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평의 이순신 이야기-61] 사중구생(死中求生)
<혼돈의 시대 리더십을 말하다>
홍준철 기자 | mariocap@ilyoseoul.co.kr [1075호] 승인 2014.12.10 09:23:02
잡스·김규환 명장ㆍ나폴레옹도 ‘이순신 리더십’
지난 2011년에 있었던 스티브 잡스의 사망은 모든 이에게 큰 충격이었다. 자유와 실용성을 상징하는 청바지를 입은 채 빛나는 눈빛을 뿜어대며, 자신의 비전과 열정 담은 말로 아이맥ㆍ아이폰ㆍ아이패드를 소개했던 잡스. 말기 암으로 수차례의 대수술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제품을 알리기 위해 발표회를 직접 주관하기도 했다.
도전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 시대의 최고 혁신 기업인 애플을 시대를 넘어서는 특별한 브랜드로 만들어 낸 혁신가 잡스도 시련 속에 살았던 사람이다. 1985년, 그는 자신이 만든 회사인 애플에서 쫓겨났다. 자신이 직접 뉴욕까지 날아가서 스카우트한 존 스컬리가 그를 내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뒤 새로 시작한 네스트사에서 그는 신제품을 출시했지만 실패했다. 또 다시 픽사를 설립했지만, 픽사가 만든 고성능 화상처리 컴퓨터도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실패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도전했고, 쓰라린 경험을 도약의 기회로 전환시켰다. 애플에서 쫓겨났기에 새로운 OS를 만들었고, 그 OS가 훗날 아이폰의 핵심 기술이 될 수 있었다. 픽사에서도 컴퓨터는 실패했지만, 애니메이션인 <토이 스토리>와 <니모를 찾아서>를 만들어 시장을 뒤흔들었다. 스탠퍼드대학교 강의에서 그는 말했다.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그 무엇 하나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패와 도전, 재기 속에서 그는 2004년 찾아온 췌장암으로 고통받았다. 그 때 그는 자신의 인생관을 한 단계 더 도약시켰다. “내 인생 최고의 결정은 머지않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 내릴 수 있었다.” 죽음을 앞둔 잡스는 아이폰·아이패드를 세상에 선보이며 스마트폰 혁명 시대를 열었다. 몇 년 후인 2011년 결국 그는 이 세상을 떠났다.
경제학자 슘페터는 기업가를 앙트르프러너(Entrepreneur)라고 말한다. 자신의 책임 아래 위험을 감수하고 보상을 추구하는 사람, 즉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스티브 잡스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앙트르프러너이다. 그는 목숨을 걸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했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으며 죽어가면서도 최선을 다했다.
쉬운 도전은 없다
대우종합기계 김규환 명장은 초등학교 중퇴자였고, 대우중공업의 사환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 최고의 품질 명장이다. 75년 입사한 뒤 2011년까지 2만4,612건의 기술 혁신 제안을 했고, 62개의 기계를 국산화하는데 기여했다. 하루 3시간씩 자면서 8개의 국가기술자격증을 땄다. 그는 말했다.
“최근에는 회사만을 위해 사는 사람, 묵묵히 열심히 자기 일에 몰두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일,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의 성공도 이룰 수 없습니다. 목숨 걸고 노력하면 안 되는 것 없습니다. 목숨을 거십시오.”
금융권 최초의 전문 경영인으로 다섯 번 연임할 정도로 성공한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도 “전쟁터에서 포탄이 두려워 부하를 앞세우는 장수는 살아남을 수 없다. 사장은 목숨 걸고 하는 것”이라며 사장직의 치열한 자세를 했다. 나폴레옹도 “승리를 만드는 것은 군사의 수가 아니라 정신력이다. 정신적 힘은 물리적 힘의 3배 효과가 있다”며 정신력의 힘을 강조했다.
애플의 잡스, 김규환 명장ㆍ박종원 사장ㆍ나폴레옹은 모두 정신력의 기적을 믿고, 목숨을 걸면서 거꾸로 생존과 승리를 거둔 사람들이다. 이순신도 꼭 같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독후감인 「송사를 읽고(讀宋史)」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죽음 속에서 살길을 찾으면 만에 하나라도 혹시 나라를 건질 방도가 있을 것이다(死中求生, 萬一或有可濟之理. 사중구생, 만일혹유가제지리).
죽음속에서 살 길을 찾으라!
이순신의 독후감에 인용한 ‘죽음 속에서 살길을 찾으면(死中求生)’은 이순신이 읽은 『송사(宋史)』의 「유기전(劉錡傳)」에 나오는 말이다. 송나라를 거란족의 금나라가 침략했다. 동경성을 지키던 송나라 장수 유기는 부하들과 대책 회의를 했다. 일부는 금나라 군대를 피해 도망치자고 했고, 일부는 강경하게 싸우자고 논란을 벌였다. 유기의 부하로 별명이 야차(夜叉)인 허청은 특히 강경하게 주전론을 주장했다.
“지금 만약 적을 피해 달아나는 것은 쉽지만 그렇게 한다면 부모와 처자를 버리는 일이다. 모두 함께 피난을 간다면 적이 양쪽에서 공격할 것이다. 어디로 도망할 수 있겠는가? 함께 노력해서 한 번 싸우는 것만 못하다. 이는 죽음 속에서 살길을 찾는 것이다(死中求生).”
이순신은 「유기전」 속 야차의 말을 인용해 당시 전개되던 명나라와 일본의 강화협상을 반대했던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신이 임진왜란 초기에 출전 여부를 부하 장수들과 토론했을 때 정운과 송희립의 모습을 연상했기 때문이다. 일부 부하장수들은 경상도로 출전하는 것을 반대했었다. 그때 송희립이 말했다.
“큰 적들이 침략해 와 그 형세가 마구 뻗치는데 가만히 앉아서 외로운 성만 지킨다고 홀로 보전될 수 없습니다. 나가 싸워야 합니다. 다행히 이기면 적들의 기운이 꺾일 것이고 또 불행히 전투에서 죽어도 신하된 도리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녹도 만호 정운도 송희립의 말에 동의하면서 출전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신하로서 평소에 나라의 은혜를 입고 국가의 녹봉을 먹다가 이런 때에 죽지 않고 어떻게 감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것이오.”
이순신이 인용했던 야차의 말, ‘사중구생(死中求生)’은 우리나라 전쟁사를 정리한 『동국병감(東國兵鑑)』에도 나온다. 1290년 고려 충렬왕 때 우리나라를 침략한 하란(哈丹)군을 토벌하다가 고립된 낭장 이무가 피로한 군사들에게 “사나이는 죽음 속에서 삶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두려워 말라(男兒當死中求生, 毋恐. 남아당사중구생, 무공)”이라며 군사들을 격려했다. 이무라는 한 고려의 하급 장교가 자신의 조국과 백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자는 결의였다.
2차세계대전 때 수용소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살았던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자신의 수용소 경험을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 “고통과 죽음이 없는 인간의 삶이란 완전할 수가 없다. 한 인간이 운명을 받아들이고 운명에 따르는 모든 고통을 참고 견디는 방법, 그의 십자가를 떠메고 나아가는 방법이 그의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덧붙이게 될 충분한 기회를 그에게 준다”고 했다.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에게 “갈망하라, 그리고 우직해라(stay hungry, stay foolish)”라고 했다. 야차나 송희립, 이무, 프랭클, 잡스의 자세는 모두 같다. 그들은 모두 ‘사중구생(死中求生)’의 자세로 운명을 헤쳐 나가려고 했다. 그들의 외침은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거부하지 않고 단호히 짊어지는 불굴의 의지를 갖은 사람들의 태도이기도 하다.
특히 이순신과 야차의 ‘사중구생’은 전쟁터에서 부하들의 목숨을 책임지고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사람들, 자신의 목숨을 버려야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지독한 말이다. 오늘의 현실속에서도 돌아보면, 어떤 일이든 목숨을 걸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다. 삶이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선택했든 선택한 이상 목숨을 걸어라. 찬란한 승리가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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