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9976 

“MBC 경영진, 뉴스 파행 방치해 기자들 압박”
[인터뷰] 곽승규 MBC 기자, “회사는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박장준 기자 | weshe@mediatoday.co.kr  입력 : 2012-01-27  10:32:21   노출 : 2012.01.27  10:59:27

15분. 반쪽짜리 뉴스를 본 기자는 한숨을 쉬지 않았다. 오히려 더 냉정하게 얘기했다. MBC 사측은 사태를 오래 끌어 기자들의 투쟁이 흐지부지될 때까지 부장급 이상의 체력을 최대한 아낀다는 것이다. 데스크급 이상이 모두 달려들면 충분히 50분 뉴스를 만들 수 있지만 이번 기자들의 제작거부에 MBC가 내민 카드는 ‘파행’이었다. 뉴스를 볼모로 기자들을 압박하는 전략이다. 기자의 말대로 “MBC는 벌써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MBC는 뉴스를 단 3차례로 줄였고, 메인 뉴스 ‘뉴스데스크’는 거의 4분의 1이 됐다. 단신을 읊는 수준이었다. 그 시각, 사회부 3년차 곽승규 기자는 선후배 기자들과 함께 방송 제작을 거부하고 마이크 대신 직접 쓴 피켓을 들었다. “조롱받는 우리 뉴스 더 이상은 못 참는다.”
  
곽승규 기자는 입사 만 2년 만에 처음으로 제작거부를 하고 일종의 두 번째 파업을 맞는다. 2010년은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의 ‘조인트’ 발언을 계기로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구체적인 파업’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MBC가 망가졌다’는 대중의 비판 속에 시작하기 때문이다. 곽승규 기자는 한미FTA 반대 집회를 취재하러 갔지만 인터뷰는커녕 ‘나가라’는 핀잔만 듣고 돌아온 기억이 생생하다. 시청자들은 반성 없는 MBC 기자들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 파업은 시청자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MBC기자협회 소속 기자 100여 명은 설 연휴가 끝난 지난 25일 아침 8시 20분부터 서울 여의도 MBC방송센터 로비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시청자들은 ‘나는 기계였다’는 고백과 함께 시작한 MBC 기자회의 제작거부와 뒤따를 파업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태껏 싸우지 않다가 정권 말 레임덕을 이용해 파업을 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 또한 많다.

이명박 정권에 비판적인 여론, 힘을 얻고 있는 야당을 등에 업고 싸우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곽승규 기자 또한 “더 먼저 행동하지 못해 부끄럽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많다”고 수긍하면서도 “2년 전에 비해 좋은 조건일 뿐이지 제작거부의 계기는 아니다”고 얘기했다.
  
“지금껏 쌓인 불만이 ‘제작거부’로 폭발한 겁니다. 2009년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멘트를 서슴지 않던 신경민 앵커를 자리에서 내린 사람이 전영배 당시 보도국장입니다. 전 국장은 결국 기자들의 반발로 쫓겨났는데 황당하게 김재철 사장 체제에서 국장보다 더 높은 보도본부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결과는 ‘역시나’였어요. 후배들이 똑같은 사람을 두 번이나 쫓아내기 위해 이렇게 제작거부를 해야 하다니 정말 미칠 노릇입니다.”

곽승규 기자는 “리포트가 하나씩 잘렸다. 이젠 상식적이고 비판적인 리포트를 하나 넣기도 힘들다”며 제작거부의 계기를 ‘자의적인 뉴스선택’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보수적 성향의 어떤 집회는 참가자가 수십 명에 불과한데도 뉴스데스크에서 두 번씩이나 보도했지만 수천 명 이상 참가한 한미FTA 반대 집회는 뉴스 한 번 내보내기도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곽승규 기자에 따르면 위에서 내려주는 아이템은 ‘얘기 안 되도 그냥 하나 하자’고 말하면서 밑에서 발제할 때는 ‘얘기가 되니 안 되니’, ‘그림이 되니 안 되니’, ‘참가자는 몇 명이고 충돌은 있니 없니’ 등 별의별 조건을 다 들며 기자의 취재 의지를 떨어뜨렸다고 한다. 기자들이 항의하면 회사는 그때마다 1% 높아진 시청률을 보여주며 ‘이게 시청자가 원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곽 기자는 “스포츠뉴스를 빼면 광고는 줄지만 시청 공백 시간이 없어서 시청률은 올라가기 마련”이라며 “공공성과 공정성을 주장하는 기자들에게 시청률을 들이미는 회사를 이해할 수 없다”며 MBC를 비판했다.

상식적이고 비판적인 MBC 뉴스가 없어진 지난 2년 동안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가 그 역할을 했다. 곽승규 기자는 “우리 뉴스가 빼먹은 그 수많은 뉴스를 SNS가 대신 해줬다”며 고마워했다. 그러나 SNS에 대한 고마움은 “그만큼 자괴감이 크다”는 고백과 같은 표현이다.

고백의 형태를 띄었다곤 하지만 언론인이 자기비판을 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제작거부라는 가장 훌륭한 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는 MBC 기자회의 저항을 두고 연대하자는 움직임 또한 일어나고 있다.

곽승규 기자가 취재원을 자처한 이유도 언론에 하나라도 더 노출돼 대중의 지지와 연대를 이끌어내야 하는 절박함 때문이다. 그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불법파업이라는 낙인이 두려워서,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하는 얘기가 아니다. 정권에 크게 휘둘렸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의지로만 채운 말이다.

곽승규 기자는 1년 전 기수를 대표해 “보도국 내 누구에게서도 보도본부장, 보도국장을 존경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존경이 사라진 보도국, 누구의 잘못입니까?”라고 썼다. 이 질문은 MBC 기자들에게 되돌아갔다. 이제 제작거부에 이은 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기자들 스스로 답해야 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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