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100525.22022195143


초원에서 한반도까지 <36> 초원의 헤드헌터들

적의 머리 사냥하는 스키타이 전사 풍습 유라시아 전역에 퍼져

전쟁에 의존했던 초원민족 힘 과시 방법 사용

전장에서 자신의 목숨 걸고 적장과 힘 겨뤄

전투에서 절두… 흉노 거쳐 중국에도 전해져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10-05-24 19:59:08 |  본지 22면


영화 '하이랜더' 시리즈에 나온 전사 쿠르간. 쿠르간은 거대한 무덤을 뜻하는 초원민족의 낱말이다.


 1986년도에 나온 영화 '하이랜더' 시리즈는 인간의 영원한 화두인 영생불사를 영상으로 풀어냈다.


스코틀랜드의 전설을 바탕으로 산속에 사는 불사(不死)의 사람을 환타지로 그려냈으며 '반지의 제왕' 만큼이나 인기를 얻었다. 영생을 얻은 하이랜더들은 서로 목을 베어서 죽여야 하고, 최후에 남은 자가 진정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기본 줄거리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악당으로 등장하는 사람의 이름이 '쿠르간'이다. '쿠르간'은 '거대한 무덤'이라는 뜻으로 초원의 고고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이름이다. 영생을 얻고자 싸우는 사람에게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은 그 이름의 주인공이 거대한 고분을 만들 수 있는 강성한 초원민족임을 암시한다. 영화 '하이랜더'에 따르면 이 악당은 스키타이시대가 시작될 무렵인 기원전 1000년께 태어났고, 서기 4세기에는 훈족, 반달족, 고트족과 함께 로마를 파괴했다. 이후에는 타타르족, 투르크족 그리고 징기스칸이 이끌던 몽골족과 함께 세상을 파괴한 사람이다. '쿠르간'은 오랜 기간 서양인들을 공포에 빠지게 한 초원민족의 상징이다.


꼭 이 영화만이 아니라, 많은 정착민들은 초원의 전사를 잔인한 악당으로 묘사했다. 전쟁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초원민족에게는 실제로 적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풍습이 있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적의 머리를 탐한 사람들


임진왜란 때 희생된 조선 백성과 군사들의 코를 모아서 만든 일본 교토의 귀무덤. 스키타이인들이 전장에서 적장의 머리를 베는 것과는 또다른 형태다.


요즘 헤드헌터는 기업체를 위해 유능한 사람을 스카우트해주는 사람을 말한다. 샐러리맨이라면 헤드헌터의 연락을 내심 바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고대 초원지역으로 오면 상황이 아예 달라진다. 고대 초원의 '헤드헌터'는 적의 머리를 사냥하는 용맹스러운 전사를 뜻한다.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인의 헤드헌팅 풍습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묘사했다. 그에 따르면 스키타이 전사는 적을 죽이지 못하면 대접을 못받는다고 기록돼 있다. 스키타이인들은 적을 죽이면 그 머릿가죽을 벗겨 손수건처럼 만들어 말에 매달았다고 한다. 초원을 누비는 용맹스런 전사의 뒤에 달려있는 손수건(?)의 수만 보고도 엔간한 적들은 도망치기 바빴을 것이다. 아주 철천지 원수를 무찔렀을 경우 그 살가죽으로 말안장을 삼거나 화살통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이런 풍습은 흑해 연안 스키타이뿐 아니라 유라시아 전역에 널리 퍼졌다. 실제로 파지릭고분에서 발굴된 한 미이라의 머리 부분은 벗겨지고, 대신에 소가죽을 꿰맸다. 아마 적에게 희생당한 장군을 모시고 와 장례를 지내기 위해 다시 소가죽으로 봉합한 것 같다. 그밖에도 사람의 어깨 부분 살갗을 이용한 화살통도 발견되어 헤로도투스의 기록이 정확했음을 증명했다. 시베리아 각지에서 발견되는 스키타이시대 고분에서 나온 해골 중에는 날카로운 칼로 그은 흔적이 자주 발견되는데, 형질인류학자들은 이 역시 머릿가죽을 벗기는 풍습의 일종이었다고 주장한다.


■'사기열전'에도 보이는 헤드헌팅 흔적


경남 진주 남강 유역 대평리 지구의 석관묘. 머리 부분이 통째로 없는 유골이 나온 유적이다. 전쟁보다는 매장의 풍습으로 보고 있다.


스키타이인들은 아주 특별한 적을 죽인 경우 이마 윗부분의 머리뼈를 잘라서 술잔을 만들었다. 부자인 경우는 소가죽으로 덧대고 금도금을 한다고 한다. 흉노도 현재의 알타이 지역에 거주하던 월지국의 왕을 죽이고 그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이 풍습은 북중국의 흉노를 거쳐서 중국에도 전해졌다. 사기 '자객열전'에 등장하는 '예양(豫讓)'이라는 사람은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士爲知己者死)'는 고사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예양이 목숨을 걸고 복수하려고 했던 사람은 진(晉)나라의 조양자(趙襄子)였다. 조양자는 예양의 주군인 지백을 죽인 후에 그의 해골을 장식한 뒤 변기의 용도로 사용했다고 한다. 적의 해골로 술잔을 만들던 초원의 풍습이 변용된 것 같다. 초원의 전사가 머릿가죽으로 전공을 따졌다면 귀나 코를 잘라 전공을 대신한 경우도 있다.


임진왜란 때 희생된 우리 백성과 군사들의 코를 모아서 만든 일본 교토의 귀무덤(미미즈카·耳塚 이름은 귀무덤이지만 사실은 코를 베어갔다)이 그러하다. 또 취하다는 뜻의 '取(취)'라는 한자도 전쟁에서 적의 귀(耳)를 손(手)으로 잡아당겨 전공을 따지는 형상이다.


■한반도에선 비슷한 풍습 찾기 어려워


초원이 서로의 머리를 탐하며 전쟁을 했을 당시 한반도는 어땠을까? 한반도에서 전쟁이 활발히 일어난 증거는 그리 많지 않다. 기원전 8세기부터 한반도에는 비파형동검이라는 청동무기가 도입되지만, 그보다는 돌을 갈아 만든 석검이 주로 쓰였다. 전쟁이 많이 없었으니 잔인하게 서로 죽였을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산성이 강한 한국의 땅에서 인골이 남아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아 실제로 어땠을지 알기가 거의 어렵다.


그래도 고인돌을 발굴하면 가끔씩 부러진 돌화살촉이 무덤방 안에서 흩어진 채로 나와 이것이 당시 화살에 맞은 증거로 추정되기도 한다. 그런데 1998년 경남 진주 남강 유역 대평리에서 발견된 석관묘에서 인골의 일부가 발견되었는데 머리뼈 쪽이 통째로 없었다. 대개 사람 뼈 중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되는 부분이 두개골과 치아이기 때문에 이는 흔치 않은 현상이었다. 현장에 투입된 형질인류학자가 조사한 결과 이 주인공은 목이 잘린 채로 묻혔다고 결론지었다. 바다 건너 일본 규슈에서는 야요이시대 대형 마을인 요시노가리 유적에서 목부분이 없이 옹관에 묻힌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렇지만 남강 대평리 석관묘나 요시노가리의 옹관묘가 전쟁 중에 서로 목을 자른 증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전쟁과 무기가 고도로 발달한 초원 지역에서도 전투중 단번에 목을 자르는 풍습은 없었기 때문이다. 흔히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단칼에 목을 자르는 일은 고대에는 쉬운 게 아니었다. 이는 경추(목뼈) 사이를 날카로운 강철검으로 벨 때에나 가능한데, 강철로 만든 칼이 아니라 청동검이나 돌칼처럼 상대적으로 무딘 무기로 단번에 목을 자른다는 것은 실제 전쟁에서는 일어나기 어렵다.


아마도 한국과 일본의 단두 풍습은 전쟁보다는 매장풍습의 일종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머리를 참할 정도의 중죄인을 그렇게 거대한 옹관이나 고인돌에 온전히 묻을 리도 없으려니와, 머리만을 따로 묻거나 하는 풍습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은 잔인하기만 했던 걸까


영화 '하이랜더'는 영생을 바라며 욕심을 부리지만 결국은 죽어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보여준다. 옆의 사람을 죽여야만 자기의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는 서로 죽이면서 그런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고대인들의 잠재적 공포가 숨어있다. 이는 어딘지 동료와 친구와도 경쟁하면서 서로를 눌러야 살 수 있는 현대 경쟁사회의 슬픈 모습과도 겹치는 점이 있다.


적의 머리를 자르고 그를 과시한다는 것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잔인하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상대에게 자신이 가진 우월한 힘을 과시해 쓸데없는 싸움과 희생을 줄이는 방법으로도 활용되지 않았을까.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보면, 병사들이 진을 치면 장군들이 나와 전쟁의 승패를 건 결투를 하는 예가 자주 보인다. 서로 잔인함을 과시하며 목을 취하기 위해 싸우지만, 그 같은 1 대 1 결투의 결과로 싸움의 양상이 미리 일정한 방향으로 정리되고 전면적인 전투를 피할 수 있다면 병사들로서는 목숨을 건질 기회가 늘어난 셈이니 다행(?) 아닐까.


현대사회에서 가시적으로 잔인함을 보여주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다. 중죄범을 공개처형하는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사형제마저 폐지되는 추세다. 하지만 이제는 보이지 않는 공포가 우리를 노린다. 환경파괴, 오염된 음식물, 핵무기, 약물 등 우리를 보이지 않게 죽이는 것이 너무 많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내전과 테러도 적의 우두머리보다는 민간인과 약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묻지마 살인'도 결국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있다. 초원의 전사는 잔인하게 보일망정, 전쟁에서 자신의 목을 걸고 적장과 힘을 겨루었다. 과연 현대인은 초원전사에게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강인욱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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