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평의 이순신 이야기] 단호히 실행하라!”
<혼돈의 시대, 리더십을 말하다 57>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  ilyo@ilyoseoul.co.kr [1071호] 승인 2014.11.10  14:27:09

▲ <김구의 이순신 장군시-연도미상>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은 그런 선택의 결과물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우유부단한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들은 삶의 바구니에 걱정거리만 가득 채운 채 선택을 통해 버릴 것을 비울 줄 모르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의 하나는 그들은 결단해야 할 순간 단호했다. 또 결단의 시기 이전에는 언제나 숙고하고 숙고하면서 철저한 준비를 했다. 

나폴레옹도 “계획은 느리게, 실행은 빨리”라고 할 정도였다. 넓고 깊은 고민 속에서 때가 되었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들은 그 결단이 가져올 고통과 삶의 짐도 군말 없이 지고 간다. 게다가 그들은 결단의 순간에는 실패란 단어 자체를 잊는다. 오직 나아갈 뿐이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채 성공한 사람만이 삶과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안다. 찢기고 할쿼 상처난 만큼 더 큰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이순신도 좌절과 실패, 실수의 시간을 경험했다. 그러나 언제나 다시 일어섰다. 이순신이 시련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치열한 독서였다. 《이충무공행록》에 따르면 그는 어렸을 때부터 유학(儒學)을 공부했고, 병법(兵法)에도 통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과거시험공부만을 위한 공부만 하지 않았다. 과거 급제를 위한 교과서나, 자신의 가문을 자랑하기 위해 과거의 영화가 담긴 족보만 달달 외우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폭넓은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했고, 지식을 지혜로 승화시켰다. 또한 말과 글,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했다.

이순신은 같은 책을 읽어도 읽는 사람에 따라 어떻게 다른 결과를 낳는지 보여준다. 이순신도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삼국지)》를 읽었을까? 《삼국지》는 과거 시험 과목이 아니다. 일부 유학자들은 역사를 왜곡한 불건전한 책으로 비난했던 책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순신은 그 불건전한 책인 《삼국지》를 열심히 읽고 사색했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비난하건 전략전술책이었고, 실전 사례집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재미있는 하룻밤 소일거리였지만, 이순신에게는 훗날의 위대한 대전략가의 길을 만든 책이었다. 

이순신이 《삼국지》를 읽고 공부했다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증거는 《난중일기》와 출전 계획 장계에 나온다. 그가 두 번째로 쓴 출전 계획 장계에는 제갈공명의 <후출사표>가 인용 되어있다. ‘미리 헤아리다, 예측하다’는 뜻을 가진 ‘역료(逆料)’와 ‘성공과 실패, 이익과 해로움’이란 뜻의 ‘성패이둔(成敗利鈍)’이란 표현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경상우수사 원균은 이순신에게 구원 출전을 요청했다. 원균의 요청에 따라 출전을 해야 할지 혹은 자신의 지역을 지키는 것이 우선인지 이순신은 깊이 고민했다. 당시의 법 때문에 그는 조정의 명령이 없이 군대를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관할 지역 바로 옆까지 일본군이 쳐들어오는 상황이었다. 이순신은 수없이 고민하면서 부하 장수들과 토론을 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 준비를 철저히 했다. 또 한편으로는 조정의 명령을 기다렸다. 기다렸던 출전 명령이 내려오자 이순신은 출사표를 썼다. 그의 출사표는 모두 3개이다. 그 중 두 번째 출사표의 맨 마지막에는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 “원컨대 한번 죽음으로 기약하고 곧 범의 굴을 바로 두들겨 요망한 기운을 쓸어버리고 나라의 치욕을 만분의 일이라도 씻으려 합니다. 성공과 실패, 이익과 해로움(成敗利鈍)이 어떨지 신은 미리 헤아릴(逆料) 수 없습니다(而至如成敗利鈍 非臣之所能逆料). (<구원하러 출전하는 일을 아뢰는 계본(2) 赴援慶尙道狀(二)>, 1592년 4월 30일)”

나라의 치욕을 갚기 위해 출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 이익과 해로움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은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일의 성패는 하늘에 달렸다는 것이다. 다음은 《삼국지》제97회에 나오는 제갈공명의 <후출사표>의 맨 마지막 부분이다.

▲ “모든 일이 그렇듯 미리 헤아리기(逆料)는 실로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신은 국가를 위해 온 힘을 다 기울이고 죽은 뒤에야 그만 둘 생각입니다. 성공과 실패, 이익과 해로움(成敗利鈍)에 대해서는 신의 지혜로는 미리 알 수 없는 일입니다(至於成敗利鈍 非臣之明所能逆覩也).〉

이순신의 출사표와 제갈공명의 <후출사표>가 똑같다. 이순신이나 제갈공명이나 언제나 철저하게 준비하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결단할 때는 언제나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랬기에 결단한 뒤에는 ‘사람의 일은 끝났다. 결과는 오직 하늘만이 안다’는 자세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행동했다.

이순신은 출전을 앞두고 제갈공명처럼 결의를 다지고자 제갈공명의 <후출사표>를 인용했던 것이다. 이순신과 제갈공명의 비슷한 행동과 전략 전술을 살펴보면 이순신이 제갈공명에 대해 자세히 기록된 《삼국지연의》를 열심히 읽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제갈공명의 <후출사표>에는 이순신이 《난중일기》에 자주 기록한 불면의 밤과 관련된 말도 들어 있다.

▲ “신은 그런 선제의 명을 받은 뒤로 밤이면 잠을 편히 이루지 못했고(寢不安席) 음식을 먹어도 맛을 알 수 없었습니다.”

‘밤이면 잠을 편히 이루지 못했다’가 그것이다. 《난중일기》에도 〈밤이 깊도록 잠들지 못했다〉라는 표현으로 자주 등장한다.

▲ 1596년 2월 15일. 이날 밤 달빛은 대낮과 같고 물빛은 비단결 같아서 자려 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寢不能寐). 아랫사람들은 밤새도록 술에 취하며 노래했다.

이순신과 제갈공명은 각자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나 깨나 깊은 고민을 하면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결단의 순간에는 성공과 실패, 이익과 해로움은 알 수 없지만 침략자를 물리치기 위해 떠나겠다고 말했다. 이순신의 리더십 스타일은 본래 언제나 심사숙고를 하고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으면 판단이 설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이다. 많은 시간이 걸려도 정확한 판단을 하려했지만, 결심이 서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순신이 제갈공명의 <후출사표>를 인용해 자신의 출사표를 쓴 것은 숙고 끝에 내린 결단의 결과였다. 철저하게 준비했으니 제갈공명처럼 하늘에 맞기겠다는 자세이다. 그리고 그는 역사가 보여준 것처럼 언제나 승리했다. 그것이 이순신이다. 계획은 철저하게, 행동은 완벽하게.

이순신과 제갈공명이 결단할 때 한 말과 같다. 인생은 전쟁터다. 투쟁하지 않는 자는 오직 어두컴컴한 참호 속의 삶을 견디다가 결국엔 포로가 되어 철조망의 가시에 찔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결단의 순간에는 각종 계산기를 내려놓고 오직 앞만 보고 가야 한다. 운명에 맡겨야 한다. 성공도 실패도 알 수 없다. 실패가 자주 반복될 수도 있다. 결단의 순간에는 성공도 실패는 없다. 오직 백지일 뿐이다. 결과가 좋지 않다면 준비해서 다른 백지로 도전하라. 성공이 쓰여질 때까지.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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