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23941
이런 것도 '이명박 1위', 부끄럽습니다
[역사, 그 밖의 이야기들 18편] <위키리크스> 통해 본 MB '사대주의'와 과거 역사
11.09.10 10:24 l 최종 업데이트 11.09.11 09:16 l 김종성(qqqkim2000)
▲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 홈페이지. ⓒ 위키리크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최근 공개한 미국 외교문서들이 이명박 정권의 사대주의적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 속에 담긴 정권 고위층의 발언들을 듣노라면, 이들이 대한민국에서 월급을 받는지 미국에서 주급을 받는지 의아할 정도다. 몇 가지 사례는 다음과 같다.
2008년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최시중 현 방송통신위원장과 현인택 현 통일부 장관은 알렉산더 버시바우 당시 주한미국대사에게 4월 한미정상회담 이전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의 수입을 보장해준 것이다.
같은 해 5월 버시바우 대사를 만난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은 북경 올림픽 성화봉송 당시 중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인들을 폭행한 사건을 언급하면서,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의 폭행보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더 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친한 친구나 가족과의 싸움이 가장 심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반미는 애미(愛美)의 증표라고 말한 것이다.
이 자리에 함께 있었던 이상득 당시 국회부의장은 현 정권의 성격을 아주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그는 "궁극적으로 이 대통령은 미·일 양국과 잘 협력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니 그의 시각에 대해선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발언했다.
이명박 정권은 역대 정권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을 인정하고, 미군의 한국군 전시작통권 행사를 인정하며, 미군의 수도권 주둔을 인정하고 있다. 한미관계에서 '명분'을 상실할 대로 상실한 역대 정부의 문제점을, 현 정권은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명분'을 내주었으면 '실리'라도 챙겨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명분과 실리 모두를 아낌없이 내주었다. 쇠고기 수입문제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그 점을 잘 증명한다. 미국의 패권을 인정해주는 대가를 챙기기는커녕 도리어 '밥그릇'까지 내주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만 그랬는가? 이제까지 우리 민족은 대대로 동아시아 최강국에게 사대(事大)를 하지 않았느냐?"라고 강변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현 정권의 사대주의는 꽤 드문 사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만한 수준의 사대주의 정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만의 '행운'(?)인지도 모른다.
'명분'은 잃어도 '실리'는 잃지 않았다
▲ 당나라를 방문한 신라 사신단. 당나라 태자 이현(654~684)의 무덤에서 나온 그림이다. 사진은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 안의 몽촌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다. ⓒ 김종성
19세기 이전까지 한민족이 동아시아 최강국에 책봉을 받고 조공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의 왕들은 국내 절차에 따라 임금이 되었고, 책봉은 그저 형식적인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그것은 상대국의 패권을 인정한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았다. 또 조공은 회사(回賜, 하사 형식의 답례)라는 반대급부를 동반하는 물물교환 형식의 무역이었다. 이런 조공무역에서 한민족은 대체로 흑자를 챙겼다.
최강국의 패권을 인정해주는 대신 무역흑자를 챙겼으니, 한민족은 명분은 잃었어도 실리는 잃지 않은 셈이다. 중국이 동아시아 정치의 메카로 부각된 기원전 2세기 이후, 한국의 대외관계는 대체로 '최강국은 명분, 우리는 실리'를 얻는 식이었다. 고개를 숙이는 대신 '돈'이라도 챙긴 것이다.
19세기 이전의 한민족은 실리라도 건진 데 반해 이명박 정권은 명분·실리 양쪽을 모두 빼앗겼으니, 현 정권의 사대주의 수준은 19세기 이전까지의 평균수준을 상회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의 사대주의 수준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는 방법이 있다. 19세기 이전의 역대 정권 중에서 '사대주의 톱 4'에 해당하는 김춘추 시기의 신라 정권, 몽골 간섭기의 고려 정권, 조선 전기의 이방원 정권, 구한말의 고종 정권과의 비교를 통해, 현 정권의 사대주의 수준을 대략적이나마 측정할 수 있다.
김춘추 시기의 신라 정권은 당나라의 패권을 인정하고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이 시기의 신라는 대(對)중국 관계에서 '명분'을 손상했다. 하지만, 민족 전체가 아닌 신라 일국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우리는 신라가 명분은 잃었어도 실리만큼은 상당부분 챙겼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백제 멸망 후에 그 땅을 독식한 것은 신라였다. 고구려 멸망 후에 그 영토의 상당부분이 당나라에 넘어갔지만, 신라는 애초 목표대로 대동강 이남을 확보했다. 나당연합은 민족사적 관점에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신라인의 시각에서는 명분은 잃었어도 실리는 챙긴 거래였다.
다음으로, 몽골 간섭기의 고려 정권은 몽골의 패권을 추종하고 몽골의 부마국(사위 국가)이 됐다는 점에서, 명분을 잃은 정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쌍성총관부·동녕부 같은 영토까지 빼앗겼으니, 당시의 고려는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정권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사대주의적이었느냐?"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뒤에서 제시될 것이다.
고려와 이명박 정권, 어느 쪽이 더 사대주의?
▲ 태종 이방원의 무덤인 헌릉.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소재. ⓒ 김종성
요동정벌론자 정도전을 제거하고 친(親)명나라 노선을 표방한 이방원 정권은, 명나라에 확실히 고개를 숙였다는 점에서 '명분'을 포기한 정권이었다. 하지만, 이방원 정권은 명분을 내주는 대신 실리만큼은 아주 확실하게 챙겼다. 무역특혜를 철저히 받아낸 것이다.
명나라는 오키나와와는 2년에 1회, 베트남·태국과는 3년에 1회, 일본과는 10년 1회 조공무역을 했다. 명나라를 위협하는 이성계-정도전 정권이 있을 때만 해도, 명나라는 조선과 3년 1번만 무역을 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방원이 권력을 장악하고 친명노선을 표방하자, 명나라는 조선에만 1년에 3차례의 조공무역을 파격적으로 허용했다.
민간무역과 달리, 조공무역에서는 대체적으로 조공보다 회사(回賜)의 물량이 더 많았다. 조공을 받는 쪽이 적자를 보았던 것이다. 신하국은 머리를 숙이고 상국은 적자를 봤던 것이다. 후배가 10만 원치의 술을 사면 선배는 그 이상의 답례를 해야 관계가 유지되기 쉽듯이, 조공무역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조공무역을 많이 하면 할수록 그만큼 신하국에 유리했다.
명나라가 유독 조선에 대해서만 1년 3회의 조공무역을 허용해준 것은 당시로서는 세계적인 토픽 뉴스였다. 요동정벌을 포기한 이방원 정권은, 비록 요동 땅의 가치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이처럼 실리라도 챙기기 위해서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1882~1894년에 원세개(위안스카이)의 전횡으로 상징되는 청나라의 전무후무한 간섭을 겪은 구한말 고종 임금. 그의 시대는 병자호란 직후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청나라의 내정간섭을 허용했다는 점에서, 또 세관 등을 포함한 정부 재원을 청나라에 내주었다는 점에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상실한 시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명분과 실리를 기준으로 외교 성적을 평가할 때, 역대 '사대주의 톱 4' 중에서 김춘추 시기의 신라 정권과 조선 전기의 이방원 정권은 적어도 실리만큼은 챙겼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권보다 양호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기준에 의거할 때, 이명박 정권은 몽골 간섭기나 구한말에 비견될 만한 사대주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고종의 무덤인 홍릉. 경기도 남양주시 홍유릉로 소재. ⓒ 김종성
대외관계에서 중요한 '자존심', MB는 이마저도 잃었다
그런데 명분·실리 외에 제3의 기준을 추가 도입할 경우, 우리는 이명박 정권의 사대주의가 몽골 간섭기나 구한말보다도 더 심각할 수 있다는 판단에 도달하게 된다. 제3의 기준이란 바로 '자존심'이다.
승부에 져서 명분·실리를 모두 잃더라도 '나는 죽지 않았다', '다음에는 꼭 이기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훗날 상황을 역전시킬 수도 있다. 와신상담 고사의 주인공인 월나라당 구천이 오나라왕 부차에게 당한 치욕을 설욕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끝끝내 자존심만은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자존심은 대외관계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역전의 발판이 될 수 있다.
몽골 간섭기의 고려왕들은 자존심만큼은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일례로, 왕자 시절의 충선왕은 살아남기 위해 몽골의 비위를 맞추었다. 그래서 몽골은 그가 왕이 되면 고려가 훨씬 더 순종적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몽골이 아버지 충렬왕을 몰아내고 아들 충선왕을 세운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충선왕은 막상 보위에 오르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반(反)몽골을 표방했다. 그는 곧 왕위를 빼앗겼다.
또 다른 예로, 반몽골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는 공민왕도 즉위 이전에는 몽골을 위해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막상 왕이 된 후에는 반몽골 노선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런 사례들은 몽골 간섭기의 고려왕들이 비록 명분·실리는 잃었을지언정 자존심만큼은 지키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구한말의 고종은 청나라의 간섭을 받고 각종 이권을 빼앗기는 가운데서도 청나라를 몰아낼 방법을 강구했다. 조선이 영국·청나라·일본·미국·독일 등의 견제를 뚫고 1884년에 러시아와 수호조약을 체결한 사실, 고종의 최측근인 김옥균 등이 청나라를 몰아내기 위해 갑신정변을 일으킨 사실, 조선이 청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2차례나 밀약을 체결한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고종 정권은 힘이 없어 청나라에 명분·실리를 모두 내주기는 했지만, 내면적으로는 청나라에 승복하지 않고 역전의 기회를 모색했던 것이다. 자존심만큼은 결코 잃지 않으려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어떠한가? 현 정권이 명분·실리만 내준 게 아니라 자존심마저 포기했다는 점은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라는 이상득의 한마디에서 깔끔하게 드러난다. 명분도 실리도 자존심도 죄다 포기했으니, 현 정권이 몽골 간섭기의 고려 정권이나 구한말의 고종 정권보다 더 나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정권의 사대주의는 역대 어느 정권과 비교할 때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경우에는 힘이 너무 없어서, 남에게 부득이 명분도 빼앗기고 실리도 빼앗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자존심만큼은 결코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그것마저 없으면 '내일은 태양이 뜬다'는 희망마저 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적 경제위기로 온 국민이 먹고 살기 힘든 이때, 지도층이 나서서 나라의 자존심을 스스로 뭉개는 행위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 외교관들 앞에서 내뱉은 치욕적인 한마디 한마디가 <위키리크스>뿐만 아니라 훗날의 역사서에 기록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식 경축사 장면.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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