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성(穴城)

2017년 장창은(제주대학교 사학과, 한국고대사)


529년에 고구려 안장왕이 몸소 군사를 이끌고 와서 백제의 혈성(穴城)을 차지하였다. 혈성의 위치는 강화도로 비정된다. 안장왕이 재령로(평양-재령-신원-해주-개성-파주-서울)를 이용해 남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529년(성왕 7) 겨울 10월에 고구려 안장왕이 몸소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와서 북쪽 변경의 혈성(穴城)을 함락하였다. 성왕은 좌평 연모에게 명령하여 보병과 기병 3만 명을 거느리고 오곡(五谷)의 벌판에서 막아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는데, 죽은 자가 2천 명이었다.


혈성의 위치는 『삼국사기』 지리지 한주(漢州)에 ‘해구군은 본래 고구려의 혈구군으로 바다 가운데에 있다. 경덕왕이 이름을 바꾸었다. 지금의 강화현이다(海口郡 本高句麗穴口郡 在海中 景德王改名 今江華縣)’라 한 것을 근거로 하여 강화도 일대로 비정하는 데 연구자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고구려가 혈성까지 진출한 경로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먼저 평양-재령-신원-해주-개성-파주-서울 방면의 ‘재령로 ’를 통해 혈성을 기습 점거했다는 주장이다. 이와 달리 안장왕이 수군(水軍)을 보내 강화도의 혈성을 기습하여 함락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에는 안장왕이 경기도 고양시에 해당하는 왕봉현(王逢縣)과 달을성현(達乙省縣)에서 한씨(漢氏) 미녀와 만났다는 설화가 남아 있다. 이것은 안장왕이 육로인 재령로를 통해 남하한 것과 어울리는 측면이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 남방 진출사 (장창은, 경인문화사, 2014)

단재 신채호전집 제1권 역사 조선상고사 (신채호,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7)

백제의 흥망과 전쟁 (문안식, 혜안, 2006)

「5~6세기 백제의 북계」(양기석,『박물관기요』 20,단국대,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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