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57428.html?_fr=mt2


[단독] 경찰, 국가보안법 피의자 영장심사 증거 조작 의혹

등록 :2018-08-13 16:58 수정 :2018-08-13 18:52


지난 10일 40대 대북사업가 구속영장 발부

경찰, ‘증거인멸’ 정황으로 문자메시지 제출

사건과 무관한 사람이 잘못 보낸 문자로 드러나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건물.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건물.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대북사업가의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가짜 증거’를 검찰과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13일 드러났다. 피의자로 지목된 대북사업가 김아무개(46)씨는 지난 11일 구속영장이 발부돼 현재 수감 중이다. 무리한 보안수사 관행 탓에 경찰이 구속 여부를 판가름하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제출한 서류마저 조작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날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지난 9일 대북사업가 김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이 사건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산하 서총련 간부 출신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보도됐다. 김씨는 안면인식 기술과 관련한 정보기술업체를 운영하며 남북 경제협력 사업 등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북한 쪽에 프로그램 개발을 의뢰하고 해당 프로그램을 국내 업체에 판매한 혐의 등으로 김씨를 오래 내사하다 최근 그를 구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경찰이 김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검찰에 사실과 다른 자료를 제출했다는 점이다. 경찰은 김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체포된 김씨가 자신을 조사 중인 경찰 보안수사관의 전화기를 빌려 공범에게 암호(영어)로 된 문자를 보냈다”는 내용을 기재했다. 구속영장 발부의 주요 요건인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를 부각하려고 이런 내용을 포함한 것이다.


<한겨레>가 확보한 김씨의 구속영장 청구서를 보면, 경찰은 김씨가 9일 “죄송합니다. 205호실. 7월22일 오후 3시에 에어컨 수리를 위해 4시께 집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에어컨 전문가가 방문하지 못해 정말 유감입니다”라는 내용의 영어 문자를 지인에게 보낸 정황을 밝힌 뒤, “자신의 체포를 알리고 증거를 인멸하라는 듯한 알 수 없는 내용의 메시지를 발송하였다”라고 적었다. 이런 내용은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 항목에 두 단락에 걸쳐 서술됐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 문자는 누군가가 김씨를 수사한 경찰의 공용 전화기로 지난달 22일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김씨가 체포되기 18일 전에 수사관의 공용 휴대전화로 수신된 문자메시지를 김씨가 공범에게 보낸 문자로 둔갑시켜 구속의 필요성을 주장한 셈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수신과 발신을 바꾼 것도 그렇고, 오래전 문자를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보낸 것이라고 구속영장 서류에 적시한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이 법원과 검찰을 속여 피의자를 구속하려고 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김씨의 변호를 맡은 장경욱 변호사는 “별다른 혐의가 없는 김씨를 구속하기 위해 경찰이 증거 조작을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수사기관이 범죄를 저지른 것이기 때문에 담당 경찰 등을 수사하고 김씨의 구속을 취소하라고 요구할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사실관계를 파악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지난 11일 김씨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발부된 이후 담당 수사관이 착오를 한 사실을 확인해 검찰에 바로 사실을 알렸다. 경찰이 먼저 관련 사실을 알렸다는 점에서 증거 조작 의도가 있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왜 김씨와 전혀 관계없는 수신 문자를 송신 문자로 둔갑시켰는지, 체포되기 훨씬 이전의 문자를 김씨의 증거인멸 정황으로 제시했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이 증거서류를 고의로 위조한 것으로 확인되면 구속 중인 김씨의 신병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경찰 본인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증거 조작은 매우 이례적인 사안”이라면서도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간혹 결과를 맞춰놓고 수사를 하다 보면 탈이 나곤 한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검찰이 구속영장 집행을 취소하거나 법원이 구속적부심을 통해 김씨를 풀어주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가 김씨 수사 과정에서 증거서류 등을 위조한 사실이 드러나면 파장은 더 커질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할 때 문자를 주고받은 원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사실관계 파악이 어려웠다. 현재 정확한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문제의 문자는 이 사건과 무관한 사람이 보낸 문자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정환봉 권지담 고한솔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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