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원' 받은 근로정신대 할머니들 "모욕도 이런 모욕이"
피해 할머니들 광주서 기자회견 열고 항의..."5년 전에는 99엔 주더니, 정부는 뒷짐만"
15.02.25 16:32 l 최종 업데이트 15.02.25 17:52 l 소중한(extremes88)

▲ '199엔 지급' 통보 받은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의 '눈물' 2009년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으로 99엔을 지급했던 일본 정부가 최근 추가 소송을 제기한 다른 피해 할머니들에게 199엔(한화 약 1850원)을 지급해 문제가 되고 있다. 피해 할머니들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25일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정부·전범기업의 사과 및 합당한 배상,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 등을 요구했다. 199엔 지금 통보를 받은 김재림(86) 할머니가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소중한


"결국 어서 죽으라는 소리 아니오!"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평소 머물던 요양병원에서 나와 기자회견장을 찾았다. 손에 들린 100엔짜리 동전 두 개가 눈에 들어오자 절로 분통이 터졌다. 닦고 또 닦았지만 눈가에 자꾸 눈물이 고였다.

잠시 숨을 고른 할머니는 "'공부시켜주겠다'는 말로 속여 열셋, 열넷 어린애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었으면 배상이라도 제대로 해야지, 애기 과자값도 안 되는 돈으로 어쩌란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09년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으로 99엔을 지급해 공분을 샀던 일본 정부가 최근 추가 소송을 제기한 다른 피해 할머니들에게 199엔(한화 약 1850원)을 지급해 문제가 되고 있다(관련기사 : 5년 전 '99엔 지급 파문' 일으킨 일본, 이번엔?). 

피해 할머니들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아래 시민모임)'은 25일 광주시의회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년 전 후생연금 탈퇴수당금이라고 99엔을 내놓은 일본 정부가, 광복 70년을 맞는 올해엔 199엔을 지급하는 걸 보니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다"며 일본 정부의 '199엔 지급'에 항의했다.

이들은 "후생연금 탈퇴 수당은 임금과 마찬가지로 해방 당시 마땅히 지급했어야 할 피해 할머니들의 정당한 땀의 대가"라며 "그런데 (수당 지급을) 70여 년이나 지체한 것도 모자라 화폐가치 변화를 아예 무시하고 해방 당시 액면가 그대로 수당을 지급하는 게 말이 되나"라고 일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 정부, 화폐가치 변화 무시하고 '199엔' 지급

▲ 일본 정부가 보내온 '199엔 지급' 문서 2009년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으로 99엔을 지급했던 일본 정부가 최근 추가 소송을 제기한 다른 피해 할머니들에게 199엔을 지급해 문제가 되고 있다. 피해 할머니들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25일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정부·전범기업의 사과 및 합당한 배상,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 등을 요구했다. 사진은 일본 후생노동성이 피해 할머니들에게 보내온 '199엔 지급' 문서. ⓒ 소중한

지난 4일 일본 후생노동성은 '후생연금 탈퇴 수당으로 199엔 지급' 등의 내용이 담긴 문서를 근로정신대 피해자 법률대리인인 우치가와 요시카즈(內河惠一) 변호사에게 전달했다. 우치가와 변호사는 내용 검토 및 재확인을 거쳐 23일 피해자인 김재림(86), 심선애(86), 양영수(87) 할머니에게 199엔 지급 사실을 통보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미쓰비시중공업 강제 노역을 입증하는 '후생연금 가입' 사실이 밝혀져,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에 탈퇴 수당을 청구한 데 따른 결과다.

세 할머니와 함께 후생연금에 가입한 것으로 확인된 고 오길애(강제 노역 도중 지진으로 사망) 할머니의 경우 '가입 6개월 이상 노동자에게만 탈퇴 수당 지급'의 규정을 충족하지 못해 199엔 마저 받지 못했다.

문제가 된 199엔은 당시 후생연금 규정과 당시 화폐가치를 그대로 반영한 금액이다. 후생연금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5인 이상 사업장이면 의무적으로 가입하던 제도로 연금 비용은 노동자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임금에서 원천 공제됐다. 사업장은 6개월 이상 후생연금에 가입한 노동자가 일을 그만둘 경우 탈퇴 수당을 지급하도록 돼 있다. 

규정에 따르면 사업장은 노동자의 후생연금 가입 기간이 1년이 넘을 경우 30일 치 임금을, 1년이 넘지 않을 경우 15일 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2009년 일본 후생노동성은 양금덕(85)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의 후생연급 가입 기간을 1년 미만으로 책정해 99엔을 지급했다(당시 최고 일당 6.6엔×15일= 약 99엔).

이번에 199엔을 지급한 것은 김재림, 심선애, 양영수 할머니의 후생연급 가입 기간을 1년 이상으로 책정(약 6.6엔×30일=199엔)했기 때문이다.

눈물 흘린 피해 할머니 "인간이라면 가슴에 손을 얹고..."

▲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가르쳐 준다"는 일본인 담임선생의 말에 속아 불과 13~15세 어린 나이에 미쓰비시중공업 군수공장으로 동원된 소녀들이 일본인 인솔자에 이끌려 신사참배에 나선 모습. 1944년 6월경.
ⓒ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날 항의 기자회견엔 시민모임 회원들은 물론, 이번에 '199엔 지급'을 통보받은 김재림 할머니, 2009년 '99엔 지급'을 통보받은 양금덕 할머니가 직접 참석했다. 김 할머니는 "강제 노역에 끌려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배 곯아가며 산 우리에게 (일본 정부는) 어떻게 이런 인간 같지 않은 짓을 할 수 있나"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제 노역 당시 대지진이 일어나 건물 밑에 깔렸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와서 지금까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당시 같이 일본에 갔다가 죽은 사촌 언니를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양 할머니도 "(2009년에) 99엔 지급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분통이 터졌는데 이번에 199엔 지급 이야기를 들으니 기가 막히고 분통이 터진다"며 "(일본 정부는) 인간이라면 가슴에 손을 얹고 피 흘려가며 일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모임은 "한국 정부의 알다가도 모를 태도"에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국언 시민모임 대표는 "정부는 한국 사법부의 배상 판결을 반기기는커녕 '사인 간 소송에 대해 정부의 입장 표명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며 "피해자들은 하루하루가 구만리인데 광복 70년도 부족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정부는 국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하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의 소송을 돕고 있는 이상갑 변호사도 "중국의 피해자들은 중국 정부의 노력으로 배상을 받고, 배상 논의를 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이 중국과 한국을 대하는 태도는 정부의 노력에 따른 차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광복 70주년 이벤트만 할 게 아니라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은 일제강점기인 1944년 5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동원돼 강제 노역을 당했다. 이번에 199엔 지급을 통보받은 김재림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유가족 4명은 지난해 2월 27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양금덕 할머니 등 피해자·유가족 5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법에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해, 2013년 11월 승소한 바 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 "5년 전 99엔, 이번엔 199엔? 일본 정부 태도, 말문 막혀" 2009년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으로 99엔을 지급했던 일본 정부가 최근 추가 소송을 제기한 다른 피해 할머니들에게 199엔을 지급해 문제가 되고 있다. 피해 할머니들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25일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정부·전범기업의 사과 및 합당한 배상,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 등을 요구했다. ⓒ 소중한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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