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cience/kistiscience/515965.html 

우주 날씨도 예보한다
[한겨레] 등록 : 20120125 17:25
   
과학향기

 

두 과학자가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모니터에는 태양에서 발생한 거대한 폭발이 수성과 금성을 지나 지구를 삼키는 모습이 나타난다. 한 과학자가 “이건 슈퍼플레어야. 지구 위 모든 생명체가 죽게 될 거야”라고 얼이 빠져서 되뇌듯 말한다. 그리고 잠시 후 인류의 모든 문명과 지구의 생명체가 처참하게 파괴된다. 2009년 개봉된 영화 ‘노잉(Knowing)’의 한 장면이다.
 
모든 생명의 근원인 태양.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태양이 모든 생명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태양에서 거대한 플레어 폭발 현상이 일어나면 모든 생명이 한 순간에 파괴될 수 있을까?

플레어는 태양의 에너지가 순간적으로 좁은 영역에서 분출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에너지 폭발현상이 가능한 이유는 태양을 구성하는 물질이 전자와 이온으로 분리된 플라즈마 상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즈마는 자기장과 상호작용하며 운동한다. 그러다 특정한 자기장 모양이 만들어지면 플라즈마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막히면서 에너지가 쌓이게 된다. 이 때 이 지역은 주위의 태양 표면보다 온도가 낮고 어둡게 보이는데 이것을 흑점이라고 부른다. 에너지가 모인 태양 흑점은 어느 순간 강렬한 폭발을 일으키며 플레어를 만든다. 이 때 발생하는 에너지는 핵폭탄 수백만 개와 맞먹을 정도의 위력을 갖는다.

이렇게 큰 폭발이 태양에서 발생했는데 어떻게 지구가 안전하단 말인가? 영화에서는 분명 태양 폭발이 지구를 집어 삼켰는데 말이다. 혹시 이 영화를 자세히 본 독자라면 태양을 실제보다 크게 묘사했다는 것을 잡아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태양 반지름의 약 3배 정도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태양 지름의 100배나 된다.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폭발은 강렬하지만 이렇게 먼 거리에 있으니 지구는 안전할 수밖에 없다. 일단 지금은 말이다.

그러면 앞으로는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는 소리인가? 그렇다. 태양이 수소에너지를 다 소모하고 나면 헬륨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는데, 이 때 태양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지구 근처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런 별을 적색 거성이라 부른다. 이때가 되면 아마도 영화에서처럼 플레어 폭발에 의해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걱정하기에는 너무 먼, 수십 억 년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현재 일어나는 플레어 폭발이 지구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강한 플레어가 발생하면 지구의 전리층을 교란시켜 전파, 통신이 두절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플레어 폭발과 더불어 많은 태양 입자들이 우주로 쏟아져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코로나 질량 방출(CME, Coronal Mass Ejection)이라고 한다. 태양 입자가 지구에 도달하게 되면 지구의 자기장을 교란시키고 인공위성의 작동을 멈출 수 있으며 우주에서 활동하는 우주인들은 많은 방사선에 피폭될 수 있다. 잘 모르고 지나갈 수 있지만 장거리 비행을 하는 승객들도 적지 않은 방사선에 노출된다. 뿐만 아니라 지구 자기장 변화에 의해 지표면에 많은 전류가 흐르면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얼마나 큰 플레어가 폭발하면 이런 일이 생길까? 단순히 플레어의 세기와 이것에 의한 영향을 직접적으로 연관시키기는 어렵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큰 플레어 폭발 후 크고 작은 피해가 보고되고 있다.

1989년 X15등급(뒤의 숫자가 크면 클수록 더 큰 플레어)의 플레어 폭발 후 북미 지역에서는 대규모 정전 사고가 발생했다. 2003년에는 X17과 X10등급의 플레어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많은 위성이 오작동을 일으키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정도 규모의 플레어는 태양활동 극대기 동안 두세 차례 발생하게 되는데, 이 정도를 슈퍼플레어로 부르기엔 좀 약하다.

가장 큰 플레어는 1859년 발생한 플레어로, 지구에서 맨눈으로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정확한 측정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플레어 크기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앞에서 언급한 플레어 크기의 100배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물론 이 거대한 슈퍼플레어가 그 당시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당시는 전파통신을 이용하던 시대도 아니었고 인공위성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플레어가 오늘날 다시 폭발한다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까? 아마 세계의 주요 도시는 암흑으로 변하고 인공위성들은 기능을 멈추고 GPS 신호를 이용하는 여러 국가 기관의 전산망은 순식간에 엉망이 될 것이다. 그야말로 우주 재난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우주재난에 인류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우리가 태풍이나 폭설 같은 기상재해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과 같이 우주재난도 미리 알 수 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과학자들은 마치 일기예보를 하듯 우주날씨 예보를 하고 있다.

현재 우주날씨 정보는 관련 산업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국내 항공사에서는 우주날씨를 보고 특정항로의 운항 여부를 결정한다. 천리안 위성이나 무궁화 위성을 운용하는 위성운용국에서 우주날씨는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되기도 한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국내에서 나로호를 발사할 때도 우주날씨는 발사시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참고 정보가 됐다. 이렇듯 우주날씨는 우리 주변으로 점점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현재 천문연구원과 기상청, 국립전파연구원은 2013년 태양활동극대기를 대비해서 공동으로 우주날씨예보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과학자들은 지구의 온난화와 같은 기후 변화가 우주날씨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역사적으로 소빙하기였던 시기에는 태양의 흑점이 매우 적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사실이 우주날씨와 지구날씨 사이의 연관성을 설명해 주고 있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우주날씨 연구가 앞으로 지구 기후변화를 예측하는데 있어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우주날씨는 평소에 우리가 잊고 사는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구도 우주의 일부분이라는, 그리고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이 공간(Space)도 우주(Space)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우주가 우주날씨 예보를 통해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다.

글 : 이재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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