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달 - 위키

고조선 2019. 10. 22. 20:51

아사달

아사달(阿斯達)은 고조선(古朝鮮)의 수도로 전해지는 지명이다.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 궁홀산(弓忽山), 금며달(今㫆達)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가 인용한 《고기(古記)》에 따르면, 단군이 평양성에 고조선을 세웠다가 아사달로 도읍지를 옮겨서 약 1,500년간 나라를 다스렸으며, 이후 기자(箕子)를 피해 도읍을 장당경으로 옮겼다고 한다. 아사달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개요

아사달(阿斯達)은 단군이 세운 고조선(古朝鮮)의 수도로 전해지고 있다. 《삼국유사》가 인용한 《위서》(魏書)에 따르면 아사달은 단군조선의 도읍지이며 아사달에 도읍하고 나라를 건국한 시기는 중국 신화 속의 제왕인 요(堯)와 같은 시기라고 한다.[1] 한편 이어서 인용된 《고기(古記)》에 따르면 단군이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였다가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로 옮겨 1,500년 동안 다스렸으며, 기자조선이 성립되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아사달로 돌아와 산신(山神)이 되었다고 한다.[2] 이에 따르면 고조선은 도읍지를 여러 차례 옮긴 것이 된다. 한편 《삼국유사》와 더불어 단군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인 《제왕운기》는 《본기(本紀)》라는 현전하지 않는 기록을 인용하여 단군이 상나라 무정 8년에 아사달산으로 들어가 신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국통감》과 《동사강목》은 《제왕운기》의 기록을 중심으로 하여 아사달을 단군이 은거하여 신이 된 곳으로 기록하고 있다.

위치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아사달의 위치에 대하여 무엽산(無葉山), 백악(白岳) 등 산으로 이해하여 백주(白州, 지금의 황해도 연백군)로 비정하는 기록과 개성 동쪽의 백악궁(白岳宮, 현재는 위치 미상)으로 비정하는 기록을 함께 전하고 있다. 《제왕운기》에는 황해도 구월산으로 비정되어 있다. 《고려사》 김위제전(金謂磾傳)에는 신지선인(神誌仙人)의 비사(秘詞)에 있는 백아강(白牙岡)에 대한 설을 인용하여 지금의 평양을 아사달로 비정하고 있기도 하다.

윤내현은 《고조선 연구》에서 아사달 및 고조선의 중심지 위치가 다섯 차례 이동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 평양시, 랴오닝 성 번시 시, 롼허(난하) 유역, 다링허(대릉하) 유역의 북진 동남, 평양시의 순서로 옮겨다녔다고 한다.[3]

어원

아사달이 조선(朝鮮)을 의미하는 고유어라는 견해도 있다. 이병도는 아사달의 뜻을 '아침의 땅', '아침의 산', '빛나는 아침의 땅' 등으로 해석하고, 아침 조(朝)자와 빛날 선(鮮)자를 합쳐서 조선(朝鮮)이라고 불렀을 것으로 추정했다.[4] 그는 아사달의 '아사'는 일본어에 '아사'가 아침이란 말인 것에 비추어 아침의 한국 고대어일 것이며, '달'은 양달(陽地)·응달(陰地)의 '달'(地)과 같이 땅을 뜻하는 것으로 아사달은 조양(朝陽) 또는 조광(朝光)의 땅이라는 뜻인데, 이것이 한자로 조선(朝鮮)으로 표기되었을 것으로 보았다.[5]

또한 아사달이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Astana)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주장도 있다.


주석

1. 일연 (1281). 〈기이 고조선條〉, 《삼국유사》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단군 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불렀는데 중국의 요(堯) 임금과 같은 시기였다. (魏書 云乃徃二千載有壇君 王倹 立都 阿斯逹 経云 無葉山 亦云 白岳 在 白州 地或云在 開城 東今 白岳 宮是 開國號 朝鮮 與髙同時)”

2. 일연 (1281). 〈기이 고조선條〉, 《삼국유사》 “《고기(古記)》에 이르기를...당고(唐高)가 왕위에 오른 지 50년이 되는 경인(庚寅)년- 당의 요(堯)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戊辰)인즉 50년은 정사(丁巳)요 경인이 아니다. [사실이] 아닐까 의심스럽다.-에 평양성(平壤城)-지금의 서경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국호를 조선이라 불렀다. 다시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다. 그 곳을 궁홀산(弓忽山), -혹은 방홀산(方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 불렀다. 그는 여기서 1천5백 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무왕(武王)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무왕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封)하니, 단군은 이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겨갔다가, 후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山神)이 되었는데, 이때 나이가 1908세였다. (古記云...王倹以唐髙即位五十年庚寅唐堯即位元年戊辰則五十年丁巳非庚寅也疑其未實都平壤城今西亰始稱朝鮮又移都於白岳山阿斯逹又名弓一作方忽山又今旀逹御國一千五百年周虎王即位己卯封箕子於朝鮮壇君乃移於藏唐亰 後還隠於阿斯逹爲山神壽一千九百八歳)”

3. 윤내현, 《고조선 연구》, 일지사, 1990년, 331~357쪽.
4.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81년, 40~41쪽.
5. 이병도(李丙燾), 《국사대관(國史大觀)》, 보문각, 1959년, 26~28쪽.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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