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31225.html
물 만난 인터넷 안보전위대
[특집2] 법으로 정치활동 금지된 재향군인회…
국가예산으로 인터넷 매체 <코나스넷> 운영하며
사회·정치 문제에 극우적 주장 일삼고 사실상 ‘정치활동’
사회·정치 문제에 극우적 주장 일삼고 사실상 ‘정치활동’
▣ 고나무 [2012.01.30 제895호]
≫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지난해 6월 열린 한국전쟁 61주년 참전유공자 위로연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과 박세환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대통령 오른쪽),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왼쪽)이 입장하고 있다. 국가보훈처와 재향군인회가 군인 복지, 군사정책 문제를 넘어 선거, 복지 등 안보와 무관한 정치활동에 개입한다는 지적이 많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깃발이 날린다. 사람들은 구호를 외친다. 상대편을 바라보는 시선은 공격적이다. 지난해 11월10일 서울역 광장에 사람들이 모였다. 이날 집회의 풍경은 다음날 <조선일보> 사회면에 이렇게 기록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산업은행 앞 3차선 도로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한편 이날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에는 재향군인회 등 10개 보수단체 연합체인 애국단체총협의회 2천여 명(경찰 추산)이 한-미 FTA 비준 촉구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국회는 종북 반미 세력에 휘둘리지 말고 한-미 FTA를 즉각 비준해 국익을 지키라’고 주장했다.”(<조선일보> 2011년 11월11일치)
≫ 향군회관. <한겨레21> 김경호
이상훈 전 향군회장 “좌파 판사들 득세”
언론은 대한민국재향군인회(이하 향군)를 ‘보수단체’라 불렀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에 향군의 설립 목적이 나와 있다. ‘재향군인 상호 간의 상부상조를 통한 친목을 도모하고 회원의 권익을 향상시키며 국가발전과 사회공익 증진에 이바지함’(1조)이다. 정치활동은 엄격히 금지(3조 1항)된다. 향군 임원은 정당의 대표자, 간부, 회계 책임자가 될 수 없다. 제대 군인의 복지 증진이 가장 큰 임무다. ‘호국정신의 함양 및 고취’는 향군 사업의 맨 아래 자리하고 있다. 법률 어디에도 ‘보수단체’임을 추측하게 하는 조항은 없다. 정당의 간부가 되지 않는 한 법을 어긴 게 아니다. 이날 집회도 국민의 세금을 받아 이뤄진 ‘호국정신의 함양 및 고취’ 활동이었을 뿐이다.
지난해 8월15일 벌어진 집회도 마찬가지다. 향군이 우제창 민주통합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이날 향군 회원 1만 명이 서울광장에 모였다. 고엽제전우회, 상이군경회, 라이트코리아 등의 단체 회원도 모였다고 향군 기관지 <코나스넷>은 설명했다. 발언들이 쏟아졌다. “지금 우리나라는 간첩을 잡으려고 하면 일부 세력들이 ‘인권 탄압’이니 ‘야당 탄압’이니 하면서 문제를 일삼고 법원에서도 좌파 판사들이 득세해 이들을 무죄선고하는 나라가 되었다.” 애국단체총협의회 상임의장인 이상훈 전 국방장관의 말이다. 노병은 올해 78살이지만 ‘간첩’들에게 관용을 베풀 의사가 없다. 그는 육사 11기다. 청년 장교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호계장이었다. 영화 <모비딕>의 실화에 해당하는 사건이 1990년 일어났다. 당시 보안사(현 기무사)가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 야당 정치인과 민간인을 사찰했다. 기무사에 근무하던 윤석양 육군 이병이 양심선언을 했다. 이상훈 전 장관은 당시 국방장관이었다. 이상훈 장관은 해임됐다.
두 사람의 이후 인생은 다르다. 윤석양씨는 감옥에 갔다 왔다.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저 흐르는 시간은 정의를 선물하지 않는다. 상처받은 내부고발자는 지금 모든 언론의 접촉을 피한다. 회사원으로 생활인의 삶을 산다. 민간인을 사찰했던 군부의 책임자는 떳떳하다. 장관 경질 뒤 요직을 다 거쳤다. 노무현 정부에서 재향군인회장도 지냈다. 그리고 여전히, 백발을 휘날리며 정치집회에서 간첩을 잡자고 외친다. ‘복지 포퓰리즘 심판하자’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린 무대 위에서.
≫ 참여정부 때 삭감됐던 재향군인회 안보활동비는 이명박 정부 들어 크게 증가했다. 박세환 향군 회장은 2006년 향군 부회장 자리에 있으면서 노골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했다가 사퇴했다.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마사회는 2011년 인터넷 언론의 경우 극우매체에만 광고 집행을 했다.
향군, 안보 명분으로 ‘정치활동’에 예산 써
이처럼 향군이 법률의 정치중립 취지에 배치되는 ‘인터넷 안보전위대’로 활동해온 구체적인 내역이 <한겨레21> 취재 결과 새롭게 드러났다. <한겨레21>이 우제창 민주통합당 의원실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세금으로 운영되는 향군 본부 산하 조직에 호국안보국이 있다. 호국안보국은 안보부, 인터넷 안보부, 교육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안보 위해 요소 감시, 범국민 구국협의회 운영 등이 목적이다. 인터넷 안보부는 사실상 향군의 기관지 역할을 하는 인터넷 매체 <코나스넷>을 운영하고 있다. 1월12일 ‘종북세력 척결 기치, 대한국당 창당’ 기사가 한동안 톱기사로 게재됐다. 정통 보수정당을 표방한다는 참석자들은 “좌파 성향의 교육감과 교사들이 주도해 통과시킨 학생인권조례안으로 인해 초·중·고생의 동성애, 임신, 출산과 정당, 정치활동까지 허용하는 교육 현실”을 개탄했다.
‘안보’는 국어사전에 ‘외부의 위협이나 침략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로 정의된다. 안보전위대는 안보의 전선을 확대하고 확장한다. 현 향군 간부들에게 FTA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야당이 모두 북한과 다를 바 없는 위협이나 침략으로 간주된다. <코나스넷>도 남북 문제뿐 아니라 선거, 사회·정치 이슈 등에 관한 기사를 많이 쓴다. <코나스넷>은 2011년 12월7일치 기사에 “박원순 시장은 교육파괴 무상급식 중단하라. 무상급식 시행 후 학생들의 성장 장애와 건강이 우려될 정도로 급식의 질이 형편없어졌다”는 보수단체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 전인 지난해 10월19일에는 이른바 보수단체인 ‘뉴서울시민연대’가 나경원 후보를 지지 선언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코나스넷>은 2003년 창간됐다. <코나스넷>은 <한겨레21>에 “2003년 11월11일 창간 당시 우리 사회는 남북교류 확대, 햇볕정책 등의 영향으로 인터넷상에서도 친북을 표방하는 많은 사이트들이 범람한 실정이었다”며 “그럼에도 안보의 중요성을 알리는 인터넷 매체는 열악한 실정이었다”라고 창간 계기를 설명했다.
이처럼 호국안보국은 안보를 명분으로 내걸고 사실상 정치활동을 하고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정치 중립성이 문제가 돼 향군의 안보활동비 예산이 전액 삭감된 바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들어 안보활동예산이 부활했고 2011년 향군 호국안보국 총예산이 4억4229만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우제창 의원실 자료를 보면, ‘안보유지 활동’에만 2억1310만원의 세금이 지출됐다. 향군은 그러나 안보유지 활동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향군이 제출한 주요 활동 내역을 통해 안보유지 활동이 무엇인지 추측할 수 있다. 외교안보와 무관한 국내 정치·사회적 이슈에 몰려 있었다. 김백일 장군 동상 철거 준동 규탄 집회, 한-미 FTA 지지 국민대회, 종북세력 척결 및 교육 바로 세우기 국민대회 등이다. 김백일 장군은 독립군을 진압하던 간도특설대 출신 장성이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동상 철거 주장이 제기돼왔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는 관련 법에 따라 정치활동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그러나 안보를 명분으로 내걸고 사실상 정치활동을 하는 향군 산하 호국안보국의 2011년 예산은 4억4229만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2억1310만원을 ‘안보유지 활동’에 사용했다고 향군은 밝혔다. 향군이 밝힌 주요 활동엔 한-미 FTA 지지 국민대회, 종북세력 척결 및 교육 바로 세우기 국민대회 등이 들어 있다.
<코나스넷> 자문위원, 조갑제·인보길·신혜식
향군의 안보전위대 역사는 뿌리 깊다. 박세환 현 회장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향군 부회장이었으나 정치활동이 논란이 돼 사퇴했다.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을 재협상하겠다는 후보가 2007년 당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골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한 셈이다. 전통은 이어진다. 서진현 향군 호국안보국장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나경원 전 의원을 지지한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이었다. 이상훈 전 장관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극우 논조의 인터넷 매체 관련자들이 대부분 <코나스넷>의 자문위원이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인보길 <뉴데일리> 발행인,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 등이다. 교수, 퇴역 장성 등이 칼럼 필자로 활약한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도 2009년 6월부터 2010년 7월까지 6차례 칼럼을 게재했다. 박승춘 처장은 최근 ‘2040 안보교육론’으로 보훈처 업무를 왜곡한다는 비판을 샀다. 박 처장의 <코나스넷> 칼럼도 편향적이었다. “20~30대는 북한이 천안함 폭침 사태를 일으켜 우리 해군 장병 46명이 전사하였는데 6월2일 지방선거에서 안보 태세를 무력화시킨 세력을 다시 압도적으로 지지하였다. …이제 다시 20~30대는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노 정권에서 결정한 전작권 전환과 한미연합사 해체를 2015년 12월1일로 3년7개월 연기하는 극적 합의를 이루어 전쟁의 위기에서 일단 벗어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는데 좌파세력의 오도된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2010년 7월 칼럼) 그는 또 다른 칼럼에서 “지난 정권이 10년 동안 방송과 언론을 장악해서 국가 안위의 근본 문제에 대해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한 결과”라며 “미디어법 통과 이후 야당과 좌파세력 단체들은 연대하여 전국을 돌며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런 향군의 안보전위대 역사는 군 내부에서도 비판받았다. 평화재향군인회는 “기존 재향군인회는 제대군인과 유리된 고급간부 출신들만의 단체로 인식되고 있다”며 “반민족, 반통일, 반자주국방의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비판한다. 미국에는 재향군인회가 여러 개 존재한다. 홈페이지를 보면 이들은 주로 제대군인 복지 문제에 집중하며 정치적 이슈에 대한 발언은 보이지 않는다.
공기업의 안보전위대 밀어주기
공기업이 안보전위대에 도움을 준 정황도 <한겨레21> 취재로 새롭게 드러났다. 한국수력원자력이 2010~2011년 인터넷 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뉴데일리>에 각각 3400만원과 3800만원의 광고 집행을 한 사실이 <한겨레21>의 정보공개 청구 결과 드러났다. <뉴데일리>의 인보길 발행인은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뉴데일리>는 왜곡된 인터넷 언론 문화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로 2005년 창간됐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해 “반국가-반헌법-반미-친북적 선동·난동의 종합판”이라고 보도하는 매체다. 네이버 뉴스캐스트에도 등재돼 있다. 한국마사회는 2011년 인터넷 언론사 가운데 유일하게 <프런티어타임스>에 광고를 집행한 사실이 정보공개 청구 결과 밝혀졌다. 홈페이지에 ‘박원순의 김일성 만세- 북녘만 쳐다보면 오금이 저려오는 종북주의자들의 근성’ 기사가 눈에 띈다. 2004년 창간된 극우매체다. <경향신문> 기자 출신으로 1998년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의 공보특보를 지낸 이원창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초대 사장이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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