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4057.html?_fr=mt2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 1천개 소지해도 ‘벌금형’

등록 :2019-10-21 21:09 수정 :2019-10-22 10:40


다크웹 동영상 사이트 운영자 솜방망이 처벌

아동 성착취 영상 소지 미국·영국 중형 선고

한국에선 소지해도 대부분 벌금형에 그쳐

“법원이 실형 선고 등으로 경각심 높여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녹색당, 불꽃페미액션 등 10여 개 단체 회원 등이 지난해 8월28일 낮 청와대 분수광장 앞에서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성범죄 산업에 대한 특별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녹색당, 불꽃페미액션 등 10여 개 단체 회원 등이 지난해 8월28일 낮 청와대 분수광장 앞에서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성범죄 산업에 대한 특별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다크웹’의 최대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및 이용자 등 300명이 적발됐고 운영자를 비롯한 상당수가 한국인이라는 미국 법무부의 최종 수사결과가 최근 발표된 뒤 이들에 대한 한국의 미온적 처벌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017년부터 한국과 미국 등 32개 나라는 이 사이트에 대한 국제공조 수사를 진행해왔다. 경찰은 지난해 이 사이트 운영자 손아무개(23)씨를 붙잡아 구속했으며 지난 16일 경찰청과 미국 법무부는 ‘웰컴투비디오’ 이용자 등 337명을 붙잡았고 이중 223명이 한국인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을 소지하고 있다고 해도 집행유예 이상 처벌을 받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심지어 운영자 손씨조차 지난 5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이라는 가벼운 형이 확정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반면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 소지만으로도 중형이 선고되고 있다.


한국의 관대한 처벌


처벌은 관대했다. <한겨레>가 대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에서 지난 1년 동안 ‘다크웹’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을 내려받기(다운로드)하거나 배포한 사건 9건의 판결문을 확보해 살펴본 결과,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 소지의 경우 8건 가운데 7건이 벌금형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배포를 한 1건의 경우도 집행유예에 그쳤다.


ㄱ씨는 2017년 6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인천 연수구 자신의 아파트에서 22개의 아동·청소년 성착취 동영상을 내려받아 소지했다. 법원은 지난 1월 ㄱ씨에게 벌금 300만원과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소지한 음란물이 22개로 비교적 많지 않고,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자백하며 재범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소지한 영상 수가 1천건에 가깝지만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2017년 5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무려 968차례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을 내려받은 ㄴ씨도 올해 1월 법원에서 벌금 300만원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받았다.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고,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등을 참작”했기 때문이다.


<한겨레>가 확보한 9개 판결문 가운데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례는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 282건을 배포하고 1128건을 내려받은 ㄷ씨(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와 1080개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을 다운받은 ㄹ씨(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뿐이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을 소지했지만 재판까지 넘어가지 않은 경우도 많다. 대검찰청 자료를 보면, 2016년 기준으로 국내 아동·청소년 음란물 범죄자의 71%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재판에 넘겨지지 않은 채 사건이 마무리됐다.


지난 16일 밤 11시(한국 시각) 미국 법무부가 다크웹 최대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해당 사이트에 폐쇄 공지를 내걸었다. 경찰청 제공

지난 16일 밤 11시(한국 시각) 미국 법무부가 다크웹 최대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해당 사이트에 폐쇄 공지를 내걸었다. 경찰청 제공


미국·영국의 경우 중형 선고


미국·영국은 한국과 사정이 전혀 다르다. 미국 법무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비트코인으로 운영된 최대 다크웹 아동음란물 사이트가 폐쇄됐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보면, 웰컴투비디오에서 아동·청소년음란물을 내려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미국과 영국 국적 피의자들은 중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사는 하이로 플로레스는 아동 성착취 영상을 입수하고 소지한 혐의로 징역 5년에 ‘의무 가석방’ 5년을 선고받았다. ‘의무 가석방’(supervised release)이란 법정에서 선고받은 형을 다 복역하고 난 뒤에 추가로 집행되는 절차로, 보호관찰과 비슷하게 감시를 받으며 감옥 밖에서 지내도록 한 제도다. 미국 텍사스주의 리처드 니콜라이 그래코프스키도 웰컴투비디오에 접속해 아동음란물을 내려받은 혐의로 징역 70개월에 의무 가석방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7명의 피해자에게 3만5천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명령도 함께 받았다.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카일 폭스는 성폭행,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 공유 등 22건의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2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또 알렉산더 버클리 역시 영상 유포에 A급 마약 소지 혐의가 더해져 40개월의 실형을 살게 됐다.


“법원, 성범죄 처벌에 관대”


위은진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현행법상 영리를 목적으로 아동음란물을 판매·대여·배포·제공한 피의자에게는 최고 징역 10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할 수 있음에도 우리 법원이 성범죄 처벌에 관대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위 전 위원장은 또 “아동이나 청소년 관련 영상에 대해서라도 실형을 선고하는 방식으로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며 “형량이 낮은 상황이 계속되면 한국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을) 제작하고 수출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법무법인 ‘온세상’의 김재련 변호사는 “현재 법정형을 올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최고형을 선고하지 않고 이런저런 이유로 감형하는 게 문제”라며 “특히 아동·청소년을 이용한 음란물의 경우 보는 이들이 아동과 청소년을 성착취의 대상으로 볼 위험이 있다. 이런 위험성을 재판부가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법 노력도 필요하다. 한국은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소지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에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5~20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미국이나 26주~3년의 구금형을 선고하는 영국에 견주면 양형 자체가 낮은 것이다. 관련 수사 경험이 많은 경찰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형량 자체가 낮은 편이다. (국회에서) 관련 법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민제 정환봉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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