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100727/1/BBSMSTR_000000010417/view.do


<80>날씨는 공공의 적, 펀치볼 전투 

기후와 역사 전쟁과 기상

기사입력 2010. 07. 27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5:47

     

낮에는 아군이 밤에는 적군이 고지 탈환 반복


펀치볼 지역 전경.


펀치볼 전투 전적비.


 돼지들의 천국이었던 곳이 있다. 강원도 양구 북방에 위치한 해안(亥安)이란 지역이다. 오목한 분지로 형성된 이 지역은 습기가 많아 예로부터 뱀의 천국이었다. 돼지는 지방층이 두꺼워 뱀에 물려도 문제가 없다. 그렇기에 ‘돼지 덕분에 편안한 곳’이라는 뜻의 해안(亥安)이라고 불렸다. 해발 450m 내외의 분지(盆地) 지역으로서, 주변의 도솔산과 대우산, 가칠봉 등 1200m 내외의 고지군으로 둘러싸인 특이한 지형이다. 분지의 면적이 44.7㎢로 여의도 면적의 6배 정도 되는데 이 지역을 항공기에서 내려다보면, 오목하게 형성된 분지의 모습이 마치 화채그릇(넓은 사발) 같아 보인다. 이 때문에 6·25전쟁을 취재하던 유엔군 종군기자에 의해 펀치볼(Punch bowl)이라고 명명됐다.


1951년 7월 10일 시작된 휴전회담이 아무런 진전이 없자 유엔군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은 “군사력에 의한 압력으로 협상을 강요한다”는 전략을 마련했다. 미 8군은 동부지역에서 공산군의 전략적 요충이자, 아군 방어의 취약지역인 ‘펀치볼 지역’을 우선적으로 공격하는 작전을 수립했다. 미 2사단 38연대는 7월 27일 공격을 개시해 대우산(해발1178m)을 탈취했다.


그러나 때마침 쏟아진 30년 만의 집중호우로 인해 이후의 공격은 장마가 끝난 8월 중순 이후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또 미 10군단은 8월 9일에서 14일에 걸쳐 한국 8사단으로 하여금 펀치볼 동측방 지역을 공격하게 했으나 역시 비 때문에 목표로 삼았던 1031고지를 빼앗는 데는 실패했다.


30년 만의 집중호우…일진일퇴 공방전


8월 중순에 들어 예년보다 늦게 시작된 장마가 겨우 멈췄다. 한여름의 무더위와 뜨거운 태양이 사정없이 내리쪼이기 시작했다. 유엔군은 한국 수도군단으로 하여금 J자 능선에 대해, 미 10군단으로는 피의 능선과 소양강 동안지역에 각각 8월 18일부터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도록 명령했다.


이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동부전선을 보다 견고한 선으로 전진하는 동시에, 대우산(大愚山) 서측방 고지를 탈취해 9월에 대대적으로 실시할 예정인 펀치볼 공격작전을 유리하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한국 수도사단은 주변 고지(924고지, 884고지) 점령을 위해 18일 공격을 시작했다. 고지 점령에 성공했으나 밤에 들어서면서 호우가 내리자 북한군은 악시정과 빗소리를 이용해 은밀히 공격해 왔고 할 수 없이 국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인 19일 유엔군은 포병과 항공기를 총동원해 집중적으로 포격을 가한 후 공격해 고지를 재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21일 밤 또다시 퍼붓는 호우와 함께 북한군이 안개를 뚫고 공격해 오자 국군은 또다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22일 국군은 다시 고지를 공격하려 했으나 계속해서 내린 비로 인해 무명천이 범람하자 강을 건널 수 있는 도보교(徒步橋)를 만들어 24일 저녁에 다시 고지를 재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장마로 하천 범람…물자 보급로 차단


그러나 25일 새벽안개를 틈타 은밀히 접근해 온 북한군에게 또다시 고지를 빼앗기고 만다. 계속되는 악천후로 인해 병력충원과 보급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고전하게 된다.


“30년 만의 큰 장마 때문에 물이 가득 찬 교통호(交通壕)와 은폐호에 의지하면서, 4~5일간이나 계속된 유엔군의 돌격을 격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장마로 하천이 범람하면서 탄약ㆍ식량과 기타 물자의 보급로가 차단되고, 상급 참모부와의 통신도 곤란하게 됐다.” 북한 전투기록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날씨로 인한 영향을 북한군도 심각하게 받고 있었다.


중부지방의 장마는 대개 7월 말이면 끝난다. 그러나 이 해는 8월 중순까지 지속됐고, 장마가 끝난 후에도 장마전선 연변에서 강한 대기 불안정으로 저녁 때가 되면 어김없이 강한 비가 내렸다.


이 지역은 높은 고지가 많아 흘러내리는 물이 조그만 소하천으로 모이면 쉽게 범람하고, 게다가 평지는 분지지형이기에 평소에도 습기가 높은 데다가 조금의 비만 내려도 진창으로 변해 병력의 이동이 어렵다.


결국 펀치볼 전투에서 승리를 결정지은 것은 날씨였다. 8월 하순 초반까지 계속된 장마나 그 이후 북태평양 고기압 연변에서 자주 내린 소나기로 결정적 승리를 얻지 못했던 유엔군은 9월에 들어서 날씨가 점차 좋아지면서 공중공격과 집중포격, 거기에다 미 1해병사단과 한국군 1해병연대까지 투입했다.


맑은 날 공중공격 감행 요충지 점령


공중공격이 원활해지면서 가칠봉 전투와 노전평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펀치볼 주변의 요충지를 점령했고 마침내 1951년 9월 20일 연합군은 북한군이 장악하고 있던 펀치볼 지역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 현장이기도 했던 이 지역에서 정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름도 없이 쓰러져 간 많은 국군병사들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에 공격을 거듭했던 이들의 애국정신이 펀치볼 승리를 가져온 가장 큰 힘이었다. 그들 때문에 지금 우리가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TIP]펀치볼 전투에 영향을 준 장마-성질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전선은 강화


장마가 길면 보은(報恩) 색시들이 들창을 열고 눈물을 흘린다는 옛말이 있다. 대추골인 이곳은 대추가 시집갈 혼수를 마련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는데, 긴 장마는 대추를 여물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장마가 짧으면 관북지방의 갑산(甲山) 색시들은 삼(麻)대를 흔들며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장마가 짧으면 삼이 덜 자라고 흉마(凶麻)가 되면 삼베 몇 필에 오랑캐에게 몸이 팔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장마의 어원은 이 관북지방의 장마에 있다고 전해진다. 장마는 동아시아지역에 나타나는 아시아 몬순의 한 형태로 우리나라 여름의 독특한 기상현상이다. 이데올로기의 차이로 대립된 국가 간에 전선(戰線)이 형성되고, 대립의 정도가 심해지면 전선을 경계에 두고 포탄과 총알이 오고가는 전쟁이 벌어지듯이, 서로 성질이 다른 두 공기 덩어리 사이에는 전선(前線)이 형성된다. 두 공기덩어리의 성질 차이가 크면 클수록 전선은 강화되면서 비나 폭풍우, 뇌우, 강풍을 동반하는 악기상 현상이 발생한다. 이처럼 장마는 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북태평양고기압(고온 다습한 성질)과 북쪽의 차고 습한 오호츠크해 고기압이나 대륙성고기압 사이에 형성된 전선이 우리나라 부근에 위치하면서 발생한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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