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191201080404924
[와이파일] 10년의 덫..'김학의 동영상'은 사실, 그러나 처벌은 못 해
한동오 입력 2019.12.01. 08:04 수정 2019.12.01. 08:27
'김학의 동영상'에 죄를 물을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1심 재판 결과는 그렇습니다. '김학의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김학의 사진'은 김 전 차관과 여성이 특정 행위를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성 접대를 뒷받침할 증거로 검찰이 제시) '성 접대'한 건 맞는데 처벌은 못 한다, 이게 김학의 사건 1심 재판의 결론입니다.
공소시효가 문제였습니다. 검찰 수사 결과, 김학의 동영상은 2007년 12월 21일 찍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이죠. 김학의 동영상은 김 전 차관이 성 접대를 받았다는 정황 증거였습니다. 성 접대는 뇌물 혐의입니다. 뇌물죄는 뇌물액수가 3천만 원 이상~1억 미만이면 공소시효가 10년입니다. 김 전 차관 뇌물 혐의에 적힌 뇌물액수는 1개 혐의를 빼면 3천만 원 이상~1억 미만입니다. 즉, 김학의 동영상만으로는 공소시효가 지난 거죠.
지난 4월 YTN이 공개한 '김학의 동영상' 고화질 버전. 김 전 차관의 얼굴이 선명하다
공소시효의 벽을 넘고 검찰이 기소(사건을 재판에 넘김)할 수 있던 건 '제3자뇌물' 혐의 덕분이었습니다. 뇌물이면 뇌물이지, 제3자 뇌물은 또 뭐야? 생각이 드시죠. 요약하자면 김학의 전 차관이 건설업자 윤중천 씨한테, 윤 씨가 받을 돈 1억을 못 받게 해서 제3자한테 이익이 돌아가게 했다는 겁니다.
'김학의 동영상'이 촬영된 강원도 원주 별장
사건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윤 씨는 알고 지내던 한 여성에게 전세보증금 1억 원을 줬습니다. 이 돈이 그냥 준 건지, 빌려준 건지는 모호했습니다. 여성은 1년 후 전세 기간이 끝나자 이 돈을 다른 데다 썼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윤 씨는 횡령이라며 여성을 경찰에 고소합니다. 그런데 이 여성은 그동안 윤중천 씨가 자신에게 김학의 전 차관과의 성관계, 또는 성적 접촉을 시켰다고 진술했습니다. 이 여성이 경찰에서 김 전 차관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것처럼 하니까 김 전 차관이 윤중천 씨 보고 "1억 돌려받지 말고 일을 해결해달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게 검찰 결론이었습니다. 즉, 김학의 전 차관은 윤중천 씨의 1억을 포기하게 한 거고요. 제3자인 여성에게 1억이라는 이득을 준 겁니다. 이게 '제3자뇌물' 혐의입니다.
'김학의 동영상' CD가 보관됐던 벤츠
그래서 김 전 차관 혐의의 뇌물액은 1억 이상으로 늘어납니다. 기존 뇌물액 수천만 원+1억이 된 거죠. 뇌물죄는 액수가 1억이 넘으면 공소시효도 15년으로 늘어납니다. 15년 전이면 2004년, 김학의 동영상이 2007년이니까 처벌이 가능해지는 거죠. 검찰이 공소시효의 벽을 넘을 수 있는 법리를 구성한 겁니다.
2013년 '김학의 동영상' 저화질 버전에 대한 국과수 감정서. 저화질이라 정확한 감정은 어렵지만 김 전 차관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이라고 써 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납니다. 윤중천 씨가 말을 바꾼 겁니다. 윤 씨는 검찰 조사에서 해당 여성에게 "내가 1억 원 그거 안 받고 너 이번에는 한 번 용서해준다"라고 말했다고 진술했고요. 김학의 전 차관이 윤 씨에게 "말썽 안 나게 윤 회장 선에서 잘 좀 마무리해라"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법정에선 저런 취지로 말한 적이 없다고 번복합니다. 거기에다 그 당시 윤 씨가 여성에게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오라"고 하면서 1억을 빌미로 무언가를 요구하려 한 정황까지 나오니까 재판부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윤중천이 (해당 여성으로 하여금) 김학의에 대한 부분을 수사기관에 이야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소 취하를 했다고 볼 수는 있을지언정 확정적으로 채무 변제 의사를 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달 22일 동부구치소에서 석방된 김학의 전 차관
1억이 빚이 아닐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해당 여성은 수사기관 조사에서 윤중천이 "먹고 살라면서 1억을 줬다", "니가 알아서 먹고사는 데 사용하라고 말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특히 자신의 매장에서 윤중천 씨가 수시로 물건을 가져가, 그 물건 액수만 7, 8천만 원+윤중천 씨가 수시로 가져오라고 해서 준 돈이 2천만 원 정도 된다고도 말했습니다. 즉, 윤중천 씨가 1억을 빌려준 건지, 그냥 준건지, 대가를 약속받고 준 건지 모호해지는 겁니다.
'제3자뇌물' 법리가 무너지면서 '김학의 사건'은 공소시효 10년이라는 벽을 결국 넘지 못했습니다. '김학의 동영상'과 '김학의 사진'에 대한 법적 처벌도 무산됐습니다. 동영상과 사진은 사실인데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김학의 동영상' 왼쪽은 고화질, 오른쪽은 저화질 버전
하지만 이번 판결의 의미를 축소할 순 없습니다. '김학의 동영상', '김학의 사진'에 대한 첫 법적 판단이 이뤄졌기 때문인데요. 법원은 둘 다 김 전 차관이 맞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김학의 사진' 속 인물은 김학의 전 차관이라고 결론 내린 1심 판결
'김학의 사진'의 쟁점은 가르마였습니다. 김 전 차관이 '나는 평소에 이쪽으로만 가르마를 탔는데 사진에서는 다른 쪽으로 가르마가 타져 있다', '이 사진 속 남성은 내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 사진상의 남성은 김학의 전 차관이라고 봄이 상당하고, 다른 가능성(우연히 다른 사람이 찍혔을 가능성, 윤중천이 김학의와 닮은 대역을 세워 촬영했을 가능성)은 지극히 합리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라고 명시했습니다. 사진을 보면 "김학의의 얼굴형, 이목구비, 머리 모양(가르마 방향 제외), 안경 등이 매우 유사하고 이 사진에 합성 등 인위적인 조작은 이뤄지지 않았다"라는 겁니다. 여성 역시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김학의 전 차관에게 지속적으로 성 상납을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김학의 동영상' 역시 "동영상의 인물과 사진 파일의 인물은 같은 인물이라 봄이 상당하다"라고 재판부는 못박았습니다.
'김학의 동영상' 속 인물도 김학의 전 차관이라고 결론 내린 1심 판결
YTN은 지난 4월 '김학의 동영상' 고화질 원본을 부분 공개했습니다. '김학의 동영상' 속 인물이 김학의 전 차관이 맞고 성 접대 정황이 있다는 기사였는데요. 영상에 담긴 여성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김 전 차관의 얼굴을 중심으로 영상을 부분 공개했습니다. 그 후 김 전 차관은 YTN과 저, 관련 보도를 한 홍성욱 기자에게 5억 원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이라는 명분이었습니다.
"금전으로는 도저히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해당 기사 이후 원고는 동영상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윤중천이라는 사람의 별장에 출입하여 성적인 동영상을 찍은 사람으로 호도되고 있다"
"원고는 말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 소장 내용. 이 민사 재판 결과는 아직 안 나옴
김학의 전 차관이 YTN을 상대로 제기한 5억 원 손해배상 소장
'김학의 사건' 수사는 검찰이 3번 했습니다. 1차 수사는 2013년 불기소, 2차 수사는 2014년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불기소는 혐의가 없어 재판에 안 넘긴다는 뜻입니다. 만약 검찰이 올해 3차 수사 때처럼 1, 2차 수사를 했다면 김 전 차관은 처벌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공소시효가 안 지났기 때문이죠. 1, 2차 수사 때는 안 나온 '김학의 사진'도 3차 수사 때야 확보됐습니다. 물론 검찰 입장에서는 핵심 증인들이 3차 수사 때야 입을 열었다는 등의 사정을 얘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1, 2차 검찰 수사가 부족했고, 때를 놓쳤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김학의 사건은 검찰 역사에 씻지 못할 오명으로 남을 겁니다. 검찰의 힘이 기소가 아닌 불기소에 있다는 교훈과 함께 말이죠.
2013년, 2014년 검찰의 1차, 2차 불기소 결정서. 김학의 전 차관은 '증거 불충분하여 혐의없음'
'김학의 사건' 재판은 이제 2라운드로 넘어갑니다. 검찰이 항소장을 제출했기 때문이죠. '제3자뇌물' 1억 원이 유죄 여부를 결정할 핵심 쟁점이 될 겁니다. 결과적으로, 무죄라고 판단한 1심 재판부 생각이 일리 있는 부분도 있고, 유죄라고 판단해 기소한 검찰 생각이 이해되는 대목도 있습니다.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저와 저희 팀도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한동오 hdo86@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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