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93849&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 

결국 '딴따라 PD'까지 싸우게 만드시네요
김재철 MBC 사장님, 어금니 꽉 깨무세요!
[기고] 4년만에 5번째 파업... 이번엔 기필코 이겨야겠습니다
12.02.06 08:47 ㅣ최종 업데이트 12.02.06 09:24  김민식 (news)

▲ MBC노조 파업 닷새째인 지난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열린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는 노제'에서 MBC노조원들이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펼침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MBC 노조 파업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는 내 모습이 신문에라도 나오면 친구들이 전화해서 호들갑을 떤다. "야? 너 같은 날라리 딴따라가 무슨 데모냐?" "너 생각 없이 사는 거 아니었어?" 친구들의 반응, 놀랄 일은 아니다.
 
고백하자면 나는 198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녔지만, 운동권은 아니었다. 친구들이 반미 구호 외칠 때, 나는 숨어서 영어 공부했고, 다들 심각하게 독재 타도 대자보를 읽을 때, 나는 킬킬대며 만화 보고 있었다. 심지어, 친구들이 시위 현장에서 전경들과 몸싸움하고 있을 때, 나는 나이트클럽에서 스텝을 밟고 있었다. 난 그냥 딴따라가 체질이었다.
 
딴따라 적성을 살려 1996년에 MBC 예능국에 피디로 입사했다. 입사하고도 노조의 파업 투쟁은 나 몰라라 하고 살았다. 선봉에 서 본 건, 음악 프로 무대 위에 올라가 가수들과 춤 출 때 뿐이고, 구호를 목청껏 외쳐본 건 게릴라 콘서트를 길거리에서 홍보할 때 뿐이었다. 선배들이 나의 철없음을 걱정하면, "파업하는 것보다 방송 만들어서, 시청자들을 재미나게 해주는 게 최고의 공익 아닌가요?"라고 반문했을 정도다.
 
그런 내가 작년에 주말 연속극 <글로리아>를 연출하고 있을 때, 전임 노조 집행부로부터 노조 일을 맡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황당했다. 오죽 지원자가 없으면 나 같은 날라리한테까지 차례가 왔을까, 안타까웠다. 하지만 고민 끝에 제의를 받아들였다.
 
나는 왜 나이 마흔다섯에 날라리 투사가 되었을까?
 
▲ 김재철 MBC 사장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이제껏 MBC PD로 15년을 살며 아주 즐거웠다. 그동안 내가 만들고 싶은 건, 시트콤이든 버라이어티 쇼든 드라마든 무엇이든 다 만들어 봤다. MBC는 최고의 조직 문화를 가진 회사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균등하게 주어지며,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프로를 하니까, 누구나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에 최선을 다한다. 실패해도 선배가 어깨 툭툭 두들기며,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뭐"라고 해주니까, 실패에서 배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MBC가 최고의 회사라는 걸 증명하는 가장 좋은 예는 < PD수첩 > 황우석 편이다. 그 방송 때문에 MBC가 온 국민의 지탄을 받을 때,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 MBC는 망했다. PD수첩 보도가 틀렸다면 우린 국민 영웅을 모함한 게 되고, 맞다면 우리는 국가적 영웅을 죽인 꼴이 된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는 망했다. 그런데 부인, 그거 알아? 저런 방송을 할 수 있는 언론사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MBC 하나밖에 없어."
 
제작 자율성의 보장, 그것이 < PD 수첩 >이 숱한 특종을 만들고,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신뢰받는 방송이 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연출로서 나의 행복의 근원이기도 했던 제작 자율성은 사실 과거 MBC 노조 선배들이 군부 독재와 피 흘리며 싸워 얻어낸 공정 방송의 결실이다. 군부 독재와 함께 언론 민주화 운동도 마무리가 되었으니 난 그냥 즐겁게 딴따라 PD로 평생 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난 코미디 피디다, 유쾌하고 즐겁게 싸울 것이다
 
그것이 나의 크나큰 착각이었음을 일깨워 준 것이 현 정권과 지금의 김재철 사장이다. PD들의 제작 자율성, 지난 2년간 무참히 깨졌다. < PD수첩 >을 하겠다고 자원한 최승호 피디는 다른 부서로 전출됐고, 아이템 취재를 막는 간부에게 항의한 이우환 피디는 드라마 세트장 견학 업무를 맡았고, 그걸 항의한 한학수 피디는 다시 경인지사 수원 사무실로 쫓겨났다. 드라마, 예능 할 것 없이 PD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이런 회사를 다니느니 차라리 조중동 종편으로 가겠다고 뛰쳐나간 동료나 후배들을 보면 참담한 심경뿐이다.
 
이제 와 김재철 사장에게 감사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행복했던 나의 15년 세월이 공짜로 얻어진 게 아니었다는 점을 뼈저리게 깨우쳐 준 점이다. < PD수첩 >은 강한 자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고, 약한 이들에게 사랑받는 MBC 대표 프로다. < PD수첩 >의 핵심 인력을 탄압한 결과, MBC는 이제 강한 자들에게 멸시 받고, 약한 이들에게 외면 받게 되었다. 다 사장님 덕분이다.
 
▲ 지난 1일 오후 MBC 김재철 사장의 연례 업무보고가 예정된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앞에서 총파업중인 MBC노조원들이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부족한 나를 PD로 뽑아준 회사에 감사하며, 이런 좋은 직장에 얻어걸린 천운을 감사하며 15년을 살았다. 내가 누린 행운, 회사에서 누린 고마움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다행이다. 4년 만에 5번째 파업이다. 이번에는 기필코 이겨야 겠다.
 
"사장님, 어금니 꽉 깨무세요!
내가 싸우는 방식을 보고 웃음이 터져도 책임 못 집니다."
 
나는 딴따라 코미디 피디다. 유쾌하고 즐겁게 싸울 것이다.
방송이 아니라, 파업으로, 국민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웃음을 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민식씨는 <글로리아>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내조의 여왕> 등을 연출한 MBC 드라마국 PD입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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