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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봄 고구려유적 답사 2일차 안내 : 건안성

김용만 2019년 3월 29일 오후 3:35 


2일차 오후 답사 건안성 소개입니다. 


2일차 오후에는 개주시 청석령향(靑石嶺鎭) 고려성자촌 동쪽 석성산에 위치한 고려성자산성(高麗城子山城 - 청석령산성으로 부릅니다.)을 보러 갑니다. 이 산성은 고구려 요동방어의 중심성이라고 할 수 있는 건안성으로 추정합니다. 


645년 당나라는 영주자사 장검으로 하여금 당의 본진이 도착하기 전 건안성 공격을 명합니다. 하지만 고구려 군에 의해 격퇴됩니다. 당태종이 이끄는 본진과, 이세적, 이도종이 인솔하는 요동도행군이 요동성과 안시성 사이에 위치한 주필산에 주둔하면서 활로를 찾지 못하자, 당태종은 요동반도 남단에 머물러 있던 평양도행군대총관 장량으로 하여금 건안성을 공격하게 합니다. 평양도행군은 당나라 주력군에 식량 등을 보급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건안성 앞에서 고구려군에 의해 격퇴됩니다. 당군이 식량 부족으로 퇴각하게 된 것은 건안성의 고구려군이 장량의 평양도행군을 격퇴한 탓도 있습니다. 그래서 건안성 전투는 신성, 주필산 전투와 더불어 고-당 전쟁 3대 전투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요동성에서 서남쪽으로 3백리 떨어진 곳으로 건안성이 만약 함락되었다면, 고구려 서부 방어의 핵심인 천산산맥을 적이 통과할 수 있는 청석령 길이 열리게 됩니다.  그래서 고구려의 입장에서도 방어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했던 곳입니다.


건안성 주변은 과거 고조선의 중심지였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개주 지역을 고조선의 수도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개주 일대가 요하 하구로 물류의 중심지였고, 주변이 비교적 넓은 평지로 되어 있어 생산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록에는 이곳 주변에 철관(鐵棺)과 염관(鹽官)이 있다고 했으니, 경제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습니다.4 35년 고구려가 북연의 수도에 진격하여, 북연의 풍홍 왕 일행을 데려와서 개주 주변에 머물도록 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많은 역사를 지닌 개주 지역의 중심성인 건안성은 고구려 시대에는 욕살급 지방장관이 지킨 큰 성이었습니다. 지금도 계곡을 끼고 주위 산 능선에 성곽을 쌓은 전형적인 포곡식 산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약 5㎞에 달하는 건안성은 서쪽 골짜기 입구를 제외하면 사방이 산등성이로 둘러싸여 있는 곳입니다.


건안성의 주출입구는 서북문으로, 옹성 형태였으나, 많이 파괴되어 있습니다. 성벽은 석축과 토축을 혼합해 축조했습니다. 흙을 다져 쌓은 판축기법으로 쌓은 성벽도 볼 수 있습니다. 또 성벽 위에는 5~6m의 마도가 있고, 중간에 사각형 구멍이 뚫린 곳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각 구멍은 성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 설치된 곳으로 여겨집니다. 남문 주변에는 치가 있고, 내부에는 우물 5곳과 저수지가 있습니다. 성 내부에는 금전산(金殿山)이라는 작은 산이 있는데, 이곳에서 건물터와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장대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금전산에서는 요동만도 보입니다. 이번 답사에서는 성이 워낙 넓은 만큼 전체를 다 둘러보기는 어렵고, 서문으로 들어가 남문까지 가서 성벽을 둘러보는 코스로 성을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성 안이 워낙 넓은 만큼, 성안에 민가도 많습니다. 민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답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먼저 사진으로 건안성을 감상하시겠습니다.


답사 시간은 오후 2시 반에서 5시 반(약 3시간) 정도로 예상하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다소 증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건안성을 답사 한 후 1시간 반 정도 이동하여, 해성시에서 숙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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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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