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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평의 이순신 이야기]전쟁중에도 역사를 읽다
<혼돈의 시대, 리더십을 말하다> 박종평의 이순신 이야기-37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  ilyo@ilyoseoul.co.kr [1051호] 승인 2014.06.23  14:39:40

무지(無知)와 무지(無智) 역사인식 위험성 경고

역사 인식. 거창하게 말하거나 생각할 필요 없는 말이다. 제대로가 아니더라도 그 어느 시대나, 어느 곳의 평범한 사람들도 갖고 있는 생각이다. 자신의 선조와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 대한 이야기, 그 자체이다. 긍정적인 역사도, 부정적인 역사도 모두 역사이다. 치욕스러운 역사도 지울 수 없는 것이 역사이다.

특히 역사를 알아야 할 이유는 과거의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특히 시련의 역사는 더욱 더 그 중요성이 더하다. 하지만 무지(無知)와 무지(無智)로 인해 잘못 안 역사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그 결과 히틀러의 역사관, 일본의 천황사관같은 경우는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한 범죄행위를 낳았다. 

최근 우리 사회를 들썩이게 한 한 리더의 역사 인식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자신의 주장이나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전후 맥락을 제외한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보아도 확실하게 그는 잘못된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

그의 주장은 객관적으로 무지(無知)하고, 연륜을 담아내지 못한 무지(無智)의 소치이다. 필봉을 휘두르며 한 시대를 재단했던 인물의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 위치에 있었던 인물이 그토록 무지한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며 경악해야 했다. 그 분은 그 분 스스로 부정하는 역사책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자신의 이념에 맞는 역사책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생각될 뿐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 그 말 외엔 설명이 안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난중일기》에는 역사책을 읽는, 혹은 읽었던 이순신의 모습을 엿 볼 수 있는 기록들이 있다. 전쟁 중에 역사책을 읽는 이순신의 모습은 어찌 보면 한가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지금의 여러 망언을 하고 있는 일본의 몰역사적인 사람들과 우리 사회 내의 이상한 사람들의 역사의식을 보노라면, 이순신이야말로 정말로 바른 리더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 1596년 5월 25일, 비가 계속 내렸다. 저녁 내내 홀로 수루 위에 앉아 있으니,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났다. 우리나라 역사(東國史)를 읽어 보니 한탄스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순신이 우리나라 역사책인 《동국사》를 읽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역사가 E.H. 카(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이순신이 역사책을 읽어야 했던 이유는 찬란한 과거 혹은 참혹한 과거를 앍고 현재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고심의 결과였다. 그가 읽었던 우리 역사책에 한탄스러운 사실이 있었을지라도, 그는 한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과거의 패배 역사 혹은 좌절의 역사 대신, 새로운 승리의 역사를 쓰고자 다짐했다. 패배와 좌절의 원인과 그 교훈, 자신의 해야 일에 대한 책임의식과 도전의 이유를 역사책에서 찾아냈고, 실천했다. 그 결과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또 세계인이 평가하듯 위대한 승리의 역사를 남겼다. 

그가 읽었던 《동국사》는 무슨 책일까?

임진왜란 전후에 언급된 다른 《동국사》 기록을 찾아보았다. 동일한 책명을 언급한 사례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했던 김종(金琮, 1533~1593)의 《임진일록》에 나온다. "종일 대청 깊은 곳에 혼자 앉아 《동국사》를 읽었다." 실록에도 《동국사기》 혹은 《동국사》가 언급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까지 《동국사》란 완전히 동일한 명칭의 책은 전해진 것은 없다. 때문에 《난중일기》 와 김종이 언급한 《동국사》가 특정한 책의 명칭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종실록》, 중종 37년(1542년) 7월 27일의 기사를 보면, 그 책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역사책의 총칭'이라는 관점에서 《동국사기(東國史記)》가 언급되고 있다. 또한 유사한 명칭인 《동국통감(東國通鑑)》도 언급되고 있다. 남명 조식이 남긴 기록, <성중려가 보내준 《동국사략(東國史略)》뒤에 적음>에는 《동국사략》이란 책이 나온다. 이 책은 1402년 태종의 명령으로 권근 주도하에 하륜·이첨 등이 편찬한 것으로 《삼국사략(三國史略)》이라고도 불리는 책이다. 박상(朴祥, 1474~1530)이 저술한 《동국사략》도 있다. 

실록에서는 《동국사기》와 《동국사》를 《삼국사기(三國史記)》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동국통감》를 포함하는 우리나라 역사책의 총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로 보면 이순신이 읽었던 《동국사》는 모두 우리나라 역사책의 총칭이며, 그 속에는 당시에 존재했던 우리나라 역사책들인 《삼국사기》, 《고려사절요》, 《동국통감》, ≪동국사략≫, 《동국병감(東國兵鑑)》의 하나라고 추정할 수 있다. 

필자의 관점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동국병감》이다. 그 이유는 첫째, 이순신이 장수였던 것, 둘째, 전쟁사 책이라고 볼 수 있는 《춘추좌전》을 고대의 장수들이 탐독했고, 조선의 과거시험 과목이었던 점, 셋째, 세종이 편찬한 고대 중국과 조선의 전쟁사 책인 《역대병요(歷代兵要])》가 무과시험 과목이었던 점이기 때문이다. 

《동국병감》은 문종 때 편찬된 것으로, 삼국 시대 이후 고려 말까지 우리나라가 겪었던 전쟁만을 정리해 놓은 책이기에 일본군의 침략을 맞은 장수 이순신의 입장에서는 그 어떤 책보다도 의미 있는 책이다.

이순신이 읽었던 《동국사》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순신이 우리나라 역사책을 읽었던 이유와 그의 고민을 《난중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순신이 역사책을 읽은 것, 게다가 우리나라 역사책을 읽은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하겠지만, 그 시대는 지금처럼 책이 흔한 시대가 아니었다. 서점이 있던 시대도 아니었다. 책값도 무척 비쌌다.

역사 아는 리더 실패하지 않는다

《중종실록》, 중종 24년(1529년) 5월 25일 기록에 따르면, "외방(外方)의 유생 중에는 비록 학문에 뜻이 있지만 서책이 없기 때문에 독서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궁색한 사람은 값을 마련하지 못해 책을 못하고, 더러 값을 마련하려는 사람이 있어도, 《대학》이나 《중용》 같은 책은 상면포(常綿布) 3〜4필을 주어야 사므로, 값이 비싸서 살 수 없습니다"라고 할 정도였다. 상면포 3~4필"은 당시 쌀 21~28말로, 논 400~600평의 1년치 수확량에 해당했다. 퇴계 이황이 1544년 교열했던 《주자대전(朱子大全)》·《주자어류(朱子語類)》의 가격은 군포 50필 정도로 양민 50명이 1년 동안 내는 세금과 비슷했다. 

이순신은 그렇게 책이 귀하던 시대에 책을 구해 읽고, 우리나라 역사책을 읽었다. 그 이유는 오늘의 이상한 사람들처럼 무지(無知)하지 않고, 무지(無智)하지 않으려는 자세, 과거의 역사를 거울삼아 같은 실수, 같은 방식의 패배를 하지 않기 위한 열망이었다. 후손에게 선조의 부끄러운 과거를 물려주지 않으려는 지성(至誠)이었다.  

※ 본란 내용은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스타북스, 2011)에 썼던 원고를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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