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57288
소녀상 조각가 "일본 곳곳에서 방해, 한국 외교부는 회피하기만"
[인터뷰] 평화의 소녀상 김운성 작가 "일본, 위안부 문제 관련 탄압 지나쳐"
19.07.27 17:12 l 최종 업데이트 19.07.27 17:12 l 글: 강연주(play224) 사진: 유성호(hoyah35) 권우성(kws21)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 활동 방해하는 일본정부 규탄 기자회견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렸다. ⓒ 권우성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주변에 7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올해 들어 최대 인원이 참석한 이날의 1397차 수요집회는 일본의 경제 보복을 규탄하는 시민들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지난 6일 안산 상록수역 광장. 남성 4명이 소녀상에 침을 뱉고 일본말로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모욕했다. 이들은 지난 24일 직접 나눔의 집을 찾아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께 사죄했다.
"제게 오는 타격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받을 상처가 더 걱정이죠. 그분들은 소녀상을 보면서 매번 '나 같다'고 말씀하세요. 소녀상을 볼 때면 매번 얼굴을 쓰다듬기도 하시고요. 그래서 지난번 그 사건 있고 나서 이옥선 할머님이 '왜 내 얼굴에 침 뱉느냐'고 하신 걸 봤는데 마음이 참... 그 뉴스를 안 보셨으면 했어요. 안 그래도 상처 받은 분들인데."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 조각가는 소녀상을 모욕한 남성들 소식을 듣고 할머니들부터 걱정했다. 현재 한일관계의 중심에 있는 소녀상은 김운성-김서경 부부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지난 22일 옛 일본대사관 앞에 놓인 소녀상 인근에서 김운성 조각가를 만났다. 이날 그는 24일에 있을 일본 규탄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본이 그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전시를 탄압했다는 것.
그에게서 소녀상 제작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보았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한 위안부 문제, 30년 가까이 흘러도 제자리"
▲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 조각가. ⓒ 유성호
"2011년 초 전시회 기획 때문에 일본대사관 앞을 지나가는데 집회를 하더라고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주장하는 집회였죠. 집회에서 1991년에 김학순 할머니께서 증언하신 내용을 듣고는 충격을 받았어요. 보통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드러나면 해결되잖아요. 그런데 위안부 문제는 20년 전에 피해자가 나와 직접 증언을 했는데도 해결된 게 없던 거죠.
뒤늦게서야 이 일을 알 것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에 우리가 뭐든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현 정의기억연대)을 찾았죠. 우리가 도울 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곧 1000차 수요집회인데 '평화비' 하나 세우고 싶다는 거예요. 비석 디자인을 도와달라고. 곧장 작업에 들어갔죠. 그런데 그때 분노할 일이 터졌어요."
2011년 12월 8일 사전에 위안부 평화비 설치를 파악한 일본 정부가 후지무라 오사무 관방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 평화비 설치를 중단시켜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한 것.
"가해 국가가 사죄나 반성은커녕 거대한 예술 작품도 아닌 그냥 비석마저 막는다고? 그냥 둬서는 안 된다 싶었죠. 그래서 다시 정대협을 찾아갔어요. 가서 '비석 하나로는 할머님들이 일본의 반성 받아내기도 어려울 것 같고, 일본을 제대로 혼내지도 못할 것 같다. 그러니 우리가 갖고 있는 전공 살려서 조각 하나 내보겠다'고 했죠. 하나를 놓더라도 제대로 놓겠다고. 혹시 일본이 치우기라도 하면 일본에서 포기할 때까지 만들어 가져다놓겠다고."
일본의 대응이 소녀상을 낳은 셈이다. 김운성 작가는 "소녀상의 초기 디자인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한다.
"초기 구상은 할머니가 일본을 혼내는 형상이었어요. 우리가 할머니들의 마음을 조각으로 드러내자는 생각에. 그런데 함께 조각을 한 김서경 작가가 다른 디자인을 제안했어요. 할머니들이 위안부 피해자가 됐던 그 시절의 모습을 담아보면 어떻겠느냐는 거죠. 당시 소녀였던 모습을 대사관 앞에 앉혀놓으면 저 일본인들이 더 부끄러워하지 않겠냐. 김서경 작가의 말에 정말 공감했죠. 그게 지금의 소녀상 모습이에요."
거칠게 잘려나간 똑 단발, 앙다문 입술, 곱게 모은 두 주먹. 단정히 차려입은 한복과 왼쪽 어깨에 앉은 작은 새 한 마리. 어느덧 국제적으로 여성 인권의 상징이 된 소녀상이 이렇게 탄생했다.
소녀상이 세워진 지 9년이 흘렀다. 그동안 이를 둘러싼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싸우고 있다.
"원래 이 분야는 작가들이 잘 안 다루려고 해요. 어떻게 하든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너무 예민한 문제니까. 예술가로서 직면할 것은 직면하고 지킬 건 지키자고 다짐했죠. 그렇게 만든 소녀상 얼굴을 할머니들께서 쓰다듬어 주실 때, 소녀상을 보고 '나'라고 하실 때, 정말 힘이 나요."
"일본, 한국 예술가들의 전시물 철거 종용"
소녀상은 전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 2013년 해외에서는 최초로 세워진 미국 글렌데일시의 소녀상을 시작으로 미국 디트로이트, 호주 시드니, 독일 라벤스부르크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물론 사정이 녹록지는 않았다. 개중에는 소녀상을 세운 지 이틀 만에 철거당하는 일도 있었다.
"글렌데일 시에 소녀상을 세울 때 일본의 항의에 따라 청문회가 열렸어요. 이때 100명가량의 일본인들이 청문회 장을 찾아와서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몇 시간 이어갔죠. 지금도 이들은 글렌데일 시장에게 소녀상을 철거하라며 압박하고 있어요.
사실 이런 일들이 너무 많아요. 필리핀에서는 소녀상 개막식을 한 지 이틀 만에 갑자기 철거된 적도 있어요. 물론 일본 영사관의 개입이 있었죠. 일본 오사카시는 샌프란시스코시의 기림비를 철거하라며 시의회에 '자매도시 관계를 끊겠다'고 통보하기도 했고요.
최근에도 황당한 일이 있었어요. 지난달 20일 독일에서 전시 성폭력 여성 인권 전시회를 여는데 갑자기 박물관장이 일부 작품을 철거하라고 했죠. 평화의 소녀상, 김복동 할머님 그림 등이 철거 대상이었어요."
김운성-김서경 작가를 비롯한 약 8명의 한국 작가들은 독일 도르트문트 내 탄광박물관에서 여성인권 관련 전시회를 열었다. '보따리전'이라는 이름의 이 전시회는 지난달 20일부터 3일간 열렸다. 그런데 전시 첫날 갑자기 해당 박물관장이 일부 작품들을 전시할 수 없다며 작품 철거 통보를 했다고 한다.
"실제로 전시 첫날에는 작품을 철거했어요. 박물관에다 '누가 철거하라고 했느냐'고 물었더니 말해주질 않더라고요. 철거 통보를 받은 후 우리는 박물관측과 수차례 토론을 벌였어요. 그러고 나서 간신히 전시 허가를 받아냈죠.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어요.
전시가 끝나자 독일 주재 일본 총영사가 박물관으로 찾아왔어요. 우리를 빼놓고 박물관 관장을 불러 면담을 한 거죠. 면담에서 일본 총영사는 '한일관계가 이렇게 악화된 건 우리와 같은 극단주의자들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주최인 독일 또한 한국의 이해를 위해 전력을 기울였으므로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 압박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우리의 활동을 방해한 거죠."
이 내용은 작가들이 탄광박물관측이 건넨 면담 기록을 보고 확인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김운성-김서경 작가를 비롯해 보따리전에 참석한 5명의 작가들은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작가들은 이 자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 활동을 방해하는 일본 정부를 규탄한다'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증언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본의 방해활동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우리는 상관없다'고 답한 외교부... 이젠 기대 안 한다"
▲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 조각가. 소녀상의 불끈 쥔 두 주먹은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의지와 다짐의 표현이다. ⓒ 유성호
"없었어요. 대응이랄 게 거의 없죠. 독일 레겐스부르크 소녀상이 설립될 때는 뒤로 빠져있다시피 했어요. 당시 소녀상이 승인된 날부터 일본인들이 독일 외교부에 항의 방문, 문자, 전화, 이런 것들을 천 통 이상씩 했다더라고요. 그럼에도 독일 측에서 일본의 요청을 거절하자 일본인들이 평화비라도 치워달라며 계속 항의했다고 합니다. 결국 독일 외교부가 한국 대사관에 연락해 양측의 의견을 물어보게 된 거죠.
이때 한국 대사관은 '우리는 상관없다'며 일본의 입장을 받아들였어요. 앞선 내용은 독일 관계자에게서 확인받은 내용입니다. 결국 소녀상 옆의 평화비가 치워지게 됐죠. 평화비에는 소녀상의 의미와 역사가 새겨져 있었어요. 이 내용이 있어야 해외에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있어요. 그래서 당시 평화비가 치워질 때, 우리 외교부의 소극적 대응에 독일 한인회와 시민단체가 반발했어요. 이렇게 일본은 '외교적 대응'이라면서 적극적으로 방해를 하는데, 한국은 '외교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며 회피하기만 하는 겁니다."
현재까지도 독일 소녀상 옆의 평화비는 다시 설치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이렇게 공론화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시민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운성 작가는 일본에서 위안부 역사와 관련한 강의도 하고 있다. 2013년도부터 시작해 매해 2-3차례 정도 일본에 간다고 한다. 일본에서 직간접적인 위협을 당하진 않았을까?
"물론 있었죠. 강의 들으러 오시는 분들 가운데 소수의 극우 세력들도 있어요. 윽박지르는 분들도 있었죠. 하지만 대체로 반응이 좋아요. 당연히 강의 들으실 땐 대체로 불편해 하시죠. 하지만 대화하면서 그 간극이 좁혀지곤 해요. 이렇게 소통하는 자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만간 일본에 가느냐'라고 묻자 그는 대답을 피했다. 일정이 알려지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작가에게 물었다.
- 피해자분들이 남아계실 때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그래야죠. 한국이나 일본을 위해서라도 더 끌어서는 안돼요. 현재 피해자분들이 스무 분 정도 남아계시죠. 일본은 이분들이 돌아가실 때까지 시간을 끄는 모양새지만, 그게 본인들에게 더 안 좋은 결과라는 걸 알아야 해요. 피해자분들이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 이상,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은 전쟁범죄 국가의 오명이 평생 남게 되는 겁니다. 이들의 범죄가 평생 규정되는 거죠. '피해자분들이 남아계실 때'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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