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6328.html 

어버이연합 ‘과격 노인네들? 우리도 할말 많다’
[한겨레] 최성진 기자   등록 : 20120127 16:45 | 수정 : 20120127 16:53
   
[르포] 200여명 ‘어르신’ 모인 어버이연합 방문해 안보강연 들어보니
“애국심 때문에 온다” 강조하지만 ‘외로움·고민’ 달래려는 노인도 많아

≫ 종로 인의동 쌍린빌딩 2층 어버이연합 강당에서 강연을 든던 중 구호를 외치는 노인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훅~’
 
흰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여닫이문을 살포시 밀자 더운 공기에 실린 땀냄새가 코끝을 때렸다. 창백한 형광등 아래에 모인 400여개의 눈동자가 문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젊은 방문자를 빤히 바라봤다. 마이크를 쥐고 강단에 서 있던 김진철 목사(남침 땅굴을 찾는 사람들 대표)도 잠시 말을 끊은 채 큰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고개를 한번 까닥한 뒤 본능적으로 눈동자가 가장 닿기 어려운 맨 뒷자리를 찾아갔다. 낯선 방문객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김 목사는 다시 핏대를 세우기 시작했다. “2012년은 자유 대한민국이 살아남든 공산주의가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든, 결판이 나는 한 해가 될 겁니다. 어르신들이 이렇게 강연장에 오셔야 대한민국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거예요. 자, 함께 외치겠습니다. 뭉치자! 싸우자! 이기자! 화이팅!” 김 목사가 선창하자 200여명의 ‘어르신’은 오른팔을 위로 뻗으며 화이팅을 따라했다.

지난 20일 오후 1시께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 옆에 있는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의 사무실 겸 강연장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 만큼 어르신들로 가득 찼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둔 금요일 오후였기에 평소보다 한산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아래로는 63살의 김아무개씨부터 위로는 올해 딱 100살이 된 조명선씨까지 어버이연합의 핵심 회원은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버이연합에서는 간이식당용 보조의자까지 총동원했지만, 앉을 곳을 찾지 못한 몇몇 어르신은 벽에 몸을 기댄 채 서서 안보 강연을 들었다. 어르신 200여명의 체온으로 한겨울 추위는 무색했다. 자연스레 ‘왜’라는 질문이 솟았다.

“어르신, 날도 추운데 뭐하러 나오셨어요.”

“내가 1·4 후퇴 때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이야. 그때 저놈들이 우리 부모·형제 다 죽였다구. 나만 겨우겨우 빠져나와 이렇게 살고 있는데, 원수를 갚아야지.”

조명선씨는 작지만 또렷한 발음으로 ‘그때’를 되짚었다. 60여년이 흘렀지만 그의 기억은 1951년 1·4 후퇴 당시에 머물러 있었다. 한반도 통일과 화합이라는 민족적 당위는 그의 비극적 가족사 앞에서 무기력한 것처럼 보였다. 어버이연합 초기부터 활동해온 권신웅(73)씨는 “좌파는 맨날 ‘민족끼리’를 강조하는데 (천안함 사태 등을 보면) 북한이 죽이는 건 미국이나 일본처럼 강대국 사람이 아니라 항상 우리나라 사람”이라며 “세계 3대 군사강국인 북한이 있는 이상 우리는 항상 저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시 거의 매일 어버이연합에 나오는 정지찬(74)씨도 “좌파를 없어버려야 해. 그래서 우리나라 잘되게 해야지”라며 거들었다. 이들에게 ‘좌파 척결’과 ‘북한 타도’는 유일한 진리이자 애국의 실천이었다. 그 사이 김 목사는 “미국이나 일본이 북한을 선제적으로 때려주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빨갱이 세상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이라며 또다시 “화이팅”을 외쳤다.

맹렬한 애국심은 부작용을 동반한다. 주로 나타나는 것이 괴담 확산과 선동이다. 이날 빚어진 ‘김정일 유서 소동’이 대표적이다. 김정일 유서란 지난달 김 국방위원장 사망 직후 인터넷에 떠돌았던 출처불명의 패러디 글을 가리킨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의 글귀를 고쳐 김 위원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 문재인, 한명숙, 박원순 등 야권 인사를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표현이 조악해 조작된 글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지 않았지만 어버이연합의 유일한 ‘출입기자’를 자처하는 <클릭티브이뉴스>의 장재균(65)씨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이런 제보가 들어왔다”며 해당 문건을 출력해 돌리기 시작했다. 강연장 곳곳에서 어르신들의 탄식이 새어나왔다. 머리가 하얀 80대 노인은 직접 다가와 보도를 요청하기도 했다.

“<한겨레>, 이거 신문에 내나 안 내나?”
“저, 신문에 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건 진짜가 아니고 누가 장난으로 만든 가짜 같습니다.”
“뭐, 진짜가 아니라구. 그러면 쓴 놈을 고발해야 안 되나.”

유서가 ‘가짜’로 판명되자 소동은 잦아들었다. 김 목사의 ‘좌파 비판’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학생인권조례를 향하고 있었다.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되면 초중고생이 자유롭게 성생활과 동성애를 할 수 있고, 자유롭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겁니다. 선생님이 숙제를 많이 내면 ‘선생님 몰아내자’ 이렇게 나올 수 있고, 더 나아가 빨갱이들이 10대에게 죽창 하나씩 쥐여주고 ‘너희들이 어버이연합 어르신들 척결해라’ 이런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 같은 학생인권조례안을 내는 곽노현·민주통합당 척결하자!” “척결하자” 구호가 강연장을 세 차례 울렸다.

≫ 종로 인의동 쌍린빌딩 2층 어버이연합 식당에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하는 노인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애국심’을 공통분모로 하는 어르신들이 어버이연합의 이름으로 모이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여름이었다. 1980년대 이후 종로2가에서 4가로 이어지는 이른바 ‘노인 벨트’의 중추 구실을 했던 곳은 종로2가 탑골공원이었는데, 2001년 서울시가 3·1운동의 발상지인 탑골공원 성역화 사업에 나서며 공원내 장시간 체류를 막는 등 출입을 까다롭게 했다. 탑골공원이 불편해진 노인은 하나둘 종로4가 종묘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제약 없이 마음껏 머물 수 있었던 공원 매표소 앞 공터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어르신들의 단골 모임장소가 됐다. 당시 함께 나라 걱정을 하던 권신웅·곽윤창·신현문씨 등은 지금도 어버이연합의 핵심 어르신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규일(79) 어버이연합 수석지부장은 “15~20명씩 공터에 모여 안보 토론을 할 때만 해도 영락없이 오갈 데 없는 노숙자·양아치 신세였다”며 “우리만 있는 게 아니고 좌파 노인들도 있었는데 마주치기만 하면 충돌이 빚어져 남 보기 창피했다”고 말했다. 어버이연합은 이듬해 ‘젊은 피’인 추선희(53) 사무총장이 결합하며 종묘공원 인근 한 건물 옥상에 4평짜리 사무실을 처음으로 얻는 등 단체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회원이 1500여명에 이르는 1월 현재 어버이연합은 종묘공원 바로 옆 인의동에 약 100평짜리 사무실을 두고 있다.

종묘공원에 나오는 노인 대다수가 그렇듯, 어버이연합 회원들 역시 애국심 이전에 저마다 삶의 어떤 부분에서 결핍을 느낀다는 사실을 공유한다. 가장 큰 결핍은 적적함과 경제적 곤궁함이다. <한겨레>가 지난 19일 어버이연합 회원 100명을 대상으로 벌인 ‘경제적 만족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54.3%)은 혼자 지내거나 자녀들과 떨어져 배우자와 단둘이 산다고 응답했다. 한달 평균 수입을 묻는 질문에는 대다수(72.8%) 응답자가 30만원 미만이라고 대답했다. 각종 수당이나 용돈을 포함해도 한달에 10만원을 벌거나 받지 못한다는 노인도 29.4%에 달했다. 현재의 생활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느낀다는 응답자도 많았다.(77.0%) 마지막으로 어버이연합 강연장을 찾는 이유에 대해서는 ‘애국심을 나타내기 위해’ 참석한다는 응답(68%)이 더 많았지만, 세명 가운데 한 명꼴(32%)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혹은 ‘우리 세대가 마땅히 갈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이규일 지부장은 “어버이연합을 찾는 기본적 목적은 애국심”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도 “노인들이 모여 외로움과 고민을 해소할 수 있다는 사실도 어버이연합의 주요 기능”이라고 지적했다. “우리에게 대화 상대가 있나,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있나. 사업에 실패한 사람, 살고 있는 집이 경매로 넘어간 사람 등 별별 사람이 다 와. 여기 오면 그래도 회장이나 고문님이 있으니까 고민을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이야기라도 들어주잖아. 의지가 되니 오는 거지.”

어버이연합에서 제공하는 점심 식사(라면)도 경제력 없는 노인 회원에게는 힘이 된다. “돈도 없는데 80세, 90세 된 사람들이 무슨 낙이 있어. 동네 경로당을 가도 돈을 쓴다구. 노인들이 모이면 화투를 치고 점심을 같이 먹는데 그렇게 하려면 하루에 돈 만원은 써야 하고, 안 그러면 경로당에서도 ‘왕따’를 당해. 2~3년 전부터 친구 소개로 여기 와봤는데 돈 쓸 일도 없고 좋아. 소일거리 없는 사람끼리 모여서 흉허물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도 할 수 있으니 여기만 오면 얼굴이 피는 것 같아.”(김아무개씨·70대)

때마침 20일은 어버이연합에서 회원들을 위해 명절맞이 참치캔 선물세트를 마련한 날이었다. 어버이연합에서 살림꾼 역할을 하는 이 지부장은 오전 내내 강연 참석자를 대상으로 △선물세트는 상품교환권과 일대일로 교환한다 △상품교환권은 어버이연합 회원증을 확인한 뒤 지급한다 △상품교환권은 강연 시작 전까지 나눠준다 등의 기준을 강조했다. 이 지부장은 “지난해 11월 겨울점퍼 300벌을 마련해서 회원에게 지급한 적이 있었는데 선물만 준다고 하면 종묘공원에 소문이 퍼져 아무나 ‘나도 달라’며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그가 선물세트 지급에 관한 분명한 기준을 제시했음에도 강연 도중 선물세트와 관련한 크고 작은 실랑이는 끊임없이 벌어졌다.

김 목사의 강연이 막바지에 이른 2시30분께 결국 일이 터졌다. 자신이 회원임을 주장한 박아무개(76)씨가 나타나 상품교환권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이 지부장이 회원증을 보여달라고 하자 박씨는 “×새끼”라고 맞받았다. 두 사람이 멱살잡이를 벌이자 강연장은 벌집을 건드린 듯 소란스러워졌다. 여기저기서 회원임이 분명한데 회원증이 없다고 교환권을 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항의가 난무했고, 규칙을 정했으면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나왔다. 누가 그런 규칙을 정했느냐는 재반박과 그러는 너는 뭐냐는 감정 섞인 공방에, 좀 조용히 하라는 공허한 핀잔, 끝난 뒤에 싸우라는 현실적 해법까지 총동원됐다. 수첩에 그 장면을 메모하는 기자에게 “뭐, 이런 것까지 적냐. 그러지 마라”는 소리가 겹치니 강연장은 더욱 시끄러웠다.

그때까지 강단에서 ‘빨갱이 척결’을 부르짖던 김 목사가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치캔 선물세트 공방전을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 그의 목소리에 깃든 카리스마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가 보수대연합을 하지 않으면 빨갱이를 절대로 당해내지 못합니다. 지금은 강연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

최성진 기자csj@hani.co.kr


■ 취재 후기 
언론에는 주로 ‘성난 얼굴’만 보이는 어버이연합이지만 그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은 많다. 지난 19일 어버이연합 사무실에서 만난 김영주씨(74)는 “우리가 바로 대한민국의 노인네들”이라며 “젊은이들이 여기에 와서 좀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버이연합의 또다른 회원은 아스팔트로 나오는 이유를 묻자 “정부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뭐가 있냐”고 말했다. “전쟁을 겪고 중동 모래바람 속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이 대부분이야. 정부가 그런 늙은이들에게 그렇게 베풀게 없냐, 이렇게 내팽게칠 거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라구.” 복지와 사회적 관심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이들 70~80대 노인들에게 ‘애국심’의 또다른 표현은 ‘고립감’ 혹은 ’소외감’이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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