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110_0010_0040
연통산산성; 귀동욕산성(煙筒山山城; 龜洞峪山城)
연통산산성 위치도 및 위성사진
https://earth.google.com/web/@40.30941418,122.39425137,167.61462634a,1900.68515438d,35y,0h,0t,0r
형태사항 : 외성 남북 길이 140m, 동서 너비 65m(孫進己·馮永謙(1989), 陳大爲(1995), 馮永謙(1997), 魏存成(2002) 등은 1里라고 기록함. 東潮·田中俊明(1995)은 500m라고 기록함), 총면적 9,100㎡│내성 남북 길이 30m, 동서 너비 15m 3점
출토지 : 요녕성 개주시 서둔진 노동구촌(遼寧省 蓋州市 徐屯鎭 盧東溝村)
구조 특징
『蓋平縣志』에 의하면 “龜洞峪山城”이라는 명문이 돌에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귀동욕산성(龜洞峪山城)이라고 부르기도 함.
성은 전체적으로 내성, 중성, 외성으로 구분할 수 있음(崔艶茹·馮永謙·催德文, 1996; 崔艶茹, 2009)(王禹浪·王文軼(2011) 등은 성의 구조를 외성, 내성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내성은 연통봉(煙筒峰)이 있는 산봉우리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고, 성벽은 산봉우리 절벽을 따라 축조되어 있으며, 평면은 불규칙적이고, 둘레는 약 300m 정도라고 기록함). 평면은 남북이 긴 불규칙형이고, 중성의 평면은 ‘ㄱ’자임.
연통산의 전체적인 지리환경을 토대로 판단해 볼 때, 동·서·남쪽 세 줄기의 산등성이가 둥글게 감싸면서 형성된 골짜기가 산성의 외성으로 볼 수 있고, 동북 주봉(즉 연통형 거석이 있는 산봉, 이하 연통봉)의 성벽 등의 유적은 산성 내성의 중요 부분을 구성함(王禹浪·王文軼, 2011). 연통산의 동북 주봉 북쪽 구릉에 성문, 봉화대, 성벽 등의 유적이 남아 있음.
산성은 산등성이를 따라 돌로 축조하였는데, 커다란 돌은 가공하였고, 성벽 안의 돌은 대부분 작은 자연석괴임. 성벽의 가장 높은 구간은 10m에 달하지만, 일반적인 높이는 5m이고, 너비는 2m임. 연통산 서·남 산등성이에서는 성벽유적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음. 즉 산세가 험준한 절벽은 자연스럽게 성벽의 역할을 함.
성의 중심(내성)은 내성 동남모서리로, 성에서 가장 높은 지점임. 험준한 산봉우리인 동면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성벽이 축조되어 있음. 내성을 오르려면 계단 없이 암벽을 올라야 하는 등 오르기가 쉽지 않은데, 당시 축성인의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임(崔艶茹·馮永謙·催德文, 1996). 서벽 남단이 외성과 겹치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내성 성벽임.
성 남면에 작은 방성권(方城圈)이 있는데, 계단이 있어 내성으로 갈 수 있음. 이 작은 성은 동서 길이 10m, 남북 너비 3m임. 당시 남성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축조한 것임.
성문의 수와 관련하여 서벽 가운데에 성문 1개가 있다는 기록(崔艶茹·馮永謙·催德文, 1996; 王禹浪·王宏北, 2007; 王禹浪·王文軼, 2008; 國家文物局, 2009; 崔艶茹, 2009), 산골짜기 입구에 성문 1개가 있다는 기록(王綿厚, 2002), 서벽과 중성 남·북 등 세 개의 문이 있다는 기록(王禹浪·王文軼, 2011(중문을 설정하지 않고, 내성에 남·북 두개가 있다고 하였으므로 내성에 있다고 한 문 두 개는 중성에 있는 문으로 추정됨)) 등이 있음.
출토유물로는 승문벽돌, 회색기와편 등이 출토됨. 높은 대지 아래 지면에 암키와편이 흩어져 있음. 산성 안에서 기와편이 가장 많이 출토되었는데, 출토된 토기편은 같은 시기의 것이 아님. 오랜 기간 동안 성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역사적 의미
연통산성은 학양사산성(鶴羊寺山城)과 함께 고구려시기에 대청하(大淸河) 하류를 지켰던 중요한 성이라고 할 수 있음. 비록 규모는 작지만 북쪽으로 고구려 건안성(建安城)으로 추정되는 개주시 고려성산성(蓋州市 高麗城山城) 가까이에 있고, 서남쪽으로는 쌍대자향 파대산성(雙臺子鄕 破臺山城)과 양원향 분영산성(楊遠鄕 奮英山城)이 있으며, 동남쪽에는 십자가향 고려성산산성(什字街鄕 高麗城山山城)과 적산산성(赤山山城)이 있음. 이러한 산성들은 대청하(大淸河)와 벽류하(碧流河) 분수령을 통제할 수 있는 요동반도 중간지대의 성읍군(城邑群)을 구축하는 등 당시 교통지리와 군사지리에 매우 중요함.
404년 광개토대왕이 백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요동(遼東)공략을 시작하였는데, 모용씨(慕容氏)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결국 요동을 확보함. 이 때 고구려는 요동지역에 방어성 성격의 산성을 대거 축조하였는데, 영구(營口)지구에 위치한 산성들은 404년 이후 광개토대왕이 요동지역을 장악하면서 세운 것으로, 고구려 중기 혹은 그 이후에 축조되었다고 할 수 있음(崔艶茹, 2009).
자연환경
개주시 동남쪽 10㎞의 서둔진 노동구촌(또는 盧屯이라고도 부름) 서남쪽(王綿厚(2002)는 동남쪽으로 기록함)의 연통산(煙筒山)에 위치함. 산 이름의 유래와 관련하여 동북쪽 主峰에 연통과 모양이 유사한 거석 산봉우리가 있기 때문에 연통산(煙筒山)이라고 부름. 연통산(煙筒山)은 해발 618m임. 산성 서쪽으로 직선거리 1.6㎞ 떨어진 지점에 대청하(大淸河), 서쪽으로 직선거리 18㎞(王綿厚(2002)와 王禹浪·王宏北(2007, 2010)은 30㎞라고 기록함) 떨어진 지점에 요동만(遼東灣), 서북쪽으로 16.6㎞ 떨어진 지점에 학양사산성(鶴羊陽寺山城)이 있음.
산성은 대청하(大淸河)와 벽류하(碧流河)의 분수령에 위치함. 대청하(大淸河)는 여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서쪽으로 꺾은 후 요동만(遼東灣)으로 단독으로 유입됨. 벽류하(碧流河)는 남쪽으로 흘러 황해로 유입됨.
연통산에는 동서 두 줄기의 산등성이가 있고, 두 줄기 산등성이가 합쳐져서 비교적 큰 산골짜기가 형성되어 있음. 산골짜기의 방향은 좌남면북이고, 지세는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음. 두 줄기의 산등성이 남측에는 남부의 산등성이가 연결되어 있음. 북측은 산골짜기 입구임. 산성은 산을 등지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음. 산골짜기 입구에는 사묘(寺廟)의 산문(山門)이 있음. 산문(山門)을 지나는 작은 길은 산기슭 아래의 개주시(蓋州市)와 장하시(庄河市)를 연결하는 305국도와 연결됨.
유물 정보
전돌(塼) 1점, 기와편(瓦片) 1점, 암키와편(板瓦片) 1점, 토기편(土器片) 1점
참고문헌
· 孫進己·馮永謙, 『東北歷史地理』, 黑龍江人民出版社, 1989
· 東潮·田中俊明, 『高句麗の歷史と遺跡』, 中央公論社, 1995
· 陳大爲, 「遼寧高句麗山城再探」『北方文物』 1995-3, 1995
· 崔艶茹·馮永謙·催德文, 『營口市文物志』, 遼寧民族出版社, 1996
· 馮永謙, 「高句麗城址輯要」『高句麗渤海硏究集成』 高句麗 卷(三), 哈爾濱出版社, 1997
· 王綿厚, 『高句麗古城硏究』, 文物出版社, 2002
· 魏存成, 『高句麗遺跡』, 文物出版社, 2002
· 王禹浪·王宏北,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 (上), 哈爾濱出版社, 2007
· 王禹浪·王文軼, 『遼東半島地區的高句麗山城』, 哈爾濱出版社, 2008
· 國家文物局, 『中國文物地圖集』 遼寧分冊, 西安地圖出版社, 2009
· 崔艷茹, 「營口地區山城調査與檢討」『東北史地』 2009-3, 2009
· 王禹浪·王文轶·王宏北, 「遼東半島高句麗山城槪述」『黑龍江民族叢刊』 2010-2, 2010
· 王禹浪·王文轶, 「營口地區的高句麗山城」『哈爾濱學院學報』 2011-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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