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54362.html


1400년 거스른 백제 미소년, 천년 미소 빛내며 서있었다

등록 :2018-07-22 19:04 수정 :2018-07-22 20:45


‘백제관음보살입상’ 일본 소장자 <한겨레>에 공개

90년만에 찾은 백제 예술 최고 걸작, 일본 소장자 ‘한겨레’에 최초 공개

높이 28㎠…정교한 세공이 살린 미소, 굽힌 다리·튼 허리 ‘삼곡자세’ 육감적
불상장식 ‘영락’ 양쪽 훼손 안타까워

정부 실사단 파견…‘100% 진품’ 판정, 소장자와 협상 “9월 이전 환수 목표”


이달초 일본 도쿄에서 언론사로는 처음 <한겨레>에 공개된 일본 소장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의 전체 모습. 미소년을 방불케하는 불상 얼굴의 당당하고도 인자한 미소와 절묘한 삼곡의 자세 등이 눈길을 사로 잡았다.


미소년의 얼굴 그대로였다. 태어난 지 1400년을 훨씬 넘긴 불상은 세월에 푸른 녹이 금빛 몸체 곳곳에 스며들어 퍼졌지만, 콧날과 눈과 입의 유연한 선이 빚어낸 미소는 여전히 싱그러웠다. 보병을 들고서 허리를 튼, 야무지게 굴곡 잡힌 자태 또한 흐트러짐 없이 맑은 기운을 뿜어내었다.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화이불치(華而不侈)의 미덕을 지닌 백제 예술의 최고 절정을 보여주는 불상이 눈앞에 다가왔다. 지난해 연말 국내 미술사학자들이 일본에서 90여년만에 소재를 확인하고 진품임을 확인한 한국 불교 조각사 최고의 걸작인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이 다시 세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일제강점기 조선에 살던 컬렉터 이치다 지로로부터 불상을 넘겨받았던 현재 일본 소장자가 이달초 일본 도쿄 현지에서 국내외 언론사 중에서 최초로 <한겨레>에 금동관음상을 공개했다. 소장자가 실견 장소로 알려준 곳은 도쿄 번화가 유라쿠초 부근의 한 고급호텔 객실. 안에서 기다리던 소장자 쪽 실무자가 기자가 들어서자 나무상자에 든 28cm의 관음상을 조심스럽게 꺼내 옆 탁자에 세우고 보여주었다. 우선 눈에 띈 건 가장 아름다운 백제의 미소를 짓고 있다는 백제관음상의 얼굴 표정과 머리 위에 달린 세개의 보관이었다. 그 가운데 보관에 작은 부처님(화불)이 앉아있다. 관음상임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징표다.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상반신을 차례차례 훑어보았다. 소장자 쪽은 아울러 최근 찍은 불상의 동영상도 한겨레에 내보였다.


실견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수많은 표면의 녹투성이 더께 속에서도 변함없이 남은 소년 같은 미소의 생생함과 다리를 굽히고 허리를 튼 삼곡(三曲)자세의 육감적인 분위기였다. 극히 정교한 세공으로 얼굴 세부 요소들을 미세하게 깎아 만든 이 불상의 미소짓는 표정은 실제로 보니 인자한 인상과 더불어, 젊은이의 건강하고 싱싱한 생기가 자연스러운 조형 속에 함께 깃들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과거 공개된 사진으로는 여인 같은 인상을 주었지만, 실제로는 가까이 보면 볼수록 소년이나 청년 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 건 미소의 싱그러움과 당당한 몸매의 짜임새가 함께 어우러져 눈에 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불상의 얼굴 부분을 확대한 모습. 곳곳이 푸른 녹으로 뒤덮였지만, 가장 아름다운 백제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불상의 자비로운 표정은 1000년 넘게 변함이 없었다.


불상의 옆 모습. 천의를 걸치고 보병을 든 불상이 허리를 틀고 오른 다리를 약간 들어올린 ‘삼곡의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불상의 뒤태다. 허리를 살짝 튼 모습이 육감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불상의 가슴과 배 부분. 정교하고 섬세한 군의자락과 함께 백제금동대향로의 문양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구름무늬(당초무늬)의 유려한 선이 가슴띠를 타고 흐른다.


불상의 옆모습과 뒤태로 차근차근 시선을 옮겨갔다. 오른쪽 다리를 살짝 굽히고 허리를 뒤튼 삼곡 자세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었다. 28cm나 되는 상당한 덩치의 백제금속불상인데, 마치 움찔거림이 확 느껴질만큼 뒤태와 옆모습은 육감적으로 다가왔다.


가슴과 배 부분에서 천의 자락을 잇는 6~7세기 불상 장식의 핵심 요소인 영락은 안타깝게도 양쪽이 톡 부러져 있었다. 부러진 자국에도 두터운 녹이 번진 것으로 미뤄 오래 전 땅 속에서 깨어져 사라진 것이 분명하다. 이 불상은 땅에 묻히기 전 어떤 풍상을 겪었던 것일까. 이제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궁금증도 스쳐갔다.


앞뒤로, 옆으로 이리저리 어봤지만, 그냥 보기만은 아쉬웠다. 소장자쪽 실무진의 협조를 얻어 불상을 손에 올리고 살짝 들어보았다. 덩이감(양감)이 대단했다. 손아귀에 꽉 잡히는 불상의 굴곡이 맞물리듯 잡혔는데, 튼실하고 꽉찬 무게감이 전해져왔다. 이는 바로 불상의 모델이 됐을 백제 청년의 마음, 오직 신앙심으로 불상의 얼굴과 몸을 끌로 깎고 새겼을 백제 장인의 성심어린 정성의 표현이 아닐까.


현장에서 만난 소장자쪽 실무자들은 한국 정부가 최근 불상 조사 실사단을 파견하는 등 환수협상을 위해 상당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문화재청에 따르면, <한겨레> 취재에 앞서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 전문가들로 구성된 실사단이 지난 3일 도쿄를 찾아와 소장자 쪽의 협조로 불상을 실견하고 진위 여부와 보존상태를 판별하는 조사를 벌였으며, 이를 토대로 최근 박물관 쪽이 문화재청 쪽에 “100% 진품”이라는 공식판정 결과를 통보한 사실이 확인됐다.



박물관 쪽은 또 이 금동불상의 출토지가 세간의 기록에 알려진 충남 부여 외의 국내 다른 장소일 가능성도 제기하면서 환수 뒤 정밀한 세부 조사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내비쳤다고 문화재청 쪽은 전했다. 실제로 이 불상은 1907년 함께 충남 부여 규암리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국보 293호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과는 양식적인 차이가 크고 경북 선산에서 출토된 2점의 금동관음입상과 조형적 계보가 연관된다는 평가가 나와, 출토지를 둘러싼 의문이 앞으로 이 불상의 연구에서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공식 진품 통보를 받은 문화재청 쪽은 지난주부터 국제협력과를 중심으로 소장자쪽과 구입가격을 조정하는 협상 절차 준비에 이미 착수한 상태다. 문화재청의 다른 고위 관계자는 “정기국회가 열리는 9월 이전까지 협상을 마무리하고 환수하는 것이 기본적인 목표”라고 전했다.



측면에서 빛을 받고있는 불상의 얼굴을 보면, 또다른 정감을 느낄 수 있다.


도쿄/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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