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191201063017338


[서초동살롱]워싱턴포스트에 등장한 '판사 오덕식'

하세린 기자 입력 2019.12.01. 06:30 


[the L]법정서 성관계 횟수 등 판결문 낭독..여성단체 "사법부 성인지 감수성 적극 조치해야"


어제 숨진 채로 발견된 가수 고 구하라의 일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장 영정./사진공동취재단 /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어제 숨진 채로 발견된 가수 고 구하라의 일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장 영정./사진공동취재단 /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지난달 24일 비극적 선택을 한 가수 구하라씨(28)의 전 남자친구 최종범씨(28) 재판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다. 당시 재판부가 재판 과정에서 구씨 변호인 측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성관계 영상을 증거로 제출토록 하고, 최씨의 불법촬영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근거가 최근 알려지면서다.


지난달 28일 워싱턴포스트(WP)에는 '구씨의 죽음은 한국 사법시스템이 여성들을 좌절시킨 또 하나의 사례임을 보여줬다'는 내용의 기고가 실렸다. 해당 기고에는 이례적으로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재판부의 오덕식 부장판사가 언급됐다. 오 부장판사는 지난 8월 1심에서 최씨에게 상해·강요·협박·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핵심 쟁점이었던 불법촬영, 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해당 기고는 특히 최씨의 불법촬영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된 '종합적 고려사항' 6개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법원은 피해자 인권보호를 이유로 성폭력 관련 사건의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지만, 최근 한 언론에 최씨 판결문 일부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된 부분이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오 부장판사는 △두 사람은 주기적으로 성관계를 가지던 사이였고 △(최초 만남 때) 구씨가 먼저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메시지)으로 연락했다는 점 등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검찰은 "구씨가 호감을 먼저 표한 게 맞고 연인관계였던 것도 맞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불법 촬영을 당한 것"이라 주장했지만 오 부장판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WP 기고도 이러한 이유는 정작 최씨의 범죄 혐의나 범죄 유무를 판단할 구씨의 촬영 동의 여부와 관련이 없음에도 오 부장판사가 이를 무죄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고 지적했다.


성인지 감수성 부족 문제는 판결의 내용뿐 아니라 재판의 진행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구씨 측 변호인이 '2차 가해'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재판부는 "영상의 내용이 중요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최씨가 언론에 제보하려 했던 성관계 영상을 비공개로 확인했다.


오 부장판사는 또 지난 8월 선고 당시 법정에 일반인 20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씨와 최씨의 만남 계기, 동거 사실, 성관계 장소 및 횟수 등이 적힌 판결문을 모두 낭독했다고 한다. 사법부가 피해자 인권에 대한 충분한 배려없이 '관례'라는 이유로, 기계적으로 업무처리를 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사법부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 문제는 오 부장판사 재판부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지난 10월 의정부지법은 '레깅스는 일상복이니 불법 촬영이 아니'라며 피고인 A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는데, 판사가 판결문에 몰래 찍은 사진을 '사건 기록'이라며 그대로 게재해 논란이 증폭됐다.


지난 7월에도 광주고법은 성추행을 당한 60대 여성 택시기사에 대해 '사회경험이 풍부한 60대는 성적 수치심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가해자인 교감 B씨의 해임을 취소했다. 이밖에도 남성 중심의 재판부가 성폭력 사건 가해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남성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셀 수 없이 많다.


성적폐 카르텔 개혁을 위한 공동행동 등 여성단체들은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오덕식(부장판사)은 법복을 벗고 사법부는 성인지 감수성을 도입하라"며 재판부의 퇴진을 요구했다. 사법부는 오 부장판사 개인을 넘어 사법 시스템 전반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고민하고 실행해야 한다. 성인지 감수성을 중시하는 사회의 흐름을 눈앞에 두고, 관례만 언급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세린 기자 iwrit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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