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80711.22015204032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16> 번데기, 그리고 곡옥
C자형 곡옥은 인간의 태아나 번데기를 형상화한 것
장수와 사후 환생을 기원한 장신구로
옥 귀한 유라시아선 멧돼지 이빨 사용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08-07-10 20:41:10 | 본지 15면
중국 요서지방 홍산문화에서 출토된 옥룡, 적봉시박물관 전시.
필자 나이의 독자라면 어렸을 적에 먹던 번데기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어린 필자도 집에 빈 병이 없을 땐 어머니 몰래 부엌의 간장병을 번데기와 바꿔먹고 혼났던 적이 있다. 난데없이 웬 번데기 얘기인지 의아히 여길지 모르겠지만, 바로 이것이 동북아시아의 곡옥(曲玉)과 연관이 있다.
필자가 유학하면서 의형제처럼 지냈던 중국 고고학 전문가 세르게이 알킨 씨가 하루는 나한테 물었다. "책을 보니 한국사람들은 비단벌레의 유충을 삶아먹는다는 데 진짜인가?" 그는 내가 한참 들려준 번데기 이야기를 듣고는 밥맛이 떨어져서 점심값을 벌게 됐다는 농담과 함께 자신의 연구를 소개했다. 이 곡옥은 곤충의 유충을 나타내는 동시에 복중의 태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명의 탄생과 부활을 뜻한다는 것이다.
곡옥은 우리나라 선사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청동기시대 고인돌에서는 C자형으로 가공한 옥이,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 때에 널리 발견된다. 일왕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삼종의 신기인 검·경·옥(劍·鏡·玉) 중에 옥은 바로 곡옥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또 삼국시대에 내려와서도 곡옥은 널리 쓰여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라의 금관에도 곡옥이 달려있다. 한편 옥이 귀한 알타이와 같이 유라시아 전역에서는 멧돼지 이빨이 많이 쓰였는데, 이것도 곡옥 사례와 비슷한 의미를 띠고 있는 것 같다.
약간 형태를 달리하지만, 중국 각지에서도 곡옥이 발견된다. 만주지역에서는 5000~6000년 전의 신석기시대에 이미 곡옥형태의 옥제 장신구가 나오는데, 중국에서는 이를 돼지 같은 용(猪龍·저룡)또는 옥으로 만든 용(玉龍·옥룡)이라고 하여 용의 기원이라고 생각한다. 중원지역에서도 C자형의 용 같은 옥기가 상·주나라 때에 흔히 발견된다.
그렇다면 C자형은 무슨 의미일까? 인간이나 다른 척추동물의 태아 모양은 거의 같다. 마치 C자처럼 굽어져 있는 모습이다. 과거 시베리아와 극동의 원주민들은 나무에 달려있는 곤충의 유충(번데기)이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봄이 되면 변태해서 날아가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성충→ 알→ 유충→성충으로 이어지는 곤충의 끊임없는 생명력을 상징하는 번데기를 형상화한 곡옥이 목걸이와 같은 장신구로 사용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덤에 이런 장신구를 부장하는 것은 죽은 이가 다시 환생하기를 바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신라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왕관에서도 비단벌레의 날개를 붙여서 장식한 사례가 최근 확인되었는데, 혹시 같은 의미는 아니었는지. 곤충의 유충은 음식을 귀하기 힘든 봄철에 쉽게 얻을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이어서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각종 번데기를 먹었다고 한다. 중국은 최근 만주지역의 신석기시대, 특히 홍산문화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옥제 C형 장신구를 중국 문화를 상징하는 용의 기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곡옥은 비단 중국뿐 아니라 시베리아,극동 그리고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전역에 퍼져있었던 세계관과 사후관에 대한 반영인 것이다.
홍산문화의 곡옥형태의 장신구 하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2004년 10월에 이청규 서영수 박경철 교수님들과 고조선사연구회에서는 요령지역 답사를 갔었다. 홍산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인 우하량 전시관의 관장인 주달(柱達)선생은 '음주에 통달한' 주달(酒達)인가 싶을 정도로 두주불사로 소문난 분이다. 그런데 술 먹고 기분이 좋으면 발굴된 옥제 유물 중 진귀한 것을 보여준다고 누군가가 귀띔을 해주었다. 유적답사가 끝나고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건만 주달 선생은 술 한 잔을 걸치자고 제안하셨다. 답사팀 중에서 그나마 젊으니 낮술을 먹을 수 있을 것이고 중국어도 된다는 죄로 필자가 술상무로 불려갔다. 결국 주달 선생 옆에 앉아 50도 가까운 배갈을 컵에 따라 마시는 고행을 자처했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가고 주달 선생도 얼큰하게 취했을 즈음에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우하량에서 출토된 옥제품 중에는 좋은 것이 많다면서요? 우리도 한 번 볼 수 있는 영광을…." 그러자 주달 선생의 심드렁한 대답. "허허, 우하량 옥제품을 특별전시회 한다고 해서 다 심양으로 보냈답니다. 술이나 한 잔 더 하시오, 젊은 양반! " 이때 심양에 보냈다는 옥제품은 2006년 5월 30일 개막한 요하문명전에서 볼 수 있었는데, 전시창 넘어 자리잡고 있는 C자형의 옥룡에서 그때 우하량에서 마셨던 배갈의 구수한 누룩 향기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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