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4562


‘인터넷’은 지고 유튜브는 뜨고

[민언련 언론포커스]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

서명준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media@mediatoday.co.kr  2018년 09월 23일 일요일


인터넷 몽상가들이 간과한 것


한때는 완전 무시당하다가 이제와선 오히려 너무 과대평가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있다면 뭐가 있을까.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천사 같다거나, 가짜뉴스를 만들어내 질을 떨어뜨리는 괴물이라면 무얼까. 어떤 이에겐 아주 효과적인 소통의 도구고, 어떤 이에겐 미발견 대륙이라면 뭐가 있을까. 인터넷이다. 가장 최근에는 스스로 의식을 만들어가는 생명체라는 견해도 있다. 가령, 얼마 전 독일 출판계에 나온 핫한 책 ‘아날로그 혁명’에서 생물학자 크리스티안 슈페겔은 기술자연(TechNatur)이라는 개념으로 인터넷과 자연의 합일을 시도한다. 광케이블, 공유기, 웹서버 등이 모두 자연소재와 연결되어 있는 인터넷은 애초에 자연생태계의 일부인데, 자연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되면 연결될수록 이 테크네이쳐의 생태학은 인간과 자연의 협력을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의식을 만들어간다는 말씀이다. 다만, 이런 류의 말씀은 그럴듯하지만 사실 몽상에 가깝다. 물질적 힘의 논리가, 정치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몽상가들의 견해들은 좀 더 있다. 30여 년 전 월드와이드웹(WWW)이 등장했을 때, 곧바로 시민해방의 기술이라는 극찬이 쏟아졌다. 당시엔 조직된 집단이 스스로 참여하여 이슈를 만들고 누구나 정보에 접근해서 상호작용하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존경하는 이상적인 이용자가 전제되었다. 자본의 교환가치가 아닌, 이용자 스스로 만든 정보를 교환하는 자율적 실천의 매개체이자 자유의 확장 그 자체 말이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공포감도 있다. 국가의 개입이 그것이다. 개인 데이터가 털리는 감시사회가 도래한다는 비관적인 시각 말이다. 인터넷이 국가 정보기관의 도구라는 주장으로 유명한 인물은 에드워드 스노든이 있겠다. 이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는 양대 시각의 공통점은 시장(市場)의 논리가 빠져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기업과 기존의 생산관계를 파괴하는 인터넷 생산력 


시장에서 나오는 물질적 힘은 오늘 레거시 미디어와 같은 기존의 미디어 서비스 시장을 파괴하고 있다. 넷플릭스, 왓챠플레이, 푹, 티빙 등 온라인 동영상 제공 서비스(OTT)는 TV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는 지난해에 비해 월간 활성 사용자수가 1600%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상영관이 아닌 인터넷 스티리밍 방식으로 전 세계에 서비스하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최근 LG유플러스와의 제휴를 통해 IPTV에도 진출한다. 여기 흥미로운 점은 이 시장의 힘이 역설적으로 인터넷을 TV의 돌연변이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선형적·일방적이고, 수동적인 수용자의 매체인 TV로 인터넷이 회귀하고 있다. 상호작용과 능동적인 이용자의 매체인 바로 그 ‘인터넷’은 사라지고 콘텐츠 소비에 만족하는 ‘인터넷 바보상자’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미 미국 TV 시장은 이용률이 감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영화 '옥자'

▲ 영화 '옥자'


인터넷의 물질적 힘은 사실 엄청나다. 세계적인 규모의 택시회사 우버는 자동차 한 대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에어비앤비는 호텔 방 하나 없고, 스카이프는 전화인프라시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알리바바는 상품창고가 없다. 페이스북은 자체 콘텐츠가 없다. 이 힘을 인식하지 못한 IBM, 소니, MS, 노키아와 같은 디지털 공룡들이 몰락한 건 한참 돼도 벌써 한참 된 일이다. 이 힘은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을 넘어 이제 만물인터넷(Internet of Everything)으로 뻗어간다. 인간, 사물, 프로세스가 모두 연결되어 상호 최적화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도 한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팔이나 목에 걸치거나, 아예 몸속에 이식하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든 모든 사물과 생명체는 자신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서로에게 공급한다. 여기 최적화 개념의 핵심은 무엇보다 각각의 시공간 속에 맞춰 생산되는 ‘가치’를 말한다. 디지털 생태학이 놓치고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새로운 생태계의 성장 엔진인 인터넷은 이제 모든 것을 자본주의적 가치증식 과정으로 밀어 넣는다. 이것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이 속도는 너무 빨라서 시장은 불안정해진다. 그리고 레거시 미디어는 이것을 따라 잡기에 급급하다. 모든 확실성과 정체성의 기반은 파괴된다. 인터넷 생산력은 기존의 기업을, 기존의 생산관계를 파괴하고 있다. 생산력이 생산관계를 파괴한다는 마르크스의 진단은 정확히 맞아 떨어지고 있다. 


▲ 2015년 3월30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씨가 경기도 성남시 판교 공공지원센터에서 열린 경기창조경제혁신 출범식을 마친 뒤 센터를 시찰하던 중 사물인터넷(IoT) 기반 거미로봇의 갑작스런 작동에 놀라고 있다. 왼쪽부터 황창규 KT 회장, 박근혜씨, 남경필 경기도지사. ⓒ 연합뉴스

▲ 2015년 3월30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씨가 경기도 성남시 판교 공공지원센터에서 열린 경기창조경제혁신 출범식을 마친 뒤 센터를 시찰하던 중 사물인터넷(IoT) 기반 거미로봇의 갑작스런 작동에 놀라고 있다. 왼쪽부터 황창규 KT 회장, 박근혜씨, 남경필 경기도지사. ⓒ 연합뉴스


인터넷, 이제 정치의 범주 속에서 이해해야


사정이 이런데도 자본이라는 물질적인 힘이 만들어내는 ‘자본의 정치’라는 범주 속에서 인터넷을 바라보는 관점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시간을 절약하는 기술 인터넷에 열광하다가 이제는 더 큰 시간의 압박을 만들어내는 자본의 모습에 경악하고 있다. 자본은 인터넷을 한물간 TV로 후퇴시키고 있기도 하다. 두뇌에 신경생리학적인 연결망을 만들 만큼 빠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오히려 ‘인터넷’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을 정치의 범주 속에서 이해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최근 정치권이 주목하기 시작한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임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자가 진정 진보적이다.  


※ ‘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 주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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