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it.ly/1Dw1pjX (제6기 고고학 시민강좌 문서파일)
* "加耶史의 理解 - 백승욱" 중 "Ⅱ. 가야사 이해를 위한 여러 문제점 정리 - 5.‘가야연맹체설(加耶聯盟體說)’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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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토 (pp6-7)"만 가져왔습니다.
‘가야연맹체설(加耶聯盟體說)’의 검토
가야사 연구에 있어서 ‘연맹체’의 문제는 애초 가야의 사회발전단계를 논하는 가운데 운위되던 용어였으나 최근에는 가야제국간, 혹은 가야 개별국의 정치형태를 논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김태식의 전ㆍ후기 가야연맹체7), 다나카 도시아키(田中俊明)의 대가야연맹체8), 백승충의 지역연맹체9) 등의 용어는 모두 후자와 관련하여 사용되는 개념들이다.
가야를 연맹체로 보는 견해(이하 가야연맹체설)의 효시는 이병도(李丙燾)로 파악된다.10) 그는《삼국유사(三國遺事)》〈오가야(五伽耶)〉조(條)를 그 주요 근거로 들고 있다. 그는《삼국유사(三國遺事)》오가야조(五伽耶條)에서의 ‘又本朝史略云’ 以上과 以下에서 보이는 차이점, 즉 전자(前者)에는 중요한 금관가야(金官加耶)의 명(名)이 보이지 아니하고, 이에 대하여 후자(後者)에는 대가야(大加耶)ㆍ소가야(小加耶)가 빠지고 그 대신 비화가야(非火加耶)가 들어있는 점에 대해서 주목하고 해석을 가하였다. 그는 “전자(前者)나 후자(後者)나 각기 맹주국(盟主國)을 제(除)한 이외의 오가야(五伽耶)를 지칭한 것으로, 후자(前者)는 특히 본가야맹주국시대(本伽耶盟主時代)의 오가야(五伽耶)이며, 후자(後者)는 특히 대가야맹주국시대(大伽耶盟主時代)의 오가야(五伽耶)라고 해석(解釋)된다”고 하였다. 이른바 6가야연맹체설은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제창되었는데, 이는 그 후 가야사에 있어서 통설의 위치를 차지해 왔다. 이는 가야의 사회 발전단계를 연맹체단계로 보는 이른바 ‘연맹체설’의 최초 학문적 제기라는 의의가 있지만, 용어에 대한 개념 정리가 전제되지 않은 점 등의 약점은 있다. 그 후의 가야사 연구에 토대가 되었다는 점은 평가받을 만 하다 할 것이다.
가야제국들간의 상호구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가야사의 전체틀을 이해하는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실상을 제대로 보기 위한 시각으로서 두가지 점을 유의해야 할 것 같다.
첫째, 가야는 일시적 그리고 지역적 연합(聯合)이나 동맹(同盟)은 존재했으나 전체를 아우러는 단일연맹체로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라는 점이다. 신라(新羅), 백제(百濟) 이외는 모두 가야(加耶)라는 인식(認識)은 후대(後代)의 역사인식(歷史認識)일 뿐 가야제국이 존재했던 당시기의 역사적 실상이 아니다.
둘째, 가야제국은 그 존재기간 동안 변화 발전을 계속하였다는 점이다. 가야사에서의 연맹체가 사회발전단계로서의 연맹체이든, 정치구조상에서의 연맹체이든 간에 사적(史的) 전개에 따라 꾸준히 변화 발전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주석
10) 李丙燾, 1959,《韓國史 古代篇》, 震檀學會, 乙酉文化社, pp. 376~389; 동씨, 1976,《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pp. 305~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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