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110803/1/BBSMSTR_000000010227/view.do


<30>唐 황제의 용인술

기사입력 2011.08.03 00:00 최종수정 2013.01.05 07:03

     

청렴도는 눈 감고 장군 선택 능력자만 보았다


고창국의 멸망소식을 접한 고구려 영류왕은 다음 왕이 될 큰아들을 당 태종에게 보냈다.


`구당서'는 “정관 14년(640년) 12월 을묘일에 고려(고구려)의 세자 상권(相權)이 당 조정에 도착했다”고 명기하고 있다.


상권은 며칠 전에 고창국을 멸망시키고 장안성으로 개선하는 군대를 보았다. 개선식은 화려했다. 당의 의장대와 군악대가 앞장서고 뒤에 화려한 말을 탄 고창정벌군 사령관 후군집과 부사령관 설만철, 돌궐기병을 통솔했던 계필하력 집실사력이 당당하게 들어왔다.


그 뒤로 양편으로 수많은 병사들이 따라오고 있는 가운데 고창국왕 국지성과 그 동생을 필두로 수많은 남녀포로들이 끌려오고 있었다. 또한 보물을 실은 수레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개선식을 본 백성들은 당제국의 강력함을 재삼 인식했다.


황궁에 들어간 개선식 행렬은 관덕전(觀德殿) 앞에 멈추었다. 후군집이 여기서 고창국왕과 포로들 그리고 노획한 보물을 황제에게 바치는 의례를 거행했다. 예법에 따라 술이 하사됐고, 후군집은 승리를 경하하는 덕담을 올리고 하사된 술을 마셨다. 당 태종은 포로들 가운데 악공(樂工)들을 당 조정의 제사를 담당하는 부서 태상(太常)에 배치했고, 여자들은 후궁으로 넘겼다.


의덕태자묘 벽화에 그려진 당나라 시대의 장군 모습.


고창국의 옛터에 남은 성벽과 성문.


당 태종은 승전을 축하하는 술자리를 참전 군인들에게 베풀었다. 후군집과 설만균 이하 장병들은 4일 밤낮 동안 마음껏 술과 고기를 먹었다. 사령관과 부사령관은 흥청망청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마음에 걸리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들이 황제의 명령으로 점령했던 고창국이 이국적인 여자들과 서역의 물건들로 가득한 곳이었다는 것이 화근이었다.


술판이 끝나고 둘은 유사(有司)에게 탄핵을 받았다. 후군집이 고창 도성의 성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궁궐의 보물창고와 후궁이 있는 곳이었다. 병사들의 질서를 잡아야 할 최고위 장군이 가장 먼저 약탈을 했다. 장군들이 도둑질을 하자 병사들도 따라했다. 후군집은 ‘원죄’가 있어 그들을 제재할 수 없었다.


고창 침공에 참전한 모든 병사들의 입은 다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의 개선식이 있은 지 10일 후였다.


유사에 고발된 둘은 기소됐다. 장군들이 약탈 금지 명령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병사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았다. 소문은 온 장안에 퍼졌고 그곳에 와 있던 고구려의 태자 상권의 귀에도 들어갔다. 후군집과 설만균이 구치소에 들어갔다. 재판부서인 대리(大理)의 관리들이 바빠졌다. 그들 외의 장군들에서부터 병사들에 이르기까지 증인들이 소환됐고, 혐의를 입증하는 증언들이 서류화되기 시작했다.


사령관 후군집의 죄목은 황제에게 먼저 바쳐야 할 보물과 포로를 스스로 취하고 따로 챙긴 공물절도죄였다. 군사재판의 판사는 당 제국의 최고사령관 황제였다. 변호인도 있었다. 중서시랑 잠문본(岑文本)이었다.


다만 지금의 법정과 다른 점은 판사인 황제가 법 위에 있다는 사실이다. 변호인이 황제만 설득하면 만사가 해결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위험도 있었다. 변호인이 황제의 노여움을 사면 죽음을 당하거나 사마천처럼 남자의 상징이 거세되는 궁형을 받을 수도 있었다.


‘자치통감’은 잠문본이 황제에게 올린 상소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후군집이 스스로 법망에 걸린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폐하께서 오직 허물만 기억하시고 그들의 공로는 내버린다고 생각할까 걱정입니다. 장군들은 적을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이길 수만 있다면 장군들이 탐욕스러워도 상을 줄 수 있습니다. 만약 그가 패배한다면 청렴해도 죽일 수 있습니다.”


한편 설만균은 여자 문제 때문에 기소됐다. 죄의 종류가 달랐다. 그래서 그에 대한 문제 처리에 백성들은 더 관심을 갖고 있었다. 고창국은 실크로드의 다민족 국가였다. 이란 계통의 백인들이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 혼혈이 많았고, 여자들이 아름다웠다.


잡혀온 고창국 출신 여자들은 이미 황제의 후궁에 들어가 있었다. 황제가 취할 수도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신하가 그것을 먼저 건드렸다. 만일 임신한 여자를 황제가 받아들이고 그녀가 낳은 아이가 왕자가 돼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면 종묘에 묻혀 있는 역대 황제들은 다른 사람의 후손에게 제삿밥을 받아먹게 된다. 종묘사직을 붕괴시킬 수 있는 대역죄였다.


그런 만큼 평소에 여자를 밝히던 설만균도 혐의를 철저하게 부인했고, 조사도 철저하게 진행됐다. ‘자치통감’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어떤 사람(설만균의 부하)이 설만균이 사사롭게 고창의 여자와 통정했다고 고발했는데, 설만균이 부인하자, 궁궐에서 고창의 여자를 소환해 대리(재판부서)에서 설만균과 마주하고 변론하게 했다.”


설만균은 재판부서의 관리들 앞에서 그 여자와 대질심문을 받았다. 관리는 고발장에 적혀 있는 사실을 확인하려 했다. 설만균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만났고,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말해야 했다. 모든 것을 부인했던 설만균은 거짓으로 일관하거나 침묵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심문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신 위징이 설만균을 변호하는 상소를 황제에게 올렸다.


‘자치통감’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지금 대장군을 (재판부서에) 보내 망한 나라의 여자와 대질해 휘장 속에서 있었던 사사로운 일을 말하게 하니, 사실이라고 해도 얻는 것은 가볍고 헛된 말이라고 한다면 잃는 것은 무겁습니다.”


잠문본과 위징의 상소는 당 태종에게 설득력 있는 변호였다. 후군집은 속되게 표현하자면 ‘폼을 잡기 좋아하고 뻥도 심한’ 유형의 인간이었다. 물질에 욕심도 많다. 하지만 그의 지략은 높이 살 만하다. 626년 당 태종이 현무문에서 형과 동생을 죽이고 황권을 쟁취한 쿠데타의 모든 시나리오도, 635년 토욕혼 정복전쟁의 결정적인 작전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설만균도 여자를 밝히고 술버릇이 나빠 토욕혼 정복 후 벌어진 축하 술판에서 말썽을 일으켰고, 돌궐족 출신 장군들과 한족 출신 장군들 사이에 인종적인 골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사건은 돌궐족 장군들이 국법을 준수하게 만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설만균은 기병대장으로 누구보다 실력이 뛰어나다. 황제가 부하들의 고발을 믿고 장군을 의심하면, 큰 책임을 진 장군들과 작은 책임을 진 부하들의 힘을 역전시켜 장군들이 부하들의 눈치를 보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장군들은 소신 있고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없다. 부하들은 장군들의 잘못된 약점만 찾아 죄를 만들고, 장군들은 스스로 모든 사실을 일일이 밝힐 수 없어 억지로 화를 면하고자 증거를 조작하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흑백 논리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앞으로 당 제국이 치러야 할 전쟁이 얼마나 많은가. 무엇보다 만만치 않은 고구려와 일대 전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실전 경험이 많고 유능한 장군들이 부패 때문에 처벌받고 군복을 벗는다면 당 제국의 전력에 큰 손실이다.


태종은 후군집과 설만균을 방면했고, 보직에 복귀시켰다. 비록 청렴하고 곧은 장군들은 아니지만 능력은 있었다. 물론 태종이 법을 굽혔을지라도 그들의 죄가 숨겨지는 것은 아니었다. 부하들에게 망신살이 뻗친 그들은 조신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전쟁에서 승리해 공을 세우려고 할 것이다. 장군의 가치는 승리에 있다.


640년 12월 당시 장안 궁정에 머물고 있는 고구려의 태자 상권도, 당 제국과 결혼 동맹을 체결하기 위해 2개월 전에 온 토번의 최고위 장군 녹동찬(東贊)도 재판 결과를 들었을 것이다. 상권은 이듬해인 641년 초 당 제국의 정보국장에 해당하는 진대덕과 함께 고구려로 귀국했다. 같은 해 1월 녹동찬은 문성공주를 모시고 라싸로 향했다. 동서 강국의 태자와 장군은 당 태종이 어떠한 인물인지 충분히 공감했을 것이다.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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