협박 등 폭력행위를 금지하고 △겨울철 퇴거를 금지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위원회는 용산참사 3주기 추모기간인 18일 정동영 민주통합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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