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81128.22015202428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34> 폭탄주와 자작나무

북방지역 문화의 일부인 자작나무…신라 유물에서도 흔적

'보드카+맥주' 러시아가 폭탄주 원조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08-11-27 20:27:36 |  본지 15면


필자가 발굴한 크시토프카 크류치노예유적 5호무덤. 시신 위에 자작나무를 싼 흔적이 남아있다.


송년회의 시즌이 다가온다. 요즘에는 조금 덜하지만 예전에는 폭탄주에 노래방에 정신없었던 나날이었다. 애주가들의 송년회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폭탄주일 것이다. 충성주 회오리주 등등 각종 신기한 방식으로 폭탄주를 만들어먹는데, 폭탄주의 원류(?)는 러시아라고 한다. 광복 후에 북한으로 진주한 소련군들이 적은 술로 여러 명이 취하기 위해서 만들어 먹은 것을 배운 것이라고 한다.


필자도 폭탄주를 처음 경험한 것은 시베리아의 발굴장이었다. 러시아의 폭탄주는 한국과 달리 양주와 맥주를 한데 타서 먹는 것이 아니라 보드카와 맥주를 따로 먹는 식이다. 즉, 보드카를 털어넣고 맥주를 얼른 마셔서 속에서 올라오는 역한 기운을 누르는 것이다. 무식한 방법이라고 손사래를 칠지 모르지만, 의외로 이런 폭탄주도 그리 나쁘지는 않는 방법이다. 40도짜리 보드카에 맥주를 섞어 먹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러시아어로 '요르쉬'라고 하는데, 원래는 강에서 사는 가시가 많은 물고기를 말한다. 폭탄주가 요르쉬의 가시처럼 짜릿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폭탄주를 먹으면서 "보드카 베스 삐바 젠기 나 베테르"라고 외치기도 한다. "맥주없이 보드카 먹으면 돈 낭비야!"라는 뜻인데. 함부로 이런 말 했다가는 알코올 중독으로 오인받기 십상이다.


필자가 1996년에 서부 시베리아 크시토프카군의 외곽에 있는 크류치노예 호수근처에서 500여년 전에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무덤을 파고 있었다. 발굴한 지 한 한 달쯤 지났을 때에 초원을 가로질러 경찰차가 오는 것이 보였다. 지역경찰서에서 외국인이 시베리아를 발굴한다니 조사를 나왔다는 것이다. 내 여권과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한 후 본격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강인욱 동지, 마약하나? " "아니오." "국가기밀의 부대나 군사기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나?" "없어요." "기타 러시아 국익에 위배되는 행동을 했는가?" "아마 없지요?" "보드카는 먹나?" "뭐, 조금…." "검사해봐야겠군…. 병 꺼내!"


4명의 경찰은 순식간에 자동차 보닛 위에 보드카 1병과 맥주를 꺼내고는 술을 권했다. 안주는 없었다. 맥주가 안주인 셈이다. 러시아식 폭탄주 한 잔에 녹아난 나는 잠시 후 경찰들과 팔씨름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금방 친하게 되었다. 내가 한참동안 발굴장으로 돌아오지 않으니 걱정한 친구인 안드레이 노비코프가 우리한테 왔고, 이미 얼근히 취해있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한숨을 내쉬며 안도하는 것이었다. 큰일나서 경찰에 끌려가기보다는 조금 일을 못하더라도 같이 술 먹는 게 백 번 나은 일이니깐. 술을 좀 먹은 후 경찰들은 나중에 추가 조사하러 오겠다며 사라졌고, 똑같은 방법으로 '조사'는 두어 번 더 있었다.


크시토프카 크류치노예 유적에서는 땅을 얕게 파고 시신을 안치한 토광묘였다. 지금도 근처에는 자작나무가 우거져있는데, 시신들도 자작나무 껍데기로 감싸서 묻었다. 공기를 만나면서 바스러지는 하얀 자작나무 껍데기를 조심스레 붓으로 제거하고 사진을 찍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자작나무숲에서 평생을 살던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죽어서까지 자작나무에 쌓여서 저승으로 떠난 것이었다.


자작나무는 우리 발굴단에게도 삶을 지탱해주는 수단이기도 했다. 자작나무로 장작을 했고, 그 껍데기는 기름 먹은 종이처럼 활활 타오르니 모닥불을 지필 때 유용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은 자작나무로 집을 짓고 그 껍데기로 바구니 신발 장신구 등 안 만드는 것이 없다. 또 우리나라 고로쇠나무처럼 봄에는 그 수액을 먹기도 한다.


신라의 천마총에 발견된 천마가 새겨진 장니(말을 탈 때 진흙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가리개)가 바로 자작나무다. 자작나무는 추운데에서만 사는 활엽수이니, 같이 발견된 수많은 북방과 중앙아시아 계통의 유물과 함께 신라의 문화가 북방지역의 요소를 많이 흡수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신라가 어떻게 해서 북방의 문화를 받아들였는지는 아마 수십년을 두고 차근히 풀어야할 과제일 것이다.

 

러시아에서 폭탄주의 원류(?)를 경험했던 그 곳에서 발굴한 시신을 감싼 자작나무를 생각하면 1500여년 전의 천마총의 자작나무제 장니가 생각난다. 북방지역과 서역의 다양한 문물이 교류했던 당시 비단 금관과 같은 명품만이 아니라 술버릇 같은 세세한 문화들도 같이 들어오지 않았을까?


부경대 사학과 교수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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