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080962
[취재파일] 닥치고 자원외교? 닥치고 책임외교!
권영인 기자 최종편집 : 2012-02-04 19:20
'해외건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본격 진출'
지난 2009년 12월 국토해양부가 배포한 한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우리 국내 기업이 아프리카 가나 주택사업 계약에 성사했다면서 치적을 한껏 뽐내는 자료였다. 11조원짜리 거대한 주택사업 체결과정에서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했고, ‘미스터 아프리카’로 불리며 자원외교대사를 자임했던 박영준 당시 국무차장이 주춧돌을 놓았다고 친절히 설명해 놓았다.
그리고 1년 뒤. 가나 정부와 우리 국내 기업은 본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했다. 우리나라에선 정종환 당시 국토부장관이 직접 가나로 날아가 기공식에 참석했다. 이 행사 역시 국토부는 친절하게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또한번 자랑하기 바빴다.
또 1년 뒤. 가나 정부는 우리나라 기업과 맺은 계약을 파기했다. 사업이 사실상 좌초된 것이다. 기업의 해명을 최대한 반영하자면 적어도 가나 정부와 새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지난해 가나정부와 본계약을 맺은 뒤에 우리 기업은 현지 대리인과 지분문제로 소송전에 휘말렸다. 가나 국회까지 통과된 계약이지만, 대리인 선정 과정에서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다행인건 소송이 진행 중이니 결과에 따라 원상태로 회복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남아있다.
더 큰 문제는 자금조달 문제다. 가나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됐다면서 국토부는 자랑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애초 계약은 가나 정부의 지급보증아래 국내 기업이 자금을 모집하고 사업을 주도하는 내용이었다. 돈을 끌어오는 주체가 국내 기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IMF의 지원을 받고 있는 가나 정부 보증으로는 국제사회에서 마땅한 투자자를 선뜻 찾기 어려웠다. 여기에 아프리카 진출에 혈안인 중국의 적극적인 견제까지 더해지면서 해법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올 대선을 앞두고 있는 가나 정부 입장에서는 우리나라 4대강과 같은 핵심 이슈인 주택사업이 헛바퀴만 돌고 있다는 국내 비난을 모른 척 하기 어려웠다. 현실적으로 가장 알맞은 파트너는 우리 국내 기업이었지만, 무작정 시간을 줄 수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지난 달 자금조달업무를 우리 기업에 일임했던 기존 계약서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가나 정부가 직접 자금조달에 나선 것이다. 이미 아프리카 주택사업 재단인 '쉘터 아프리카(shelter afrique)'와 백만달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현지에서 날아왔다. 기존 계약서 내용이 무용지물이 된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다는 심정으로 가나 정부 관계자를 만났지만,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게 가나 정부의 답변이었다.
자금 조달 문제만 해결되면 가나 정부와 계약서를 새로 쓰면 된다는 게 우리 기업의 입장이지만, 가나 정부를 취재해 본 결과 그쪽 반응은 냉담했다. 게다가 shelter afrique 쪽도 상당히 적극적이어서 설사 계약서가 새로 체결되더라도 우리 기업의 역할이 상당부분 축소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대체 정부는 뭘 했나?
계약파기를 앞세워 기사를 쓴 다음날 국토부는 해명자료를 내놨다. 요지는 그 기사가 틀렸다는 말이다. 그러나 참 어이없는 자료였다. 기사를 잘못 쓴 건지 국토부의 이해력이 떨어지는 건지 아니면 회피하고 싶은 건지는 몰라도 왜 계약이 파기됐는가에 대한 단 한 줄의 해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현지 대리인과 국내 기업과의 지분 문제를 둘러싼 소송 이야기만 꺼내며 그 소송이 해결되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란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계약파기는 대리인과의 문제가 아니라 가나 정부와의 문제다. 자금 조달 방식을 적시한 기존 본 계약서를 일방 파기하고 가나 정부가 직접 자금 조달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런 자료를 낼 법도 한 것이 이번 사안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국토부 담당자는 가나 정부가 자금 조달에 직접 나섰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게 계약파기와 직결된다는 사실에도 안타까울 정도로 둔감했다. 일관된 대답은 우리 기업이 잘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는 것이다. 이미 민간인 영역으로 떠난 문제니 우리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는 거다.
닥치고 자원외교? 닥치고 책임외교!
이게 우리 자원외교, 건설외교의 현실이다. 한국 건설외교 역사상 기념비적인 성과를 거뒀다며 낯뜨거운 보도 자료를 대대적으로 뿌려대다가 사업이 곤경에 처하니 어느 새 강을 건너가 불구경만 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 기업들은 행여 국토부 심기를 건드리지는 않을까 단 한마디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일을 잘 해보려다가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중국과 치열한 자원 확보 전쟁, 아프리카 시장 쟁탈전에서 벌어지는 필연적인 실패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조건 자원외교, 건설외교, 시장확보만 외칠 것이 아니라 ‘잘 되면 내 탓 틀리면 네 탓’ 이라는 오랜 관습에서 벗어나 좀 책임있는 정부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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