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3680.html?_fr=mt2


[단독] ‘강제징용 판결문’ 번역본 없다

등록 :2019-10-18 05:00 수정 :2019-10-18 07:26


“혐한 전에 판결문 읽어라” 히라노 제안 무색

대법판결 1년 불구 작업 마무리 못해, “민감 사건 전문가 감수과정 늦어져”

법원도서관, 내달 영문 공개 예정, 보통 선고 석달뒤 번역본보다 늦어져 “일어 번역은 사례도 계획도 없어”


대법원. <한겨레>자료사진

대법원. <한겨레>자료사진


일본 아쿠타가와상 수상자인 소설가 히라노 게이이치로는 지난 11일치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최근 일본 내 ‘혐한’ 분위기를 지적하며 지난해 10월30일 한국 대법원이 선고한 강제징용 배상 판결문을 읽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미디어가 무책임하게 (한국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한국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문을 읽지도 않은 (방송)출연자에게는 코멘트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선은 모두 판결문을 읽어봐야 한다. 판결문을 읽으면 쇼크를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히라노의 제안대로 강제징용 판결문을 구해 읽기는 어렵다. 대법원이 한-일 무역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강제징용 배상 판결문’을 판결 1년이 다 되도록 영문으로 번역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5월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당시 대법관)가 한 강제징용 판결은 번역돼 있지만, 지난해 10월 판결은 아직 번역이 안 돼 있다. 게다가 대법원은 일문 번역을 하지 않아 일본인들이 한국 판결문을 읽으려면 한·일 활동가들이 번역한 일문 판결문을 구해야 한다. 대법원 법원도서관 관계자는 “일어 번역 사례가 없어 이 판결만 번역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다음달께 해당 판결문의 영문 번역본을 낸다는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번역 판결문이 선고 뒤 두세달 만에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늦었다. 법원도서관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라 오역을 방지하고자 여러 전문가에게 감수받는 과정을 거치느라 늦어졌다. 다음달까지는 영문 판결문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법원도서관은 국제적으로 의미 있는 판결을 영문과 중문으로 번역한다. 영문 판례는 법원도서관이 15일마다 발행하는 판례 공보 사건 중에서 조사심의관(판사) 2명이 ‘영문판례심사위원회’를 구성해 △한국 사법부와 법률문화의 홍보 △국제 사법교류 활성화 기여 등을 기준으로 번역할 판결을 선정한다. 영문 판례는 내부 영어조사위원이 1차 번역을 하고 외부 감수를 받는다. 중문 판례는 외부에서 번역한다. 2000년부터 지난 7월까지 영문으로 번역된 판결문은 모두 1217건이다. 연간 60여건꼴이다. 중문은 1996~2017년 1087건이 번역됐다.


연간 30여건을 번역하는 헌법재판소는 좀 더 체계적이다. 연구관들로 구성된 ‘영문판례선정실무위원회’가 1차 선정하고 재판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도서 및 판례심의위원회 산하 판례심의소위원회’가 최종 선정한다. 선정 기준도 △헌법적 중요 쟁점을 포함한 사건 △인권의 보편성을 바탕으로 외국에 알릴 만한 사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발달에 기여할 수 있는 사건 등으로 비교적 명확하다. 2011년 8월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정부가 노력하지 않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며 위헌 판단한 헌재 결정문도 번역돼 있다.


강제징용 소송 피해자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선고 이후 대법원에 영문 판결문을 요청했으나 당시 대법원은 번역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2012년 대법원 영문 판결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고 지난해 판결 중에는 일부만 번역해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출했다”며 “외신도 한국 판결문을 각자 번역해 기사를 썼는데 대법원이 낸 영문 판례가 있었다면 오역이나 왜곡 우려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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