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5907
사자(使者)
1995년 김용선
고구려시대의 관직.
『삼국지』 고구려전에는 고구려 10관등 중 제8위이며, 왕뿐만이 아니라 여러 대가(大加)들도 사자와 아울러 조의(皂衣)·선인(先人)을 둘 수 있다고 하였다. 또, 『후한서』 동옥저전에 의하면 사자가 조부(租賦)를 통책(統責)하였다고 되어 있다. 사자는 원래 족장층(族長層)의 가신집단(家臣集團)으로 수취(收取)를 담당하는 관리였으며, 고구려가 중앙집권적 귀족국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행정적 관료로 성장해간 것 같다.
6세기 이후 그 지위의 높고 낮음에 따라 태대사자(太大使者)·대사자(大使者)·수위사자(收位使者)·상위사자(上位使者)·소사자(小使者)로 분화·개편되었다. 고구려의 관등조직 중에서 사자와 대비되는 것으로 형(兄)의 명칭이 붙은 태대형(太大兄)·조의두대형(皂衣頭大兄)·대형(大兄) 등의 관직을 들 수 있다.
‘형’은 연장자의 뜻으로 지난날 족장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자는 중국식 용어이나, 부여에도 대사자·사자 등 사자계 관명이 있어 고구려에 영향을 준 듯하다.
참고문헌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고구려·신라의 관계조직의 성립과정」 ( 김철준 ,『이병도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1956:『한국고대사회연구』,지식산업사,1975)
고구려고대집권국가의 성립에 관한 연구 (김광수, 연세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84)
「高句麗官位制とその展開」 ( 武田幸男 ,『朝鮮學報』 85·86,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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