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nahf.or.kr/id/NAHF.iskc.d_0009_0050


안시성(安市城) [附 해룡천산성(海龍川山城)]

 

해성시(海城市)에서 동남쪽으로 8km 거리의 팔리진(八里鎭) 영성자촌(英城子村)에 자리잡고 있다. 산성의 서쪽으로 사철하(沙鐵河)가 흐르고 있고, 동남쪽 방향으로 연안의 평지가 기다랗게 뻗어 있다. 사철하 건너편으로는 해성-수암(水岩) 도로가 나란히 지난다. 요동평원은 성의 서북쪽에 펼쳐져 있다.


토성(土城)으로 둘레 길이는 2.7km 혹은 4km로 보고자마다 차이를 보인다. 동북 모서리에서 서남과 동남 두 갈래로 뻗어내린 산등성이가 성 안을 감싸고 있고, 두 산줄기는 서쪽 골짜기에서 만난다. 산등성이의 바깥은 가파른 산비탈이지만, 안쪽으로는 완만한 경사지가 펼쳐져 있다. 성 안에는 작은 개울이 서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데, 개울 주변으로 평지가 넓게 전개되어 있다. 몇년 전부터 외지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어 안시성의 현재 상태는 알 수가 없다.


마을이 들어서 있는 서문터가 성의 정문으로, 남북에서 내려온 산등성이에 의해 성문이 보호되는 ‘U’자형 옹성 구조이다. 서벽에는 서문과 수구문터를 중심으로 100m 길이의 판축 토벽을 두텁게 구축하였다. 판축의 토벽은 능선으로 이어진다. 북벽에는 북문터가 있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고 한다. 동벽에도 문이 하나 있었다. 남벽은 네 방면의 성벽 가운데 가장 긴 구간이나, 보존상태가 썩 좋지는 않다고 한다. 한편 성 서북쪽에는 외곽(外廓)이 있었다. 북벽 서단에서 서쪽 평지 방향으로 기다랗게 뻗은 산등성이가 있고, 산등성이를 따라 성벽을 세웠다. 약 500m의 길이로 사철하에 닿는 곳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망대는 네 방향의 귀퉁이마다 세웠다. 동남쪽의 규모가 가장 크다. 서북쪽 대지에서는 성 안과 서벽 바깥쪽을 내려다 볼 수 있고, 고구려 기와조각도 많이 나왔다고 하여 장대(將臺)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동남 모서리 바깥쪽에 안시성 공방전 당시 당군이 쌓았다는 토산이 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다.


645년 고당(高唐)전쟁에서 위기에 빠졌던 고구려를 구한 것은 안시성민이었다. 당군의 요하 도하 이래 고구려의 요격은 번번이 실패하였고, 백암성(白巖城)의 경우처럼 항전을 포기하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었다. 급기야는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출정했던 15만 고구려군마저 안시성 동남쪽에서 패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조만간 당군이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한 듯 보였다. 그러나 고립무원의 처지 속에서 안시성민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당군을 막아냈다. 나중에는 당군이 전력을 기울여 쌓은 토산마저 빼앗는데 성공하였다. 결국 안시성민의 분투로 당군은 그동안의 성과를 버려둔 채 서둘러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최근에는 대석교시(大石橋市) 주가진(周家鎭)의 해룡천산성(海龍川山城)을 안시성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나와 있다. 안시성의 명칭이 요동군의 안시현(安市縣)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대석교시 탕지향(湯池鄕) 인근의 영수구고성(英守溝古城)터를 군현의 평지성으로 보고, 그 부근의 해룡천산성을 군현 축출 뒤에 고구려가 세운 산성으로 간주한 것이다. 


영성자산성(英城子山城) 사진

안시성의 전경(서→동)

성 안의 전경(동→서, 1998)

안시성 단면도

서문터와 남벽(1998)


 

해룡천산성(海龍川山城) 사진


해룡천산성의 서벽

성 안에서 본 서문터

동벽 구간과 성 안 전경

영수구고성 터

요하 하구(요령성 영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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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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