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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모의 증거로 둔갑한 정여립의 ‘편지’
선조 22년(1589년)은 ‘기축옥사’로 온 나라가 뒤숭숭했다. 전주 사는 정여립이 역모를 꾸몄다는 보고에 1000명이 넘는 이가 목숨을 잃었다. 특별한 물증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정여립의 ‘편지’가 역모의 증거로 둔갑했다. 526년 전 기축년의 조선과 지금 한국은 얼마나 다른가.
조회수 : 321 | 김형민 (SBS CNBC 프로듀서) | webmaster@sisain.co.kr [385호] 승인 2015.01.30 02:41:00
중학교 2학년 올라가면 역사를 배운다고 했지. 이제 곧 빗살무늬토기니 반달모양 돌칼이니 하며 시험에 나올 단어들을 달달 외우다가 “에잇 나는 암기력이 없어!” 하면서 투덜거릴 네 모습이 눈에 선하다. 조선 시대에 접어들면 암기할 게 더 많아질 텐데, 선조 22년(1589년)에 일어난 ‘기축옥사’라는 사건도 등장할 거야. 이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만 1000명이 넘은 일대 사건이었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전주 사는 정여립이라는 전직 관리가 지역을 넘나들며 역적모의를 한다는 보고를 황해도 관찰사가 올리고 새까만 농민 두 명이 잡혀 왔을 때만 해도 기축옥사의 폭풍을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어. 임금이 직접 묻는다. “너희들이 반역을 하였느냐?” 그러자 대답이 돌아온다. “반역은 모르겠고 반국을 하고자 하긴 했습니다.” 반국은 무엇이냐 묻자 이들은 이렇게 대답했어.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한 것입니다.” ‘아침햇반’ 할 때 그 반(飯)자에 된장국 해서 ‘반국’이라고 한 것 같지? 임금도 웃고 대신들도 긴장을 풀었어. 하지만 일단 역모라고 하니 정여립을 불러 올려서 해명을 듣자고 했는데 뜻밖에도 정여립이 몸을 피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거야. 이렇게 되자 정여립의 역모는 기정사실이 돼버렸어.
가장 평정을 잃은 건 임금이었다. 원래 스승이었던 율곡을 배신하고 반대 당파인 동인에 붙은 것도 싫었던 데다가 벼슬 내던지고 낙향하기 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이제 천안(天顔)을 뵐 일이 없겠습니다.” 즉 ‘이제 당신 꼴 안 보고 살겠네!’라는 투로 뇌까리던 괘씸한 모습이 다시 떠올랐겠지. 하지만 정여립이 실제 역모를 꾸몄는지에 대한 확증은 아무것도 없었어. 선조 임금 자신이 후일 “역모를 꾸몄다면 무기가 있었을 텐데 그걸 발견 못한 이유는 무엇이며, 맨주먹으로 난리를 일으킬 셈이었단 말인가?”라고 묻고 있거든. 결국 역모 혐의는 정여립과 친하고 친하지 않고의 문제로 결정나게 돼.
ⓒ가람기획 제공
이 ‘역모’의 가장 유력한 증거는 바로 정여립과 주고받은 편지였어. 그저 문안 편지 나눈 사람들, 오며 가며 정여립과 소식을 나눈 사람들, 심지어 정여립의 집터를 봐준 사람까지도 역적이 돼서 목이 날아가고 매맞아 죽고 수천 리 밖으로 귀양을 떠나야 했지.
때로는 편지 같은 증거조차 필요 없었어. 조대중이라는 사람은 새로운 관직을 맡으면서 사랑하는 기생과 헤어지는 게 슬퍼서 눈물을 흘렸는데 이게 정여립의 죽음을 애도한 것으로 잘못 전달되는 바람에 변명도 못하고 죽임을 당하기도 해. 눈물이 증거(?)가 된 셈이야. 의금부에서는 조대중이 갖고 있던 편지를 모조리 압수했어. 새로운 역적을 만들 수 있는 증거들이었지. 그리고 그 많은 편지 가운데에는 훗날의 충무공 이순신이 보낸 것도 있었어. 혹여 이순신이 시국에 대한 불평불만 한마디라도 편지에 적어놓았다면 이순신은 임진왜란을 보지 못했을 거야.
서기 1589년에서 1590년으로 넘어가던 기축년 동지섣달의 조선은 그야말로 꽁꽁 얼어붙었어.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는 가운데 자신이 정여립과 관계없음을 목숨 걸고 증명해야 했고 정여립의 본관인 동래 정씨 가문은 정여립을 족보에서 지웠으며 전라도 전체가 ‘반역향’으로 낙인찍혔으니까. 정여립은 곧 죽음을 부르는 이름이었고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공포의 단어가 되었단다.
‘종북 콘서트’ 논란에 휩싸였던 황선씨는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연합뉴스
시대가 가고 세월이 흘러 정여립의 이름은 아득한 과거지사로 남았지만 1589년 기축년 겨울의 ‘정여립 일당’에 해당하는 공포의 단어는 무시로 우리 역사에 등장해. 한번 찍히면 무슨 수를 써도 벗어나기 어렵고 말도 안 되는 증거로도 한 사람의 생명과 권리를 쉽사리 박탈할 수 있는 공포의 낙인 말이야. 아마 조선 후기에는 ‘천주학쟁이’, 즉 천주교인이라는 이름이 그랬을 것이고 일제 치하의 ‘불령선인’(일제가 반항적인 조선인들을 부르던 이름)도 비슷했을 것이고, 우리 현대사에서 ‘빨갱이’는 왕년의 ‘여립의 일당’ 이상으로 징그럽고 두려운 단어였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여립의 당’을 능가하는 공포의 단어가 유령처럼 우리 머리 위를 떠돌고 있구나. 그 유령의 이름은 ‘종북’이라고 하지.
일기장과 ‘불렀던 노래’가 국보법 위반의 증거
얼마 전 북한을 자주 방문했던 미국동포 아주머니 한 명과 황선이라는 아주머니가 ‘통일 콘서트’라는 이름의 행사를 열었는데 한 고등학생이 이들이 ‘종북’이라며 사제 폭탄을 던진 사고가 있었지. 그들이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들’이니 응징하겠다는 것이었어. 이 학생은 구속됐지만 한국 정부는 되레 폭탄을 맞은 피해자들이 실제로 ‘종북’이라면서 재미동포 아주머니를 추방했고 황선 아주머니는 구속해버렸어.
아빠는 우리나라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한 몇 안 되는 나라”로서 최소한 ‘여립의 당’이든 ‘빨갱이’든 확실한 증거와 구체적인 범죄행위 없이 잡혀가거나 감옥에 가거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나라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왔어. 하지만 황선 아주머니를 감옥에 보낸 ‘증거’를 보면 내가 지금 21세기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지 아니면 526년 전 기축년의 조선으로 시간여행을 온 건지 문득 착각하게 돼.
황선 아주머니의 ‘북한 추종’을 증명하는 건 북한 공작원과의 연락이라든가 우리 시설을 파괴하려는 테러 음모의 증거가 아니라 단지 17년 전 그녀가 썼던 일기장과, 북한 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을 불렀다는 사실 정도였거든. 16세기의 조선 의금부 관원들이 역모 혐의자의 편지더미를 뒤져 정여립의 편지를 발견하고 환호했다면, 21세기의 대한민국 정부는 개인의 일기장에 빨간 줄을 그으며 증거라고 우기는 셈이다. ‘심장에 남는 사람’이라는 북한 노래도 그래. 이 노래는 남한 가수 바이브의 윤민수도 불러서 네가 즐겨 듣는 벅스 사이트 차트 18위에도 올랐던 노래야. 대체 이 노래를 부른 사실을 근거로 사람을 잡아가두는 아저씨들이 사랑하는 기생과 헤어져서 눈물 흘리는 조대중의 목덜미를 잡고 “너 정여립 때문에 우는 거지? 기생 때문이라고? 왜 하필이면 지금 울어? 이 역적놈아”라고 윽박지르던 조선 시대 관원들하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빠는 참으로 알 수가 없네.
얼마 전 프랑스 파리에서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이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건물을 습격해서 만화가들을 살해한 일이 있었지. 프랑스 사람들은 테러 행위에 굴복할 수 없다는 뜻으로 “내가 샤를리다”를 부르짖으며 시위를 벌였어. 아빠는 이 잡지의 풍자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아. 또 이슬람에 대해서는 무한대로 표현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유대인에 대한 풍자를 한 직원은 해고해버렸다는 편향성도 유감스럽다. 하지만 아빠 역시 “나는 샤를리다”를 외칠 거야. 왜냐하면 만화가를 죽인 테러리즘에, 폭력적 수단에는 절대 반대니까.
똑같은 이치로 아빠는 황선 아주머니가 실제로 북한을 좋아하고, 북한 노래를 진심으로 부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나도 황선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 아빠는 이른바 ‘종북주의’를 경멸하고 종북주의자들이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실질적 행동을 했다면 그에 대한 처벌을 적극 찬성하지만, 일기장을 근거로 그들을 가두거나 남들 다 부르는 노래를 그들이 불렀다고 해서 잡아가두는 16세기적 사고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다시 한번 아빠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황선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고 싶네. “지금은 21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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