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평의 이순신 이야기-63> ‘난도(難逃)’
[혼돈의 시대, 리더십을 말하다]책임을 다할 때 진정한 리더
홍준철 기자 | mariocap@ilyoseoul.co.kr [1077호] 승인 2014.12.22 10:55:13
도망칠수도 도망쳐서도 안되는 외로운 자리
2015년이 저물고 있다. 올 한 해 우리 사회의 화두를 생각해 보면 ‘도망’이 아닌가싶다. 세월호의 비극 전후로 책임을 외면했거나 전가하고 도망친 사람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난중일기》에 쓰인 두 글자로 된 메모, ‘난도(難逃)’는 시사하는 것이 많다.
이 메모는 1594년 11월 28일 일기 이후에 쓰인 여러 메모 중의 하나이다. 그 뜻은 “(나는) 도망칠 수 없다” 혹은 “(일본군들은) 도망칠 수 없다”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순신이 그 어느 것에 의미를 두었든 결론은 마찬가지이다. 이순신 자신에게 한 말이라면, 그것은 이순신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고, 그 어떤 위험한 상황일지라도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또 일본군에 대한 결의라면, 도망치려는 일본군을 끝까지 응징하려는 자세일 것이다.
역사책을 읽으며 결의를 다지다
현실의 침략자와 불의에 맞서 책임을 다하려는 이순신의 각오는 《난중일기》 곳곳에 새겨져 있다. 특히 1597년(선조 30) 10월 8일 이후에 기록된 이순신의 유일한 독후감, <송나라 역사를 읽고(讀宋史)>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주요 내용은 이순신이 당시 겪고 있던 임진왜란과 아주 비슷한 배경, 즉 금나라가 송나라를 침략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쟁 중 송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이순신이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이순신이 읽었던 《송나라 역사(宋史)》는 중국 송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正史)이다. <본기(本紀)> 47권, <지(志)> 162권, <표(表)> 32권, <열전(列傳)> 255권의 총 496권으로 이루진 방대한 책이다.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왕과 사대부가 인용한 기록이 많이 나올 정도로 중요한 역사책이다.
‘송나라 역사를 읽고’
아, 슬프다! 때가 어느 때인데, 이강(李綱)은 가려고 했는가. 간다면 또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무릇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일에는 오직 죽음이 있을 뿐 다른 길을 없다(夫人臣事君, 有死無貳). 그 때는 종묘사직의 위태로움이 마치 머리카락 한 오라기에 천 균(千鈞, 삼만 근)을 매달고 있는 것과 같았다(當是時也宗社之危 僅如一髮之引千均). 신하는 의(義)를 위해 몸을 던져 나라에 보답할 때였다(玆正人臣捐軀報國之秋). 떠나간다는 말은 마음에서 싹트게 해서도 안되는데 하물며 어떻게 감히 입 밖으로 낼 수 있는가.
그러면 이강(李綱)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몸을 상하게 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간(肝)을 꺼내고, 담(膽)을 쪼개 보이며, 일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기에 화친을 할 수 없다는 이유를 분명히 밝혀 말할 것이다. 말해도 따라주지 않으면 죽음으로 이어갈 것이다. 또 그렇게도 할 수 없다면 먼저 그들의 계책(화친)을 따르고 그들 사이에 간여하여 억지로라도 틈새를 매워가야 한다. 죽음 속에서 살 길을 구한다면, 만에 하나라도 혹시 나라를 건질 이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死中求生 萬一或有可濟之理). 이강(李綱)은 이 같은 계책도 내지 않고 가려고만 했으니 어떻게 신하가 몸을 바쳐 임금을 섬기는 의리(義)가 있다고 할 수 있겠나.
이 독후감에서 이순신이 비판한 이강(李綱)은 남송 때의 명재상 겸 무신이다. 그는 금나라가 침략해왔을 때 국방을 책임진 병부시랑에 임명되어 주전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주화파의 음모로 파직되어 귀양갔다. 고종이 즉위한 뒤 다시 재상에 임명되어 금나라와의 결전을 위해 내치를 정비하고, 국방을 강화했다. 그러나 다시 주화파에 의해 밀려 재상이 된지 70여일 만에 파면되었다. 파면되기 직전, 그의 주전론에 동의하지 않는 흠종과 주화파는 그의 정책을 거부했었다. 그 때 이강은 흠종에 실망해 자발적으로 사직을 요청했었다.
이순신이 독후감에서 지적한 것은 바로 파직 직전에 이강이 자진 사퇴를 하려한 태도 때문이다. 이순신은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은 신하의 자세가 아니라고 보았다. 이순신의 독후감은 임진왜란 때 강화론으로 시끄러웠던 조선 조정에서의 논란에 대한 이순신의 생각을 보여준다. 당시 조선에서도 강화파와 주전파로 나뉘어 서로 반목하고 있었다.
또 명나라에서도 일본과의 강화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다. 나라의 땅 한쪽 귀퉁이를 일본군에게 빼앗긴 채 소강상태가 지속되며 오늘날의 분단처럼 일본이 남쪽 땅을 분할에 점령하게 될 우려가 높았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순신은 나라가 쪼개질 위험을 지닌 강화를 반대하고 일본군을 완전히 몰아내고 응징하자는 주전파로서 자신의 생각을 이 독후감에서 표현했다.
이순신은 첫째, 왜적과는 강화할 수 없다. 둘째, 아무리 주장해도 안 되면 죽음으로 주장한다. 셋째, 강화가 된 상태에서 구차하게 살아남더라도 나라를 구할 수 있는 다른 모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강처럼 도피나 도망이 아니라 최후까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모든 것을 던져서 의리를 지켜라!
이 독후감에는 이순신이 다른 책을 인용해 자신의 결의를 드러내는 모습도 나온다.
“무릇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일에는 오직 죽음이 있을 뿐 다른 길을 없다(夫人臣事君, 有死無貳)”는 이순신이 읽었던 《송나라 역사(宋史)》의 다른 열전 중의 하나인 <충신1>에 나오는 이약수(李若水)의 말이다. 이약수는 1127년 금나라가 송의 휘종과 흠종 등을 금나라로 끌고 갔을 때 이부시랑으로 흠종을 따라갔다. 이약수의 충성심에 감동한 금나라 장수가 유혹하자 그는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없듯이 약수가 어떻게 두 임금을 섬길 수 있겠는가(天無二日, 若水寧有二主哉)”라면서 “충신은 임금을 섬김에 있어 죽음이 있을 뿐 다른 길은 없다(忠臣事君, 有死無二)”라고 충신으로 죽기를 결심했고, 결국 금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또한 독후감 속에 나오는 또 다른 결의, “죽음 속에서 살 길을 구한다면, 만에 하나라도 혹시 나라를 건질 이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死中求生 萬一或有可濟之理)”도 《송나라 역사(宋史)》의 다른 열전 중의 하나인 <유기전(劉錡傳)>에 나오는 내용이다. 유기도 금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문신 겸 무신이었다. 그가 동경성을 방어할 때, 많은 부하장수들은 금나라를 두려워해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유기는 단호히 맞서 싸울 생각을 했다. 그 때 유기의 부하중에서 부장 허청(許淸)이 결연히 일어나 말했다.
“지금 적을 피해 달아나는 것은 쉽지만 그렇게 한다면 부모와 처자를 버리는 일이다. 모두 함께 피난을 간다면 적이 양쪽에서 공격할 것이다. 어디로 도망할 수 있겠는가? 함께 노력해서 한 번 싸우는 것만 못하다. 이는 죽음 속에서 살길을 찾는 것이다(死中求生).”
이 장면은 임진왜란 발발 직후 이순신 진영에서 경상도 구원출전 여부를 토론할 때의 장면과도 일치한다. 전라도 방어 임무를 담당한 전라좌수군의 입장에서 경상도 지원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었고, 게다가 경상도 지형에도 익숙하지 않는 상황에서 출전을 강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과 경상도도 우리 땅이니 당연히 출전해야 한다는 주장의 대립속에서 군관 송희립과 녹도 만호 정운이 분연히 일어나 출전론을 강력히 주장했던 그 모습이다.
송희립은 “큰 적들이 침략해 와 그 형세가 마구 뻗치는데 가만히 앉아서 외로운 성만 지킨다고 홀로 보전될 수 없습니다. 나가 싸워야 합니다. 다행히 이기면 적들의 기운이 꺾일 것이고 또 불행히 전투에서 죽어도 신하된 도리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녹도 만호 정운도 “신하로서 평소에 나라의 은혜를 입고 국가의 녹봉을 먹다가 이런 때에 죽지 않고 어떻게 감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순신은 《송나라 역사(宋史)》의 여러 인물들의 삶을 읽으면서 리더로서 도망치거나 책임을 전가하지 않으려고 다짐했다. 그는 어떤 상태든 리더는 도망칠 수도 없고, 도망쳐도 안되는 무거운 책임을 갖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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