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4121
“국민 71%가 원전찬성” 기사는 왜곡됐다
[비평] 한국원자력학회, 절묘한 시점에 설문조사 의뢰하고 선행정보로 유리한 결과 유도…언론은 역시나 ‘받아쓰기’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2018년 08월 17일 금요일
‘국민71%가 “원전 찬성”’. 17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제목이다. 한국원자력학회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쓴 기사다. 그런데 이 기사 제목은 기자의 ‘관점’에 따라 이렇게 바뀔 수도 있었다. ‘국민 70%, 전기 부족해도 원전은 싫어’.
조선일보 기사의 토대가 된 설문조사를 뜯어보자. 첫 번째 문항은 이러했다.
“귀하께서는 우리나라에서 전기 생산 수단으로 원자력발전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기 생산 수단’이란 설명이 붙었다. 전기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특히 폭염 속 에어컨에 의지하는 우리에게 전기는 꼭 필요하다. 이 질문은 전기사용량이 급증하며 정부가 전기요금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확정하라고 지시한 8월6일에서 7일 사이 던져졌다. 8월6일은 ‘폭염보다 무섭다’는 전기요금 고지서가 배달된 날이기도 했다. 언론은 이날 ‘폭염고지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 결과 전기 생산 수단으로 원자력발전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찬성한다’는 응답은 71.6%가 나왔다. 당시 국면에서 ‘반대한다’는 응답은 곧 “나는 에어컨을 포기하겠습니다”는 말과 같았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26%에 그쳤다. 이와 관련 여론조사전문가인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극악무도한 살인사건 이후 사형제 폐지를 물으면 문제가 될 수 있듯이 여론조사 시점에 대한 문제제기는 가능해보인다”고 밝혔다.
다음 문항은 이렇다. “현재 원자력 발전은 우리나라 전기 생산의 약 30% 정도를 담당합니다. 귀하께서는 앞으로 원자력발전이 차지하는 전기 생산 비중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30%라는 수치는 왜 들어갔을까. 윤희웅 센터장은 “버스요금 여론조사를 할 때 버스요금을 언급해주는 식으로 사실을 언급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선행정보가 응답을 좌우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하며“30%라는 수치는 사회적 논란에 비해 생각보다 비중이 적다는 인상을 준다”고 지적했다.
이에 비춰보면 30%란 수치는 원자력 발전이 전기 생산에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관점을 심어주기 위함이고, 이렇게 되면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은 나오기 어렵다. 설문 결과는 늘려야 한다는 응답이 37.7%, 현재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31.6%, 줄여야 한다는 응답은 28.9%였다.
지난 6월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한국갤럽이 ‘30%’ 수치와 ‘전기 생산 수단’을 언급하지 않고 조사한 설문결과는 어떨까. “귀하는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정책이 다음 중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란 설문에 원전 확대 14%, 원전 축소 32%, 현재수준 유지 40% 응답이 나왔다. 불과 40일 전 설문인데 37.7%와 14%라는 간극이 벌어졌다.
한국리서치는 ‘전기 생산에 가장 적합한 발전원’을 묻기도 했다. 이 질문에 44.9%가 태양광을 선택했다. 원자력을 선택한 응답은 29.9%였다. 이는 방사능 안전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만약 이 대목을 기사의 리드로 뽑았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전기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시기에도 원자력발전을 원하는 국민은 10명 중 3명뿐”이란 기사를 쓸 수 있다.
그러나 기사는 원자력발전에 우호적인 원자력학회가 원하는 대로 나왔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보도자료를 구성했고, 언론은 원자력학회가 원하는 대로 보도자료를 베껴썼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8월17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국민71%가 “원전 찬성”’이다. 원자력학회 보도자료 제목은 “국민 10명 중 7명 ‘원자력발전 이용 찬성’”이었다.
▲ 8월6일과 8월7일 원자력학회 설문조사 결과 관련 기사.
원자력학회가 내놓은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쓴 기사만 놓고 보면 작년에 공론화위원회 이후 한국사회 원전여론이 참 많이 바뀐 것 같지만 일종의 착시효과다. 원자력학회가 원하는 것도 이거다. 원자력학회는 보도자료에서 “이 조사의 상세 결과 해석에는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확실한 것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국민 다수가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친원전 매체인 조선일보는 이날 ‘71%가 원전 찬성, 탈원전 재검토하면 그게 진짜 소통’이란 제목의 사설을 내며 “우리 국민은 작년 6월 탈원전 선언 이후 1년 넘게 원전 논란을 지켜보면서 공론화 과정 못지않게 학습을 했고 탈원전 정책으로 실제 나타나는 결과들을 목격했다. 그 결과 국민 대다수가 원전의 유지 또는 확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의 53.2%는 원자력발전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35.5%였다. 확대는 9.7%에 그쳤다. 그러나 원자력학회와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9.7%를 71%로 끌어올리는 일종의 ‘마법’을 선보였다. 이정도면 기사보다 선전에 가깝다.
이 같은 보도행태는 ‘돈’과 연관돼 있을 수 있다. 조선일보는 2012년 4월20일자에서 ‘원전강국 코리아’ 기획기사를 통해 “싼값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은 원자력발전 덕분”이며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성은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원자력문화재단은 조선일보에 보도협찬금으로 5500만원을 집행했다. 2012년 3월6일자 조선일보의 천병태 원자력재단이사장 인터뷰는 1100만 원짜리였다. 해당 기사에 돈을 받고 나간 기사라는 고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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