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제국 - wikia

백제 2019. 10. 1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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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제국   


신미 제국(新彌諸國) 후대에 나오는 마한 신미제국은 일본서기의 침미다례라는 주장이 있고, 영산강 유역이라는데는 거의 이견이 없는것 같다. 신미 제국은 독자적으로 중국에 사신을 파견할 정도로 강력한 정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3세기 후반 영산강 유역의 마한사회의 모습은 진서(晋書) 장화열전(張華列傳)에 나오는 '신미 제국(新彌諸國)' 관련 기사를 통해서 살필 수 있다. 이 기사는 동이 마한의 신미제국 20여국이 282년에 처음으로 사신을 파견해서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동이 마한의 신미제국 20여국'은 마한지역 안의 신미국(新彌國)을 중심으로 한 20여국인데, 이들 나라들이 산과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고 하므로 서남 해안을 끼고 노령 소백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는 전남지방, 영산강유역의 마한연맹왕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마한사회에서는 토성 안에 거주하는 지배 세력이 주변 평야지대의 농경민을 통치하였으며 사후에 거대한 옹관고분의 피장자가 되었던 사회였다.


4세기 이전의 사실을 기술한『삼국지』위지 동이전 한전의 마한 기록에 "마한사람들은 우마를 탈 줄 몰랐으며 우마는 모두 장례에 사용하였다"고 한다. 우마에 대한 마한사람들의 이러한 관념은 대백제(對百濟) 전투력에 있어서 열세에 놓이게 하였다. 백제의 기병은 영산강 유역과 같은 평야지대에서 마한의 보병보다 기동성이 높았을 것이며 무력 사용면에 있어서도 그 효과가 뛰어났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한은 한강 유역에서 성장한 기마 민족 백제에 의해 점차 잠식되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삼국사기』백제본기에 따르면 백제는 온조왕 26년(AD 7년) 마한을 기습 점령했다. 곧이어 마한 읍성들의 반란이 상당기간 계속되었지만 결국 이를 진압했고 이로써 마한은 완전히 멸망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온조왕대의 마한이란 마한의 왕도에 해당하는 중심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맹주적 지위에 있던 마한의 중심적인 국읍이 백제에 병합된 이후에도 잔여세력은 반백제적 토착세력으로서 한반도 서남부 일대에 소국을 형성하여 상당 기간 존속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백제는 마한의 잔존 토착세력들을 병합해 가는 과정에서 지역과 시기에 따라 여러 형태의 정치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었을 것이다. 백제 중앙 정부의 통치력이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백제에 복속된 이후에도 상당 기간 토착세력을 통한 간접적인 통치가 행해지던 지역이 함께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마한지역의 토착 세력들은 문헌기록에 나타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 백제에 통합되어 갔다. 이는 마한 토착 세력의 백제에로의 통합 과정이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제의 왕도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던 영산강유역은 물론 가장 나중에 백제에 편입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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