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mtcha.com.ne.kr/koreaman/balhai/term5-1-jangmunhyu.htm


장문휴 (張文休 ; ?~?)

발해의 장군으로서 732년(인안 13) 무왕의 명령을 받아 수군을 이끌고 산둥[山東] 반도에 있는 당(唐)의 국제무역항 등주(登州)를 공격해, 자사(刺使) 위준(韋俊)을 죽이는 등의 성과를 올려 당의 동방정책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나당 연합군과 발해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본래 이 사건은 발해 무왕의 대외팽창에 위협을 느낀 동북만주의 흑수말갈(黑水靺鞨)이 발해와 우호관계를 단절하고 당과의 연결을 꾀하여 발해를 위협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흑수말갈이 당과의 연계를 희망하자, 당은 이들의 거주지인 헤이룽 강[黑龍江] 유역에 흑수주(黑水州)를 설치하고 이들로 하여금 발해를 견제시키려 했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무왕은 흑수말갈의 정벌을 결정했다. 그러나 무왕의 동생 대문예(大門藝)가 발해와 당 사이에 전면전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흑수말갈의 정벌을 중지시키려다가 실패하고 당으로 망명하자, 당은 대문예를 좌효기장군(左驍騎將軍)에 임명하여 예우하고 발해의 송환요구를 거절했다. 이로 인해 당에 대한 강경책으로 돌아선 발해는 수군을 동원하여 등주를 공격했다. 당은 대문예로 하여금 유주(幽州)의 군대를 이끌고 발해의 서변을 공격하게 하고, 신라에 원군을 파견하도록 요청했다. 발해의 세력증대에 위협을 느끼던 신라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733년(성덕왕 32) 군대를 동원하여 발해의 남쪽 변경을 공격했다.

러나 당과 신라의 공격은 발해의 반격과 추운 기후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후 이들은 상당기간 상호교섭 없이 긴장 관계를 유지하다가, 문왕 때 이르러 발해에 속해 있던 말갈족 세력이 동화되고 문물정비에 힘쓰면서 대외정책에서 온건한 태도를 보이자 다시 평화관계를 회복하고 교역을 시작했다.


<두산대백과사전>참고
<브리태니커백과사전><http://deluxe.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18j3026a>
[2003. 6. 10자 기사]참고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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