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87180
'지소미아 연장'에 목매는 미국... 왜냐면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태평양주도권 #중국견제 #기업자본이익
19.11.15 13:51 l 최종 업데이트 19.11.15 14:15 l 김종성(qqqkim2000)
▲ 15일 오전 서울 국방부에서 열린 제51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 앞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고위급 관료들이 한국을 대거 방문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국무부 4인방'으로 불리는 키이스 크라크 차관, 데이비드 스틸웰 차관보, 마크 내퍼 차관보, 제임스 드하트 방위비분담금 협상대표가 한꺼번에 입국했다.
이번 주에는 마크 애스퍼 국방장관, 마크 밀리 합동참모본부 의장, 필립 데이비슨 인도태평양사령관이 들어왔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까지 이들과 보조를 맞추면서 이른바 '국방부 4인방'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들이 입국한 목적은 14일에 열린 한미 군사위원회(MCM)와 오늘(15일)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SCM) 등의 무대를 통해 '방위비 분담금을 늘리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국무부 4인방과 국방부 4인방이 거론한 쟁점 중 하나인 지소미아는 외형상으로는 한국과 일본의 문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미국과 일본과 한국의 문제다. 이익의 크기를 놓고 봤을 때 미국-일본-한국 순서가 된다.
지소미아 이익의 크기, 미국 〉 일본 〉 한국
미국이 앞장서서 지소미아 연장을 촉구하는 것은 동맹국 일본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미국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한마디로, 태평양의 패권이 예전처럼 동(東, 미국)에서 서(西, 아시아)로 계속 흐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 기운이 서에서 동으로 '역주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886년에 인디언과의 전쟁을 끝내고 대륙을 단속한 미국은 1898년 태평양 진출을 개시했다. 미국은 이듬해까지 하와이·필리핀·괌·사모아·웨이크섬을 점령하면서 태평양 곳곳에 대한 지배권을 대략적으로 구축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패권 흐름이 서에서 동으로 바뀌는 듯했지만, 4년 뒤 일본의 패망으로 힘의 흐름은 다시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향했다. 1945년 이후로 동북아에서 미국이 소련·중국·북한과 냉전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에도, 그 흐름은 같았다.
1898년 미국의 태평양 진출 이후 형성된 흐름을 타고 가장 큰 이익을 얻은 집단이 있다. 바로 미국의 기업자본들이다. 이들은 해외미군의 군사적 뒷받침을 받으며, 또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뒷받침을 받으며 동아시아에서 꾸준히 이익을 취했다.
'기업자본의 자율성 극대화, 국가권력의 공공성 극소화'를 표방하는 신자유주의가 1980년대 초반 사회당 출신인 프랑수아 미테랑 정권의 '귀여운 도전'을 제압한 뒤, 지구 북반부에서는 신자유주의가 대체로 공고하게 확립됐다. 이에 힘입어 미국 국가권력과 기업 자본은 태평양을 경유해 동아시아에서 지속적인 이익을 만들어냈다. 이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태평양의 패권은 계속해서 미국으로 향해야 했다.
그런데 태평양 점령을 개시한 지 정확히 110년 되는 2008년을 기점으로, 미국은 태평양 패권이 자신들에게 오지 않을 상황도 걱정하게 됐다. 1997년 한국 IMF 외환위기 이상의 충격을 줬던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바로 그 계기다. 미국 금융자본의 자율성 극대화가 낳은 대규모 파국인 2008년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가 퇴조하기 시작했다는 징후가 되는 동시에,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에 의한 세계 지배)의 쇠퇴를 절감하는 촉매제가 됐다.
중국의 부상
▲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던 2008년 8월 8일 저녁 주경기장인 궈자티위창에서 개막을 알리는 폭죽이 터지며 밤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모습. ⓒ 남소연
그런데 미국에겐 대재앙이었던 2008년을 반가운 마음으로 맞은 나라가 있었다. 바로 중국이다. 금융위기의 시발점이었던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9월 15일) 1개월 전인 8월 8일, 중국 베이징에서는 세계 축제인 올림픽이 성대하게 열렸다.
중국에서 '빠(ba)'로 발음되는 '8(八)'은 '돈을 벌다"라는 뜻인 파차이(facai·發財·발재)의 파(發)와 발음이 비슷하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8을 큰돈과 연결시킨다. 그런 8이 두 개나 붙은 8월 8일에 올림픽을 개막함으로써 중국은 자국의 경제성장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달에 미국 국가권력과 기업자본은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깊은 나락에 빠졌다.
2008년은 외교적으로도 중국의 대약진이 두드러진 해였다. 앨빈 토플러에 비견되는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중국의 국력 성장을 다룬 <메가트렌드 차이나>에서 "2008년은 중국 외교의 해였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2008년 한 해에 180명 이상의 국가나 정부의 장이 중국을 방문했다. 외교부 양제츠는 '이제 중국의 운명은 세계의 운명과 점점 더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고 선언했다. 확실히 다른 국가의 지도자들도 머릿속으로 자국의 운명 또한 중국과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2008년을 계기로 미국 지도자들도 자국의 운명이 중국의 운명과 더욱 더 밀접하게 반비례하고 있다고 생각할 듯하다. 이로 인한 두려움이 중국의 급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파상공세로 이어지고 있다.
박홍석 동아대 교수는 2013년에 <평화연구> 제21집 제2호에 실린 '중국의 패권경쟁 가능성과 미국의 정책 대응'이란 논문에서 "특히 2008년 전 세계적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미국 쇠퇴론이 심화되고 '중국 때리기'가 확산되는 것은 마치 1980년대 일본에 대한 수정주의가 나타난 상황과 유사하다"라고 짚었다.
일본 경제가 급성장하자, 1980년대 미국에서는 '미국 쇠퇴론'과 '일본 경계론'이 대두했다. 그래서 미국이 벌인 일이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1985년 체결한 '플라자 합의'다. 일본 엔화의 가치를 높여 일본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트림으로써 일본의 무역 흑자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는 일본 경제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1980년대 초 일본에게 느꼈던 공포심을, 미국은 2008년 이후 중국한테 느끼는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 수준의 무역분쟁을 거는 게 그런 경계심을 반영하고 있다.
아베의 속셈, 트럼프의 계산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018년 6월 7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그런데 미국은 일본한테 무역제재만 가했던 것과 달리, 중국에겐 무역제재뿐 아니라 군사적 압박까지 가하고 있다. 2017년 12월부터 공식 가동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통한 중국의 해외 팽창을 견제하고자 이 지역 국가들, 특히 일본·인도·호주 등과 동맹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트럼프에 의해 시작됐지만, 트럼프에게 이를 권유한 것은 아베 신조 총리다. 아베 신조가 2016년 8월 이 전략을 먼저 천명한 뒤 미국을 이 방향으로 유도했다. 2018년에 <전략논단> 제27권에 실린 권태환 전 주일대사관 국방무관의 논문 '인도-태평양을 둘러싼 미·일 전략 구상과 일본의 방위계획 대강 개정 전망'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일본의 인도·태평양 구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분석한다.
일본은 1980년대에 미국이 일본을 질시해서 플라자 합의를 체결토록 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 일본이 볼 때, 2008년 이후의 미국이 중국한테 어떤 감정을 품고 있을지를 헤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듯하다.
아베 신조 정권은 미국 국가권력과 기업 자본의 그 같은 정서를 활용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미국에 추천했다. 무역뿐 아니라 군사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이다. 미국 국익에 부합하는 전략을 추천하고 일본이 이를 지원함으로써 일본 군사대국화를 자연스레 추진하는 게 아베 신조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추천하기는 했지만,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국의 세계 전략에 매우 긴요하다. 중국으로 인해 태평양 물결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지 않도록 막는 동시에, 미국이 계속해서 태평양 동쪽 끝이 아니라 서쪽 끝에서 안정적으로 동아시아를 상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미국 자본이 계속해서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는 데도 당연히 도움이 된다.
미국이 강력한 국력과 위상을 유지하면, 무엇보다 미국 자본들이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된다. 이는 미국 자본들이 세계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를 사수하는 데도 유용하다. 미국 국가권력과 미국 자본들한테는 인도·태평양 전략이 그런 선물을 제공할 수 있다.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이 전략이 잘 수행되려면, 동북아에서 미국 중심의 동맹체제가 잘 작동돼야 한다. 동북아는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가장 가까울 뿐 아니라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관문 중 하나다.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급소 지점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구멍이 뚫린다면, 인도·태평양 전략은 물론이고 미국의 세계패권 자체가 동요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한일 문제인 '지소미아'에 저토록 목을 매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동북아에서 한일이 불협화음을 겪게 되면 중국·북한·러시아가 상대적으로 강해져 인도·태평양 전략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또 한일 갈등은 일본 안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동업자인 일본이 위태해지면, 이 역시 미국의 세계전략에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으로서는, 자국을 위해서도 그렇고 일본을 위해서도 그렇고 지소미아 연장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립 데이비슨 인도태평양사령관이 한미 MCM과 SCM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지소미아와 인도·태평양 전략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볼 수 있다.
미국이 우회적이지만 사실은 노골적으로 한국 정부에 지소미아 연장을 요구하고 있는 배경은 이렇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자국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일본에 엄청난 이익이 되는 지소미아 연장이 한국에겐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점이다.
일본이 경제보복을 철회하지도 않고, 불법 식민지배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게 지금 상황이다. 한국이 미국과 일본의 이익을 위해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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