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atidx=57530 

“우주물리학,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
고희 맞이한 스티븐 호킹
2012년 01월 10일(화)

불치병으로 진단을 받아 몇 년밖에 못산다는 한 20대 젊은이가 지난 50년 동안 병마와 싸우는 파란만장한 인생 속에서 거대한 과학적 업적을 일구어 냈다면 그에게 고희란 남다르다는 표현을 넘어 인간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이론물리학자로 꼽히는 스티븐 호킹 박사가 8일 70회 생일을 맞이했다. 사진은 1980년대 NASA를 찾았을 때의 모습. NASA제공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 당국이 8일(영국 시간)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가 건강상의 문제로 대학이 마련한 70회 생일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밝혔다고 유력일간지 인디펜던트(Independent)가 보도했다. 

그러나 그의 고희를 기리는 천문학 학술대회는 이날 하루 종일 계속되었다. 호킹 박사는 대학이 주최한 4일간의 심포지엄 중 마지막 날 열린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채 미리 녹음된 컴퓨터 음성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날 케임브리지 대학의 레스벡 보리시비치(Leszek Borysiewicz) 부총장은 “호킹 박사는 건강악화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지난 금요일 퇴원해 자택에 머물고 있으며 불행하게도 회복속도가 빠르지 않아 이 자리에 참석할 만큼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킹 박사는 21살 때인 1963년 불치병인 루게릭병(근위축증) 진단을 받았다. 이 병에 걸린 환자들은 3~4년 사이에 사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호킹 박사는 이러한 역경을 극복하고 이론천체물리학에서 가히 혁명적인 업적을 일구어 내 알버트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이론물리학자로 평가 받고 있는 학자다.

한편 심포지엄 참석자들은 호킹의 컴퓨터 음성이 나오자 그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며 뜨거운 박수로 쾌유를 기원했다. 호킹 박사는 이날 자신의 베스트셀러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에서 따온 ‘나의 짧은 역사(a brief history of mine)’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우주에 대해 호기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나는 너무나 행복한 사람”

그는 “내가 평생 동안 이론물리학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너무 영광스러운 것이었다”고 회상하면서 “지난 40년간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엄청나게 변화했고, 그러한 변화에 내가 조금이라도 기여했다면 난 아주 행복한 사람임이 틀림없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한편 BBC는 지난 6일 호킹 박사의 고희를 앞두고 시청자들이 보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방송을 통해 공개했다. 여기에서 호킹 박사는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로 핵전쟁과 지구온난화를 지적하면서 인류 멸망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핵전쟁이나 온난화로 1천 년 이내에 인류 멸망의 재앙이 찾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또한 우주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도 멸망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100년 안에는 어렵겠지만 우리가 화성이나 태양계의 다른 행성에 자급자족이 가능한 식민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술이 진보하면 인류가 우주의 다른 지역까지 퍼져나가는 게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우리 인류,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당해서는 안 돼”

▲ 스티븐 호킹 박사는 우주의 미스터리인 블랙홀에 대한 기존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었다. 

호킹 박사는 또 외계인에 대해 입을 열면서 외계인과 접촉할 때는 매우 신중하게 대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만약 외계인들이 먼저 지구를 방문한다면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외계인이 우리에게 먼저 접촉한다면 우리보다 앞선 기술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따라서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수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한 뒤 토착 인디언 인구는 급감했으며 150년 동안 90%가 줄어들었고 심지어 3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주장도 있다.

본격적인 학문은 불치병 진단 때부터 시작돼

옥스퍼드에서 태어난 그는 1962년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준비를 하고 있던 1963년, 몸 속의 운동신경이 차례로 파괴되어 전신이 뒤틀리는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진단과 함께 1∼2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인생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그의 학문 인생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우주물리학에 몰두하여 1973년 “블랙홀은 검은 것이 아니라 빛보다 빠른 속도의 입자를 방출하며 뜨거운 물체처럼 빛을 발한다”는 학설을 내놓아, 블랙홀은 강한 중력을 지녀 주위의 모든 물체를 삼켜버린다는 종래의 학설을 뒤집었다.

1985년 폐렴으로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아 목소리를 잃었고, 가슴에 꽂은 파이프를 통해서 호흡을 하고 휠체어에 부착된 고성능 음성합성기를 통해서만 대화가 가능했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 그는 ‘특이점 정리’, ‘블랙홀 증발’, ‘양자우주론’ 등 현대물리학에 3개의 혁명적 이론을 제시하였다. 세계 물리학계는 물리학의 계보를 갈릴레오, 뉴턴, 아인슈타인에 이어 다음으로 그를 꼽고 있다. 

그는 계속 미시의 세계를 지배하는 양자역학과 거시의 세계인 상대성이론을 하나로 통합하는 이론인 양자중력론 연구에 몰두해 왔다. 1990년 9월 휠체어에 탄 채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대과 고등과학원 등에서 ‘블랙홀과 아기우주’라는 주제로 강연을 갖기도 했다.

김형근 객원기자 | hgkim5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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