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알려진 '친일파' 김성태가 은근히 더 위험하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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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친일파' 김성태가 은근히 더 위험하다

[친일 작곡가, 그 실체 ⑤] <동심초> <못 잊어> <산유화> 작곡한 김성태

김종성(qqqkim2000) 19.08.11 18:57 최종업데이트 19.08.11 18:57 

'애국가'와 '고향의 봄', 그리고 '가고파'까지. 아이와 어른 모두 무심코 흥얼거리는 이 노래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친일 음악가들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친일 작곡가, 그 실체'에서는 몇 차례에 걸쳐 친일 음악가들의 행적을 추적한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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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처럼 잘 알려진 친일파보다 더 위험한 게 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면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친일파가 실상은 더 위험하다. 

 

김성태도 그런 인물이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 피네"로 시작하는 김소월의 시 <산유화>에 음율을 부여한 작곡가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 없네"로 시작하는 <동심초>도 그가 작곡했다. 이것도 꽤 많이 알려진 가곡이다.

 

이 가곡들 못지않게 주목할 게 있다. 그가 작곡한 초·중·고등학교 교가들이다. 학생과 교사들의 의식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가 학교 내의 친일 잔재를 조사한 뒤 지난 2월 26일 발표한 보도자료에 이런 사실이 소개돼 있다.

 

"서울 시내에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7명의 동상 및 기념관 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교가와 관련해서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 작사 혹은 작곡한 학교가 113개교로 조사되었습니다. 급별로는 초등학교 총 18개교(공립 13개교, 사립 5개교), 중고등학교는 총 95개교(공립 27개교, 사립 68개교)였습니다. 설립 별로 보면 공립은 40개교(35.4%), 사립은 73개교(64.6%)로 사립의 비율이 과반을 훨씬 상회하고 있습니다."

 

친일파가 작사 혹은 작곡한 교가를 쓰는 학교가 서울 시내에만도 113개교나 된다고 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그중 20개교의 교가가 김성태의 작품을 쓰고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 친일 교가를 쓰는 초·중·고등학교의 18%가 김성태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김성태 작품을 쓰는 초등학교로는 서울사대부설·서울재동·서울효제·동산·서울종암·영훈·충암 7개교가 있고, 중학교로는 창덕여자·청운 2개교가 있으며, 고등학교로는 건대부고·금옥여고·동양고·서울고·성동고·영훈중고·정신여중고·진선여중고·창덕여고·창문여중고·휘경여중고 11개교가 있었다. 

60여 편의 가곡, 100여 편의 동요, 10편의 기악 작품

 

▲김성태가 작곡한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교가.ⓒ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물론 교가 노랫말 자체에는 나쁜 내용이 없다. 하지만 일왕(천황)과 일제를 찬미하는 곡조가 넘쳐 흘렀던 친일파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그런 곡조를 학생과 교사들이 오랫동안 따라 불렀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가 악보에 '작곡 이완용'이라고 적혀 있었다면, 이미 예전에 교가가 교체됐을 것이다. 김성태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친일파의 이름이 적혀있다 보니, 오랫동안 별 탈 없이 불려질 수 있었던 것이다. 김성태처럼 덜 알려진 친일파가 은근히 위험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김성태의 영혼이 교가에만 미친 것은 아니다. 동요에도 그것이 미쳤다. 꽤 친숙한 노래인 <엄마 아빠>의 곡조도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이 노래의 가사는 "우리 엄마 이름은 여보이고요/ 우리 아빠 이름은 당신이래요/ 그래도 우리들은 부르지 못해/ 엄마 아빠 둘이서만 부른답니다"이다.

 

음악학자 김용환이 쓴 김성태 전기인 <김성태의 음악 세계>는 "김성태 박사가 현재까지 남긴 음악 작품은 60여 편의 가곡, 100여 편의 동요, 10편의 기악 작품, 그 외에 두 편의 교성곡과 20여 편의 부수음악(무용음악·연극음악·영화음악), 다수의 민요 편곡 등이 있다"고 말했다. 김성태 전기에 설명된 것처럼 그는 주로 동요 작곡에 주력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100여 편의 동요가 나왔다. 

일본 국민가요 보급에도 앞장선 김성태 

 

▲김성태ⓒ 연합뉴스

 

김성태는 대한제국 멸망 3개월이 안 된 1910년 11월 9일 지금의 서울시 중구 광희동에서 출생했다. <김성태의 음악 세계>는 "증조 할아버지가 중랑천 부근의 전답을 대부분 소유한 토호였고, 교회를 세울 정도로 그의 가정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다"고 말한다.

 

김성태는 일본 교토의 료요중학교를 졸업한 뒤 1931년(21세) 연희전문학교(고교급) 상과에 입학했다. 이 시기에 그의 작곡 활동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연희전문 재학 중인 1934년(24세), <김성태 동요 작곡집> 제1집이 출간된다.

 

1939년(29세) 도쿄고등음악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김성태는 이듬해인 1940년부터 친일 음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은 이렇게 말한다.

 

"같은 해 9월을 전후해 조선총독부 총독관방 문서과가 내선일체와 농업보국을 실천하기 위해 내지의 농촌에 파견되었던 반도 청년들의 활약상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문화영화 <농업보국대>에서 작곡과 지휘를 담당했다."

 

<농업보국대>는 일본에 파견된 조선 청년 농업인들의 활동을 담은 다큐 영화였다. 이를 위해 김성태가 영화 음악을 만드는 데 참여했던 것이다. 어느 대목에 어떤 음악을 넣어야 관객들이 일본군국주의에 친숙해질까를 고민하면서 음악 작업을 했을 것이다. 그는 1942년에는 좀더 노골적인 방식으로 친일 음악을 했다.

 

"1942년 1월 라디오로 방송된 <아세아의 힘>, <미·영 격멸가>, <기쁘다 마닐라 함락>, <남진 남아가>, <흥아 행진곡>, <태평양행진곡> 등을 부르는 경성방송혼성합창단을 지휘했다." - <친일인명사전>.

 

일본군의 승리를 찬미하는 연주 활동만 지휘한 게 아니다. 한국 부모들이 아들을 일본군에 보낼 수 있도록, 한국 청년들이 일본군에 자원할 수 있도록 부추기는 연주 및 작곡 활동도 벌였다. 경성음악연구원 교수로 재직할 당시인 1943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같은 해 3월과 8월 모윤숙이 작사하고 김성태가 작곡한 <군국의 어머니>, <어머니의 희망>이 라디오를 통해 방송됐다. 같은 해 8월 3일 경성방송혼성합창단이 <용사가 되는 날>, <아들을 보내는 노래>와 자신의 작품인 <어머니의 희망>을 부를 때 지휘했고, 이 노래는 라디오로 방송됐다. 8월 8일에도 경성방송혼성합창단이 <희망의 아침>, <우리들은 병사로 부르심을 받았다>, <용사가 되는 날>, <우리들은 제국 군인>, <아들을 보내는 노래> 등을 부를 때 지휘를 맡았다." - <친일인명사전>.

 

이 외에, 김성태는 일본 국민가요를 전국적으로 보급하는 데도 앞장섰다. 그가 벌인 친일 행위들을 죄다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렇게 친일에 앞장섰던 김성태는 1945년 8·15 해방 뒤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한국인을 위한 음악을 내놓기 시작했다. 상당히 빠른 변신을 보였던 것이다.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음악건술부 의원 및 작곡부 위원장을 지냈다. 같은 해 9월 창단된 고려교향악단에서 활동하면서 10월에 <독립행진곡>과 <아침 해 좋을씨고>를 작곡해 발표했다. 1946년 2월 경성음악연구원이 경성음악학교(교장 현제명)로 개칭되면서 교수로 활동했다. 경성음악학교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으로 개편되자 1976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근무했다." - <친일인명사전>.

 

친일 음악에 앞장섰던 사람이 해방 직후에는 조선 음악의 건설을 위해 활동하고, 해방 2개월 뒤에는 <독립행진곡>을 작곡했던 것이다. 꽤 신속한 행보였다.

 

그런 신속한 행보 덕분인지 김성태는 해방 뒤에도 승승장구했다. 해군 정훈음악대 대장 서리도 지내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장도 지내고, 한국국악학회 이사도 지내고, 문교부 장학위원도 지냈다. 박정희 정권 때는 국민훈장 모란장, 대한민국예술원 예술상, 대한민국 홍조근정 훈장, 국민훈장 동백장도 받았다.

 

이처럼 김성태는 친일 행적에 아랑곳없이 8·15 해방 뒤에도 한국 음악계를 이끌었다. 동요와 교가를 많이 만들어 자기 영혼을 어린이와 10대들에게 주입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살다가 2012년 102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은근히 위험한 친일 행적에 대해 아무런 응보도 받지 않은 채 꽤, 오랜 수명을 향유하다가 눈을 감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