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대, 리더십을 말하다> 박종평의 이순신 이야기-59
“아직도 12척이 있습니다”
홍준철 기자 | mariocap@ilyoseoul.co.kr [1073호] 승인 2014.11.24 11:32:43
▲ <전라좌수영대첩비>
- 도전하는 사람의 필수요건, 무한 긍정
- 두려움은 승리의 기회조차 패배로 바꾼다
이순신 이후, 위기에 빠진 사람들이나 위기에 직면한 사람들은 이순신이 말한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라는 말에 의지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해왔다. 이순신의 무한 긍정주의ㆍ낙관주의를 배우고, 그 열정으로 돌파하고자 한 것이다.
1597년 7월, 칠천량 패전 직전 조선 수군은 판옥선 약 180여 척, 거북선 3척~5척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얼마 전의 절영도 해전에서 약 20척의 판옥선이 손실되었고, 칠천량 해전에서는 10여 척을 제외하고 거북선을 포함한 나머지 모든 전선이 바다에 가라앉았다. 조선 수군도 약 1만 9,000명이 전사 혹은 패전과 함께 흩어졌다. 사실상 전멸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대패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조정에서는 수군 자체를 폐지하려고 했다. 이순신에게도 육군과 합류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 상황에서 이순신은 ‘상유십이(尙有十二, 아직도 12척이 있다)’라며 육군 합류 명령을 철회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 신에게 전선이 아직도 12척이 있습니다(今臣戰船 尙有十二. 금신전선 상유십이). 죽을힘으로 막아 지키면 오히려 해낼 수 있습니다(出死力拒戰 則猶可爲也. 출사력거전, 즉유가위야). 지금 만약 수군을 전부 폐지한다면, 이는 왜적이 행운으로 여길 것이며 충청도를 거쳐 한강까지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비록 전선은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戰船雖寡 微臣不死 則不敢侮我矣. 전선수과 미신불사 즉불감모아의). <이분, 《이충무공행록》>
이 ‘상유십이’는 이순신의 평상시 낙관주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위기가 닥치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혼란에 빠져 스스로 붕괴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가라앉는 배 위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굳건한 태도로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모색한다. 이순신의 ‘상유십이’는 위기에서조차 신념을 잃지 않는 사람들, 도전하는 사람들,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다. 철저한 자기 확신과 긍정으로 무장한 사람에게 생겨나는 태도이다.
비관주의는 현실을 철저히 반성하고 검토해서 위험을 줄이는 보수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비관주의는 보다 발전된 미래로 나아가는 개척 정신ㆍ도전 정신과는 맞지 않는다. 또 상황에 따라 쉽게 패배주의로 바뀔 위험성이 있다. 과도한 낙관주의가 현실을 무시해 오판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도전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면 낙관주의가 비관주의보다 더 풍요로움을 준다.
이순신은 낙관주의의 화신이었다. 어떤 고난 속이든 희망을 잃지 않았다. 이순신의 삶은 결코 안락하지 않았고 많은 고난을 겪었음에도 그는 자신만의 낙관주의로 시련을 이겨냈다. 6년 동안의 무과 공부와 실패, 또 다시 4년 동안 이어진 노력으로 이룬 10년 만의 과거 급제 과정, 합격 후에는 최전방에서 여진족과 끊임없이 전투를 하며 긴장된 생활을 감당해야 했다. 오늘날 화법으로 그는 직장에서 세 번 잘렸고, 두 번은 책상조차 없는 대기자 신세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일을 하는 과정에서 삶을 마쳤다. 그가 그런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을 ‘상유십이’와 같은 낙관주의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그가 ‘상유십이’를 말하면서 했던 다른 언어들도 누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표현들이다. 그가 말한 문장 속의 “아직도ㆍ오히려ㆍ비록”은 지독한 긍정의 언어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위해서 “죽을힘으로 다하겠다”고도 말했다. 게다가 자신에 대한 무한한 믿음도 놓치지 않았다. 수군의 폐지는 “왜적이 행운으로 여길 일”이라며 “신이 죽지 않는 한 감히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순신은 눈 앞에 존재하는 12척 ‘밖에’ 되지 않는 전선을 가지고도 ‘밖에’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아직도’라며 12척의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했다. 수년 동안 자신이 훈련시킨 수만 명의 장졸이 전멸되고, 수백 척의 전선이 바다에 가라앉았어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도 싸울 수 있는 전선이 있다! 일본군과 싸워 승리할 수 있다! 오히려 적들이 두려워할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이순신의 활화산 같은 자기 확신은 패전으로 겁먹은 부하들, 일본군에 대한 공포심으로 떨고 있던 백성도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 자신이 가장 앞장서서 전투를 하며 승리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일본군이 이순신의 배를 집중 공격하자 그는 겁먹은 군사들에게 부드럽게 타이르며 말했다.
▲ 적이 비록 1,000척이라도 감히 우리 배에는 곧바로 덤벼들지 못할 것이니(賊雖千隻莫敢直搏我船. 적수천척막감직박아선) 조금도 동요하지 말라(切勿動心. 절물동심). 힘을 다해 적을 쏘라(盡力射賊. 진력사적). (《난중일기》, 1597년 9월 16일)
일본 전선에 몇 겹 둘러싸여 있는 이순신의 대장선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렇게 말했다. 총알과 화살이 빗발치는데도 그는 그렇게 자신 있게 말했다.
이순신의 당당함과 자신감에 부하들은 두려움을 내던지고 죽어서 사는 길을 택했다. 무기조차 없던 백성들도 이순신과 조선 수군을 자발적으로 돕기 위해 그 죽음의 길에 함께했다. 그리고 이순신과 부하들, 백성들은 함께 승리했다. 13 대 133. 기적이었다. 그리고는 그날 밤 일기를 쓰며 기적을 돌아보면서도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늘이 도운 행운(天幸天幸. 천행천행)”이라면서 겸손하게 하늘에 감사했다. 그는 무심한 하늘을 감동시켰다.
다중지능론 창시자인 하워드 가드너 박사는 “사고의 틀을 20퍼센트만 바꾸면, 인생의 80퍼센트가 달라진다”고 했다. 우리가 최소한 우리 안의 암과 같은 비관적 사고의 20퍼센트만이라도 긍정적이고 낙관적 사고로 바꾼다면 우리 인생의 80퍼센트가 바뀔 수 있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비관주의자의 삶, 부정적인 사람의 삶은 비극 그 자체이다. 비극의 주인공은 연극과 드라마에서 보는 것으로 족하다. 그 주인공과 공감하고 울면서 마음을 씻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마주할 때는 비극이 아닌 행복한 주인공으로 살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은 행복이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 삶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그럴 때 비극은 삶을 끝내는 것이 아닌, 비극의 원천을 만든 잘못된 삶을 바꾸는 새로운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이순신처럼 어떤 일이든, 어떤 고난이 닥쳐오든 “아직도ㆍ오히려ㆍ비록”이라는 긍정의 언어, “죽을힘으로 해낼 수 있다”는 자세,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존심과 자부심이라면 불패의 전사가 될 수 있다. 이순신의 지독한 낙관주의는 누구에게나 비극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만병통치약이다. 아무리 먹어도 중독되지 않는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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