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평의 이순신 이야기] "달이 차면 기운다"
혼돈의 시대, 리더십을 말하다-60
홍준철 기자  |  mariocap@ilyoseoul.co.kr [1074호] 승인 2014.12.01  11:15:34

- 최악의 리더 ‘멍부형’(멍청하면서 부지런한형)
- 상은 낮은 사람부터, 벌은 높은 사람부터 

지나칠 정도로 자기과시의 시대에 겸손함은 관점에 따라 손해를 보는 듯한 자세일지 모른다. 그러나 겸손함으로 자신만의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보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ㆍ김정태 회장·방송인 유재석 등이 있다. 반기문 총장에 대해 중국의 《차이나데일리》는 “투명인간이 겸손에서 힘을 찾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할 정도로 겸손의 리더십을 크게 인정받고 있다. 김정태 회장은 날마다 세 가지를 반성한다는 ‘일일삼성(一日三省)’을 좌우명으로 삼으며, 매일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고 한다. 개그맨 겸 방송인인 유재석은 자타가 공인하는 ‘예능 1인자’이다. 그를 최고의 자리에 있도록 만든 결정적 이유는 그가 최고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겸손함 때문이다.


똑부형, 똑게형, 멍부형, 멍청형

각각의 조직에서는 흔히 자신의 윗사람을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며 장단점을 이야기곤 한다. 똑똑하면서 부지런한 ‘똑부형’, 똑똑하지만 게으른 ‘똑게형’, 멍청하지만 부지런한 ‘멍부형’, 멍청하면서도 게으른 ‘멍게형’이 그것이다. 거의 모든 아랫사람들은 ‘똑게형’의 상사를 최고의 상사로 꼽는다. 리더가 똑똑하지 않으면 일이 안되고, 지나치게 부지런하면 부하들이 피곤하기 때문이다. 반면 최악의 리더는 일도 못하면서 책임을 전가하고, 공은 빼앗으면 끊임없이 부하들을 괴롭히는 멍부형이다.

이순신은 ‘똑부형’의 리더였다. 전쟁 중에 게으름은 그 자체가 바로 패전과 패장으로 추락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똑부’를 넘어서 겸손함까지 갖춘 사람이었다. ‘똑부형’의 리더가 흔히 착각하며 갇고 있는 단점, 즉 ‘오직 나만 따르라!’ 식의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는 부하들과 함께 토론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의견을 적극 받아들여 실천했다. 그는 똑똑하고 부지런했지만,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듣고, 배려했다.

출전을 해 전투를 하던 중에 조선 수군의 전선(戰船) 한 척이 뒤집혔다. 연전연승에 고무된 부하들이 지나치게 자만하며 일본군을 공격했다. 조선 수군의 전선들은 모두 서로 경쟁하며 공로를 다투다 결국 조선 수군의 전선끼리 부딪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그 경우, 이순신의 입장에서는 전투 중에 부하들의 과욕이 만든 것이었기에 보고를 하지 않거나, 전투에 따른 피해 상황으로 보고를 해도 큰 문제가 없을 사안이었다.

그런데 그는 더하거나 뺄 것 없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조정에 보고했다. 그 보고서 중에 평상시의 이순신, 겸손한 이순신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단어가 나온다. ‘연애(涓埃)’란 말이다. 그 뜻은 ‘아주 작고 사소한 티끌 같다’는 뜻이다. 또한 그는 언제나 자신의 승리는 “하늘이 도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승전보고서는 언제나 공로를 부하들과 하늘에 돌리는 겸손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처럼 그가 쓴 장계와 일기에는 티끌만큼도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는 모습, 하늘에 감사하는 모습이 가득하다.

▲ 흉악한 적들이 여러 도에 널리 가득 차 있고 오직 이곳 호남만이 다행히 하늘을 도우심을 힘입어(幸天佑, 행뢰천우) 다소 보전하여 나라의 근본을 이루고 있습니다. <일족에게 징발하지 말라는 명령을 취소해 주기를 청하는 계본, 請反汗一族勿侵之命狀, 1592년 12월 10일>

또 《난중일기》에서도 일본군의 군량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1593년 6월 26일. 그 형세가 마땅히 백 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이 또한 도와주고 있으니(天且助順, 천차조순) 수로에 있는 적은 비록 5, 6백 척을 합하더라도 우리 군사를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임진왜란 시기에 이순신이 가장 힘들게 치룬 전투, 명량 해전에서 이순신은 13척으로 133척의 일본 전선을 격파하는 기적 같은 승리를 만들었다. 전투가 끝난 뒤 일기에 그는 “하늘이 도왔다. 하늘이 도왔다(天幸天幸, 천행천행)”라고 썼다.  이찬구 교수는 이순신의 명량 해전 승리 요인은 하늘을 감동시킨 결과라고 보았다. 겸손한 이순신의 나라와 하늘에 대한 지극한 성경심(誠敬心)이 가져다 준 승리라는 것이다.

이순신이 자신의 공로를 겸손하게 표현한 연애(涓埃)는 조선 시대에 선비들도 자주 썼던 말이다. 겸손의 리더십을 말한다. 한국학 에세이로 유명한 이규태는 《리더십의 한국학》에서 우리나라 전통 리더십으로 겸허와 청빈ㆍ인간적 역량ㆍ굽힘 없는 기개 등을 꼽았다. 겸허는 겸손과 같은 말이다.

그는 그중에서 겸허(謙虛)의 겸(謙)에 대해 “자신의 의견이나 욕구ㆍ재산이나 지식ㆍ지위나 영예 같은 것을 남 앞에 드러내지 않고 그것을 미끼로 불로소득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것을 내세워 오만하지 않는 덕목. 남들이나 공동체를 우선시키고 자신을 극소화시키는 덕목”이라고 했다. 겸허를 강조한 이규태는 그 겸손 리더십의 대표사례로 이순신이 명나라 장수 진린을 감동시켜 일본군과의 전투에 적극 참여하도록 한 일을 들고 있다. 연애(涓埃)의 본래의 출전은 761년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50세 때 성도(成都)에서 지은 <들을 바라보다(望野)>란 시이다.

서산 흰 눈 덮인 삼성의 군영(西山白雪三城戍), 남포의 맑은 강물 위 만리교 놓여 있네(南浦江萬里橋). 세상은 난리 중이라 형제들 떨어져(海內風塵諸弟隔), 하늘 끝에서 눈물을 흘리는 외톨이 신세(天涯涕淚一身遙). 늘그막에 병만 잦아(惟將遲暮供多病), 아직까지 티끌만큼도 나라에 보답하지 못했네(未有涓埃答聖朝). 말을 타고 나가 멀리 둘러보니(跨馬出郊時極目), 사람 일이 날마다 쓸쓸해져 견딜 수 없구나(不堪人事日蕭條).

이순신은 두보가 노래했던 연애라는 표현처럼 자신의 공적을 티끌로 여겼다. 그러나 자신의 장졸들의 공로만큼은 언제나 태산처럼 크고 무겁게 여겼다. 공로도 잊지 않았다. 그의 장계와 《난중일기》의 기록을 보면 한가하게 혹은 쩨쩨하다고 까지 할 만큼 세세하게 부하들의 공로를 기록하는 모습이 나온다. 또한 포상이 누락된 일이 생긴 경우에는 장계를 거듭 올려 포상을 받도록 했다. 상은 낮은 사람부터, 벌은 높은 사람부터 주라는 병법의 지혜를 그대로 실천했다. 겸손하지 않는 장수, 권위와 강제로 이끄는 리더들과의 차이점이다.

천도, 겸허하니 보탬이 온다

겸손은 곧바로 드러나는 보석은 아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갈고 닦으면 그 어떤 보석보다 아름답고 강한 보석이 된다. 게다가 누구도 감히 빼앗으려하지 않는 특별한 보석이 된다. 《서경(書經)》에는 “꽉 차니 기울고, 겸허하니 보탬이 온다. 이것이 바로 천도(天道)”라는 글이 있다. 겸손은 천도, 즉 순리에 따른 차고 넘쳐 결국에 기울어가는 하강의 세월이 아니라, 그와 정반대로 채워지는 과정 그 자체이다. 천도 중에서도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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