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56876
기자님, '지적이 어디서 나왔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분석] 출처 안 밝히는 언론... 기자의 생각을 남이 말한 것처럼
19.07.26 18:18 l 최종 업데이트 19.07.26 19:02 l 공시형, 오경민(ccdm1984)
기자들은 사실기사와 의견기사를 구분해서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그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마법의 단어들이 있습니다. '지적이 나온다', '비판이 나온다', '말이 나온다', '목소리가 나온다'와 같은 표현입니다. 지적이나 비판이 어디선가 '나왔다'면 분명 출처가 있는 말일 텐데, 이런 출처가 없다면 그와 같은 지적은 신문사 내부에서 나왔거나 누군가의 말을 확대해석 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기자들끼리의 의견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왔다'는 식으로 보도하여 사실기사에 의견을 덧씌우는 기술입니다.
민언련에서는 6월 17일부터 7월 1일까지 2주간 특정 키워드가 쓰인 기사들을 전수분석하여 해당 표현들이 얼마나 많이 쓰였는지, 지적이나 비판에 출처가 있는지, 출처는 얼마나 확실한지 조사하였습니다.
'지적 마법사' 조선일보
분류 대상 기사는 '지적이 나온다/나왔다', '비판이 나온다/나왔다', '말이 나온다/나왔다', '목소리가 나온다/나왔다' 8개 키워드 중 하나 이상 포함되어 있는 기사로, 한 기사에 두 개 이상의 표현이 나올 경우 중복가산하였습니다. 별지섹션이 없는 신문들을 고려하여 별지섹션을 제외했고, 기자수첩이나 칼럼 등 의견기사와 조선일보의 단신기사는 제외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적이 나왔다와 같은 표현을 가장 많이 쓴 언론은 조선일보였습니다. 타 언론사들이 30~40번 내외로 쓴 데 반해 거의 두 배인 70회를 사용했습니다. 중앙일보는 15회, 한겨레는 20회로 상대적으로 해당 표현들을 적게 사용했습니다.
▲ 8개 키워드 중 한 개 이상이 포함된 기사 수(※한 기사에 둘 이상의 키워드가 있는 경우 중복가산) ⓒ 민주언론시민연합
'기자 용어'의 용법
지적이나 비판의 출처가 있는지의 여부는 기사 전체 문맥을 고려하여 최대한 넓게 판단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출처 확실도를 0~3점까지 4점 척도로 나누었습니다.
3점은 실명이나 기관, 공식 문서 등이 명시된 경우로 출처가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한 기사입니다. 예컨대 서울경제 <'상장사 감사위, 회계·재무전문가 비율 높여야'>(6/25, 양사록 기자)에서 '주식회사 등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기업 감사위원회의 역할과 책임이 강화되었지만, 감사위원회 중 회계전문가가 부족'하여 "회계·재무 전문가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삼정KPMG보고서를 인용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2점은 출처가 있지만 표현이 약간 다른 경우입니다. 경향신문 <'에어컨 생존권' 부담 덜어주기>(6/18) 기사는 "여름철에만 선심성으로 전기요금을 내릴 게 아니라 전기요금 현실화를 통한 수요관리와 에너지효율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하지만, 취재원인 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전기요금 인하는 전력소비를 증가시켜 원전과 석탄발전 가동을 더 늘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결이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의견의 출처가 비교적 확실한 경우입니다.
반면, 1점은 ○○계, ○○권, ○○관계자, ○○소식통 등의 애매한 표현과 익명 취재원들을 통해 의견을 보도한 경우입니다. 조선일보는 <2011 권재진·2019조국...180도 말 바뀐 여야>(6/27, 김형원·이정구·박해수 기자)에서 조국 민정수석을 비판하며 "서울대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고 했지만, 그러면서 든 근거는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의 익명 댓글들이었습니다.
역시 조선일보의 <김경수 신공항 재검토 결정, 내가 주도>(6/29, 김동하 기자)에서는 김경수 경남지사의 CBS라디오 인터뷰 내용을 비판하면서, "야권에서는 '보석으로 풀려난 피고인이 방송에 나와서 할 소리냐'는 지적이 나왔다"고 썼는데요. 야권이라면 당연히 김경수 경남지사에 비판적 입장일 것이고, 굳이 취재원을 보호할 필요가 없는데도 '야권'으로 익명 처리했습니다.
▲ "기자가 취재해 쓴 것이 아니라 "뒷말"이 동아일보 사옥에서 나왔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 동아일보
가장 나쁜 사례인 0점은 '지적이 나왔다' 등의 표현만 있고 전혀 출처를 언급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동아일보의 <'상생형 지역 일자리' 전성시대?… "바보야, 문제는 사업성이야">(6/17, 김현수 기자)는 소위 '밀양형 일자리'에 대해 "밀양도 벌써부터 총선을 앞두고 김경수 경남도지사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정책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김 지사가 5일 성윤모 산업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정부 지원을 요청한 직후 밀양형 일자리가 발표됐다"고 썼습니다. 기자가 나름 그럴듯한 정황을 설명하긴 했지만, 실제로 뒷말이 돌고 있는 것을 기자가 취재해 쓴 것이 아니라 '뒷말'이 동아일보 사옥에서 나왔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중앙일보의 <민주당 "손혜원, 우리 당도 아닌데 언급할 이유 없다">(6/19, 권호 기자)는 지난달 손혜원 의원이 기소된 후 민주당의 반응에 대해 "이 때문에 검찰의 불구속 기소를 기점으로 민주당이 손 의원 '손절매'에 나선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고 썼습니다. 역시 누가 봐도 정황 증거만을 바탕으로 한 기자들의 평가에 가깝습니다.
지적이 '나왔다'는데… 절반 이상 출처 불명
이렇게 분류한 결과, 2점 이상으로 상대적으로 출처가 확실한 경우는 전체의 32%(출처확실 25%, 표현이 약간 다름 7%)였고, 1점 이하로 출처가 불확실한 경우는 전체의 68%(애매한 표현 34%, 출처없음 34%)였습니다. 출처가 불확실한 지적이 가장 적었던 경향신문과 한겨레조차도 절반의 비율로 출처를 밝히지 않고 '지적이 나왔다' 등의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언론사 별 평균점을 매겨 보면, 가장 점수가 낮았던 것은 '출처 없음'이 가장 많았던 동아일보(0.8점)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계, ○○권, ○○관계자, ○○소식통 등의 애매한 표현과 익명 취재원을 절반이 넘는 비율로 타사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한 조선일보(1.2점), 그리고 역시 '출처 없음'이 42%의 비율로 많았던 서울신문(1.2)점이 뒤를 따랐습니다. 분석 대상인 8개 키워드를 가장 적게 사용한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각각 1.7점과 1.5점으로 '출처 확실도'에서 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
8개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들의 출처 확실도
※점수 체크 기준
3점 : 실명이나 기관, 공식 문서 등이 명시됨.
2점 : 출처가 있지만 표현이 약간 다름.
1점 : ○○계, ○○권, ○○관계자, ○○소식통 등의 애매한 표현과 익명 취재원.
0점 : ‘지적이 나왔다’ 등의 표현만 있고 출처 언급이 없음)
▲ 8개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들의 출처 확실도 ※점수 체크 기준 3점 : 실명이나 기관, 공식 문서 등이 명시됨. 2점 : 출처가 있지만 표현이 약간 다름. 1점 : ○○계, ○○권, ○○관계자, ○○소식통 등의 애매한 표현과 익명 취재원. 0점 : ‘지적이 나왔다’ 등의 표현만 있고 출처 언급이 없음) ⓒ 민주언론시민연합
▲ 8개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들의 출처 확실도(만점의 절반인 1.5를 기준으로 색 구분) ⓒ 민주언론시민연합
조선·동아일보의 점수 하락 원인은 '북한 목선'
이어서 주로 어떤 주제를 보도할 때 언론사들이 '지적이 나왔다'와 같은 표현들을 사용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8개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들을 정치, 북한, 사회, 국제, 경제, 기타의 6개 대분류로 나눈 뒤, 그 중 출처확실도가 1점 이하의 기사의 수와 비율을 조사하였습니다.
출처확실도가 1점 이하인 기사들의 주제별 분류와 출처 불확실 정도
(※비율은 주제별 기사 전체 대비 비율임)
▲ 출처확실도가 1점 이하인 기사들의 주제별 분류와 출처 불확실 정도 (※비율은 주제별 기사 전체 대비 비율임) ⓒ 민주언론시민연합
그 결과, 언론사를 막론하고 정치, 북한 관련 기사에서 나온 지적이나 비판점들은 대부분 출처가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북한 관련 기사가 많았던 것은, 분석 대상 기간 중 '삼척항 북한 목선 입항' 사건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대표적으로 동아일보는 총 33개 기사 중 11개가 북한 목선 관련 기사였고, 이 중 출처확실도가 1인 기사가 4건, 0인 기사가 7건에 달해 동아일보의 출처확실도 평점을 0.3점 내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선일보는 기사 총 건수가 70개여서 평점에 영향이 크진 않았지만, 70개의 기사 중 10건이 '북한 목선' 관련 기사였습니다. 이 중 출처확실도가 1인 기사는 6건, 0인 기사가 4건이었습니다.
언론사를 막론하고, '북한 목선' 주제에서 8개 키워드를 사용한 기사 30건 중 출처확실도가 2 이상인 기사는 없었습니다. 노동, 교육, 법조, 사건사고 관련 기사들이 포함된 '사회' 분류에서 조선일보와 경제지들의 출처 불확실도가 다른 언론사보다 커지는 현상도 주목할 만 합니다.
특히 경제지의 경우 한국경제는 6건 중 교육 관련 기사가 2건, 노동 관련 기사가 2건이었고 서울경제는 3건 중 노동 관련 기사가 2건이었습니다.
다만, 이 결과는 분석 기간이 2주로 짧아 기사 주제보다는 단기적 이슈의 영향도 상당히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 결과만으로 언론사가 특정 분야에서 출처 없이 지적이나 비판점을 제시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서 남이 말한 것처럼
이처럼, 신문사가 사실상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서 남이 말한 것처럼 '지적이 나왔다' 등의 표현을 남발하는 것도 문제지만, 출처를 애매하게 서술하는 것 또한 익명 취재원 보도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03년 민언련에서는 독자주권선언 캠페인의 일환으로 <「취재원 익명 보도」관련 민언련 기획모니터팀 보고서>(2003/4/1)를 냈습니다. 이 때 총 6일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4개 신문사의 970여건의 기사를 분석한 결과, 조선일보는 익명 취재원을 인용한 기사가 38.49%로 가장 많았고, 한겨레가 9.67%로 가장 적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전체 익명 취재원 보도 중 취재원 보호를 위한 익명 처리는 고작 6% 남짓이었고, 절반 가까운 약 46%가 습관적인 익명 처리, 30%가 추측성 보도, 18%는 신문사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 익명 취재원을 동원한 경우였습니다.
16년이 지났지만, 이번 분석을 통해 보면 신문사들은 그동안 '기사의 신뢰도와 정확성'을 높이기보단 기사의 낮은 객관성을 포장하는 데 더 공을 들인 것 같아 보입니다. 신문사들은 이제 '지적이 어디서 나왔냐는 지적'에 답해야 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6월 17일~7월 2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서울경제, 한국경제(*지면보도에 한함)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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